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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울 Aug 22. 2023

강(江)과 관(官)

<1>내 엄마의 이름은 ‘정강’이다. 고요할 정(靜)자와 강물 강(江)자로 이루어졌다. 엄마의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아버지가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생각난다. ‘아이고 정강이야’하는 장난기 섞인 목소리. 아랫다리 앞쪽의 뼈가 있는 곳을 두드리며 정강이가 말을 잘 안 들어서 좀 때려야겠어. 내지는 무릎을 쓰다듬으며 정강아 오늘 하루 고생이 많았다는 말로 엄마에 대한 마음을 표현했다.

<2>엄마는 1940년 여름. 경북 칠곡에서 태어났다. ‘관’이라 불리던 아버지가 걸음마를 완전학습하고 한창 세상의 언어를 배우던 해이기도 하다. 천하에 조용한 여자와 화통을 삶아 먹은 듯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남자의 막내딸이었다. 그녀는 강이라고 불리며 무럭무럭 자랐다. 강과 관, 둘은 모두 외동이었는데 강의 부모와 관의 부모는 공통분모가 조금도 없었다. 각기 다른 부모 아래서 둘은 무척 다른 모습으로 자라고 있었다. 다른 게 어디 부모뿐이랴. 그들을 키운 집도 주변 풍경도 친구도 먹거리도 달랐을 것이다.

<3>강의 유년기에는 경북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X축만 있었다. 그녀는 큰 강을 낀 물가 동네의 고만고만한 집안의 고명딸이었다. 태어나 보니 일곱 명의 오빠들이 있었기 때문에 늘 씩씩하고 용감했다. 강을 모르면 구덕리 사람이라 할 수가 없었다. 강을 부르는 목소리는 늘 담장 너머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다. 자기 이름을 들으면 쪼르르 달려가서 인사를 건넸다.

진지 드셨어요. 더위 드실까 걱정입니다. 바람이 차가우니 고뿔 조심하셔요.

<4>어린 강의 얼굴은 복사꽃 같았다. 그녀는 구덕리에서 복숭아뿐만 아니라 강둑에 지천으로 널린 삘기순을 먹고 자랐다. 그녀는 이른 아침에 들판에 나가서 이삭을 줍지 않으면 등교중지 처분을 내리는 분의 딸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소꼴을 한 망태기씩 베고 부엌일을 배웠다. 아궁이에 솔가리로 불을 피우고 부지깽이로 불의 강도를 조절하는 요령도 익혔다. 불이 피우고 숯을 화로에 담아서 안방에 들이고 그 위에 된장 뚝배기를 올려서 보글보글 끓이는 방법도 터득했다. 손끝이 야물어서 나물도 잘 무쳤다. 시래기에 채 썬 무와 된장을 넣고 바락바락 주물러서 맛내는 일은 그녀의 주특기였다. 강은 날마다 밥상을 차려서 식구들을 봉양하는 자신의 엄마를 도왔다.

<5>강은 국민 학생이었을 때 달리기를 참 잘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말하자면 운동장을 돌 때 발이 안 보였다나. 그래서 자주 학교 대표로 뽑혀 대회에 참가했다. 강은 달리기보다 장대높이뛰기가 좋았다. 육상 도약 경기로서 도움닫기를 통해 속력을 붙인 다음, 폴을 바닥에 꽂아 그 탄성을 이용하여 높이 도약하는 경기이다. 그녀는 많은 이들 앞에서 방해물을 가볍게 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작은 시골의 조그마한 학교에서 우사인 볼트 내지는 앨리슨 스토키에 버금가는 관심을 받았다.

<6>강은 사백 년 된 포구나무 아래서 사흘 밤낮을 빌고 빌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 꼬부랑 글씨를 배우게 해 달라고. 지성이며 감천이라더니 어른들의 허락이 떨어졌다. 상급학교에는 강보다 운동을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강은 자신의 존재가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키가 상대적으로 매우 땅딸막하고 다리가 짧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 무렵, 강은 신체적으로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동시에 한없이 외롭고 쓸쓸해졌다.

<7>열일곱 살이 된 강은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갈 수가 없었다. 시집 가 버릴 여자아이를 공부시키는 일은 남의 좋은 일시키는 짓이라는 생각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다락방에 올라가 문을 걸어 잠그고 일주일 동안 나오지 않았지만 소용없었다. 일주일 뒤 다락방에서 내려온 날, 그녀는 식모살이를 떠나는 친구를 배웅한 뒤 막걸리 한 주전자를 마시고 강가를 서성였다.

<8>그 무렵 ‘관’은 국어 교사가 되고 싶었고 청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니까 지금의 영남대학교인 것이다. 그는 어깨를 한껏 웅크린 채 외톨이형 캠퍼스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강과 관이 서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만약 두 사람이 같은 학교 같은 학과를 다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강이 대학생이었다면, 그래서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면 관은 강의 뒤통수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녀는 호기심이 많고 배우는 일에 적극적이므로 분명 맨 앞자리에 앉았을 것이다. 

<9>관은 타고난 우울감과 싸우며 담배를 피우고 구석진 자리에 앉는 학생이었다. 수업 중에 손을 번쩍 들고 거침없이 질문하는 강을 속으로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관은 분명 그녀를 훔쳐보았을 것이다. 그 누구라도 강을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니까. 강은 쌍까풀이 선명한 눈에 오뚝한 콧방울을 가진 예쁜 얼굴이었다.

<10>국군장병 위문편지 쓰기로 국어 선생님의 관심을 받았다는 강이 만약 대학 교육을 받았다면 어떤 글을 썼을까. 나는 가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럴 때마다 슬며시 웃음이 난다. 

<11>강에게 실제로 ‘관’이라는 Y축이 생긴 건 1960년 겨울이었다. 강은 팽나무 아래서 동무들과 어울리던 막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관은 등록금 납부 기한을 지키지 못한 채 가난과 엎치락뒤치락하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구덕리 사랑방에서였다. 관이 보기에 강은 몹시 수줍어했으나 매혹적이었다. 한껏 멋 부린 뺨과 몸은 탱탱했다. 집안 아저씨는 관을 사육신의 후손으로 뼈대 있는 집안의 자손이라고 소개했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부지런하고 성실하다고 했다. 강은 무뚝뚝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관이 두려웠지만, 족두리를 허락했다.

<12>관이 강을 선택한 건 당연지사다.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 애인이라고 소개하고 싶을 만큼 강은 탐스러웠으니까. 그런데 강은 왜 관을 선택했을까. 그녀는 어째서 외곬이라 숨이 턱턱 막히는 관과 아웅다웅 살게 된 것인가. 둘에 대해 생각하면 늘 그런 의문이 생긴다.

<13>강(江)은 어떤 장애물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기어이 바다에 닿는다. 그렇다고 그냥 무작정 흘러가는 건 절대 아닐 것이다, 머무르지 않지만 바꾸고 떠난다. 그 깊이를 보여주지 않으며 쉬는 법이 없는 강물은 결코 무력감에 휩싸이지 않는다. 역동적이다. 그래서 엄마의 이름은 강(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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