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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울 Aug 22. 2023

나의 침실

그동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 침실을 거쳐 간 사람이 참 많다. 상대를 만나면 무조건 자고 가라며 붙들었다. 미운지 고운지에 따라 내 옆에 재우기도 하고 저만치 이부자리를 깔아주기도 했다. 다행히 아직 상대들은 그다지 위험한 사람은 없었다.

나흘 전 내 침실에 머물렀던 사람은 머리 뒤통수가 없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뒤통수가 얼마나 납작한지 모로 눕는 법을 몰랐다. 똑바로 누웠기 때문에 납작해졌는지 태어날 때부터 납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아침마다 뒤통수에 뽕을 넣었다. 닷새 전에 한 이불을 덮었던 사람은 노래를 사랑하지만 어정쩡한 음치였다. 밤늦도록 노래 경연 대회를 보면서 조물주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선물한 게 없다며 투덜대다가 잠들었다. 엿새 전에 밤을 함께 지냈던 사람은 십 초안에 잠드는 나를 질투하며 새벽까지 잠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하는 극도로 예민한 남자였다. 일주일 전에 자고 간 사람은 등짝 가려움증을 앓았다. 환절기가 되면 등 긁개를 죽부인처럼 끼고 살며 내 앞에 등판을 보이며 긁어달라고 보챘다.

위에서 말한 사람은 모두 동일인이다. 뒤통수가 없고 적당한 음치이며, 잠자리가 까탈스럽고 건선염으로 힘든 남편이다. 남편이 내 침실에 자고 간 날을 꼽아보니 일만 일천 이백 오십 일이다. 앞으로도 내 침실에서 자고 갈 날이 쇠털같이 남았지만 정작 그에 대해 말하라고 하면 여전히 머뭇거릴 것이다. 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큰소리지만 막상 말해 보라고 하면 찰기 없는 면발처럼 뚝뚝 끊어질 일이다.

침대에 나란히 누우면 그의 손은 저절로 나의 가슴을 향했다. 그것을 찰흙 만지듯 조물락거리거나 손바닥을 솥뚜껑처럼 대고 잠들었다, 손을 뿌리칠까 살짝 고민하다가 그곳에 손을 얹고 있으면, 고향의 앞마당에 앉은 듯 맘이 편안해진다는 말에 가슴을 허락했다. 연이어 우리 하나가 되어보지 않겠냐는 그의 귓속말에 가족끼리 이러는 거 아니라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침실에서 그는 수족냉증이 있는 나의 손발을 녹인 후, 꼭 껴안아 주었다. 그러면 순식간에 나의 몸은 따뜻해지고 세상에 대해 뾰족하던 마음도 누그러졌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건 소중한 삶의 불씨를 지켜내는 일이고 주변이 나를 무어라 평가하든 아무 상관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나를 만나며 안심했다. 그런 행복감은 가끔 그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잠이 드는데 나에겐 야릇한 잠버릇이 있었다. 잠결에 이불의 끝자락을 당겨 와서 다리 사이에 끼우는 고질병이 그것이다. 결국, 상대는 성을 빼앗긴 장수처럼 오돌오돌 떨다가 탈환을 시도하지만 녹녹치가 않다. 그는 무거운 눈꺼풀을 치켜뜨며 달래고 어르며 하소연도 해보지만 소용없었다. 어디 그뿐이던가. 두 손을 가지런히 가슴에 모은 채 꼼짝 않고 잠든 그의 옆구리를 발로 차거나 한쪽 다리를 몸 위에 올렸다. 

유독 두꺼운 나의 허벅지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그의 얄팍한 잠은 날마다 부서지고 말았다. 산산이 부서진 잠의 조각을 이어 붙이려는 남편의 몸부림은 처절했다. 급기야 남편이 각자의 이불을 덮자고 했다. 소용없는 제안이었다. 불가침조약을 번번이 깨뜨린 건 나였으니까. 답답한 놈이 우물을 판다더니 쿠션을 내 다리 사이에 살며시 끼워주기도 했다. 깊은 잠에 빠진 나는 잠시 저지당하는 듯했으나 도루묵이었다. 

밤새도록 우리는 번갈아 가며 숨을 들이켰다 내쉬었다. 그의 날숨과 내 들숨이 엇박자를 놓으면 어김없이 기상 알람이 울었다. 그는 머리맡으로 손을 뻗어 앙칼진 음악을 껐다. 나는 침실이 너무 달콤하고 아늑하여서 이 순간에서 벗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그는 무어라 말하고 싶지만 참는 듯했다. 그래서 내가 고개를 돌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우리도 각방 써 볼까.

나는 침실에 홀로 남겨지는 날에 대한 두려움과 훼방꾼으로서의 미안함 등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해보는 말이었다. 대답 대신 그는 슬며시 몸을 일으키더니 나날이 선명해지는 내 종아리의 정맥을 위로하듯 쓰다듬었다. 무지외반증으로 틀어진 나의 발가락을 요리조리 살피더니 발바닥 중앙을 꾹꾹 눌렀다. 굳은살이 감각을 잃은 채 멀뚱거렸다. 

사흘 전, 남편은 그렇게 어물쩍 나의 침실을 떠났다. 살짝 서운함도 있었지만, 자업자득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해방감에 입 꼬리가 올라갔는데, 어젯밤에는 허전함을 넘어 불안함까지 밀려왔다. 오늘 아침에 방문을 열고 들어온 그가 뭉그적거리는 나를 깨우려고 옆에 슬쩍 누웠다.

 에휴, 세상에 변치 않는 건 없다더니.

괜히 남편의 맘을 확인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했다. 그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엄청 세게 껴안더니 두 다리 사이에 나를 끼우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의 몸무게를 견뎌내다가 숨이 막혀서 나는 갑자기 침실에 혼자 남고 싶어져 버렸다.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내 마음의 중심추가 제자리를 찾도록 도와주었다. 이제는 침실에 혼자 남아도 괜찮겠다는 편안한 맘으로 그와 먹을 아침상을 준비한다. 우리는 아침에 일찍 출근하고 저녁에 다시 만날 것이다. 오늘은 그에게 침실을 혼자 쓰니까 너무 좋아. 라고 말해야지. 아침에는 큰 소리로 말할 자신이 있는데 저녁에는 어떨지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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