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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Jun 23. 2021

미치도록 우울한 날에는,

예고편을 부탁해

몇 년 전, 몸이 많이 안 좋아서 병원을 찾았다. 동네 내과였지만 엄마들이 추천하는 병원이라 이번에는 어디가 안 좋은 것인지 꼭 알아내고야 말겠다고 마음먹었다. 병원은 생긴 지 얼마 안 되었는지 깨끗했다. 진료실로 들어서니 의사 선생님 인사에 친절함이 묻어났다. 이래서 엄마들이 그렇게 추천을 했구나! 의사는 피검사와 엑스레이 검사로 봐서는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고 했다. 단지 갱년기가 올 나이니까 몸에 변화가 올 수는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선생님, 갱년기에는 뭘 조심해야 하나요?"

"뭐 준비하시게요?"

"아........ 그게........ 혹시"

"준비하실 거 없어요. 그냥 즐겁게 사시면 됩니다."


이렇게 바보 같은 질문이 있을 수 있나. 말하고 나니 우문현답을 해 준 의사 선생님이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갱년기가 '이제 오겠습니다. 미리 준비하고 기다려 주세요' 하고 올 것도 아닌데 말이다. 호르몬의 변화로 오는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을 뭘 어떻게 준비하고 맞으려고. 사전 방문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사춘기에 장사 없고, 번개 맞을 확률만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심장에 박히는 사랑에 준비가 없듯, 사는 일은 매 순간 예고편이란 게 없다. 


미치도록 우울한 기분이 그렇게 예고 없이 찾아왔다. 딱히 갱년기 증상 같지는 않지만 갱년기 증상이라 해도 결론은 같다. 우울하다는 거다. 우울이란 아주 포괄적인 울타리 안에는 너무 많은 감정들이 쏟아져 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오십하고도 이년을 뭐하고 산거야? 남들은 자리 잡고 사는데 넌 아직도 제 자리를 못 찾고 뭐 하고 있니? 꿈이 다 뭐야? 현실을 보고 살아. 네가 능력이 있기는 해? 재능은 있어서 그러고 있는 거야? 네가 돌봐야 할 아이들을 봐. 네가 그럴 상황이야? 


나 자신이 너무 답답하고 바보 같고 먼지보다 하찮아지는 이 감정, 쪼그라들고 쪼그라들어서 크기도 가늠 안되게 작아지는 이 기분, 자존감이 바닥을 쳤구나 싶은 이 절망. 내 감정이 땅을 파고 들어가 지구 중심부도 뚫을 것만 같은 우울이 내 안에서 자꾸 몸을 불리고 있었다. 나는 이 감정을 안다.




열심히 일상을 살다가도 어느 순간 밀려오는 이 감정을 나는 '브레이크'라 여긴다.  '너, 너무 급하게 가고 있어. 여기서는 멈춰야 해. 멈춰 서서 잠깐 숨을 쉬었다 가야 해.'라고. 나는 이 감정에서 지금 조심조심 발을 떼고 있다. 하얀 얼굴에 눈만 커다랗고 구부정한 어깨를 하고 있는 작고 왜소한 내 감정을 마주하고 있다. 이제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줘야겠다. 천천히 아주 작은 소리부터 들어줘야 한다. 내가 이 아이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토닥여 주지 않으면 이 아이는 거대한 몸집으로 불어나 나를 삼켜버릴지도 모른다. 


이것은 정말 힘이 드는 일이다. 내가 심리학자도 아니고 혜안을 가진 현자도 아닌데 이게 쉬운 일일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내 감정을 바라보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미치도록 우울한 이 날을 나는 잘 이겨낼 거다. 왜냐하면 여태껏 미쳐 준비하지 못하고 닥쳐왔던 모든 일들을 잘 보내줬기 때문이다. 어떤 것은 싸워 이기기도 했고, 지고는 냅다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 어떤 것은 조심조심 보내줬고 모른 척 지나오기도 했다. 다 맞서 싸우면 안 된다. 비겁하지만 싸우다 내가 다칠 것 같으면 피해도 되고 도망쳐도 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오래오래 살아내는 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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