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그곳에만 있었던 이야기

by 이숙정


열여섯 번째 이야기









골목에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집에 가서 책가방만 던져 넣고 나온 아이,

미처 집에 가기도 전에 멈춰 선 아이,

언니 손잡고 자리 잡은 골목길 전봇대 옆,

어젯밤 매어놓은 고무줄을 허리에 반쯤 돌려 묶고 한 아이가 서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나선으로 줄을 서고 돌아가는 고무줄 사이를 재주 부리듯 하나둘 넘어간다.



나는 어리고 고무줄을 잘 못해서

전봇대 옆에 쪼그리고 앉아 언니를 지켜본다.

언니는 춤추듯 참 잘 돈다.

언니는 고무줄을 참 잘했다.

고무줄 주변에는 나 같은 꼬맹이들이 둘셋 앉아 공기놀이를 한다.

호시탐탐 전봇대 옆 너른 자리를 탐내는 남자아이들은 멀찍이 서있다.



해가 넘어가는 것은 순식간이다.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

언니 손을 끌고 엄마한테 혼난다며 집에 가자는 아이,

밥 먹으러 돌아서는 아이,

아이들이 떠난 자리 전봇대 밑동에는 여전히 고무줄이 매어있다.



골목에서 멈춰 선다.

익숙하고 편한 골목.

요즘처럼 집집마다 차가 있던 시절도 아니었고,

학원 갈 일 없어 해 떨어질 때까지 놀던 골목이었고,

해가 져도 대문 닫아걸지 않아도 되었던 골목.

이제는 관광객이 되어 마주 선 골목에는 그곳에만 있는 이야기가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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