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과 ‘납짝’
고향이 강원도인 선배가 있다. 만두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물만두, 찐만두, 군만두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선배와의 약속 장소는 무조건 만둣집이다. 들뜬 목소리로 오늘은 남문시장으로 오라고 했다. 머리에 털 나고 이런 만두는 처음이라나, 어쩌나.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라도 이처럼 요란스럽지는 않았으리라. 주차 공간도 없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오라는 말에 꼭 그곳에서 만나야겠느냐고 물었다. 다분히 저항적인 말투였지만 선배는 망설임이 없었다.
자전거 수리와 금은방 가게 사이에 낀 만둣집의 외관은 시골 아낙처럼 소박했다. 문을 밀고 들어서려고 하자 저만치, 선배가 사람 좋은 웃음으로 반겼다. 엄지손가락을 절레절레 저으며 허름한 테이블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대기 순서를 기록하는 공책이 얹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입장을 기다리는 손님들이 목을 빼고 있었다. 여행용 가방에 걸터앉아 핸드폰에 정신이 팔린 청춘도 있었다. 나는 선배와 골목길 벤치에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는데, 그들이 한 버스를 타고 음식 여행을 떠난 가족처럼 느껴졌다.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납·짝·만·두. ‘납작’과 ‘납짝’은 분명 다르다. ‘납작’보다는 ‘납짝’이 입에 착 감긴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몸치장을 조금은 할 법도 하련만, 그 흔한 알전등 하나 달지 않은 모습이었다. 흙 묻은 장화 발로 나를 반기는 듯한 덥수룩함에 정을 주어야 할까, 눈을 흘겨야 할까.
삼십여 분을 기다리고서야 입장을 허락받았다. 분식집에 흔히 있을 법한 메뉴들이었다. 떡라면, 떡볶이, 만둣국. 하나같이 사오천 원 안팎이니 요즘 세상에 참 착하다. 선배는 익숙한 솜씨로 물을 가져오고 의자를 당겨 앉으며 외쳤다.
"여기 납작 만두 대(大) 자 두 개, 떡볶이 하나 주세요. “
나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모습에 변명이라도 하듯
”일단 먹어보면 알게 될 거야. 나중에 더 시키자고 하지나 마라. “
나에게 납작 만두는 추억의 음식이다. 납작 만두는 달고나, 뽑기와 더불어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빼앗는 먹거리로 삼대 천왕에 속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비싼 군것질거리였기에 나 같은 아이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커다란 철판 위에 기름을 두르고 만두를 서너 장씩 겹쳐서 굽는 아줌마의 손놀림은 거의 신의 경지였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면 뒤집개로 가운데를 가르고 간장 한두 숟가락을 두르면 그 맛은 가히 천상의 음식이었다. 나는 부잣집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볼 때마다 입맛만 다셨다. 세월이 한참이나 흐른 뒤, 그 맛이 그리워 대기업에서 만든 납작 만두를 사 먹어보았지만, 예전에 먹던 그 맛이 아니라 실망한 적이 있었다. 진짜 납작해야 납작 만두인데 소가 너무 두툼했기 때문이다.
선배는 아주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났다. 납작 만두 홍보대사라도 시켜야 할 판이었다.
”납작 만두의 역사는 오륙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 그때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절이었잖아. “
”맞아, 기억난다. 담임이 혼식 도시락 검사도 했었지. “
나의 맞장구에 선배는 침을 튀기며 열을 올렸다. 마치 자신이 그 당시의 정책 입안자라도 되는 양 떠들었다. 선배의 긴 사설을 요약하면 이렇다.
‘육칠십 년대, 정부는 미국산 밀가루를 국내에 대량 들여왔고, 싸고 흔해진 밀가루로 만두피를 만들 여건은 충분했으나 만두소로 쓸 재료가 없었다. 그래서 씹는 맛을 낼 수 있는 재료를 고민하다가 당면을 넣었다. 납작 만두가 만들어진 과정이 놀랍지 않냐?’
새로운 모양과 맛의 음식은 시대적 상황에 맞게 만들어지는 게 당연하지. 그렇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두 여인은 주방을 담당하고 한 여자는 주문과 계산을 맡고 있었다. 상냥함이나 친절함과는 담을 쌓은 듯 무심한 표정이었다. 물도 스스로, 단무지도 스스로. 고객은 왕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저 세 사람은 어떤 사이일까 싶었지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세월의 흔적만 조금씩 다를 뿐, 거의 붕어빵이었으니까. 뜬금없이 박수근 화백의 '장터에 앉아 있는 세 여인'이 떠올랐다. 펑퍼짐한 몸집에 하루 벌이 장사를 하는 그림 속 여인들이 걸어 나온 듯했다.
선배의 말에 의하면 세 여인 중에서 납작 만두를 굽고 있는 저 여인이 첫째라고 했다. 남매 중 맏이인 사장은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가게를 짬짬이 도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촉망받는 회사원으로 일했으나 어머니가 작고한 뒤 가업을 이어받았다. 당시 무엇에 홀린 듯 납작 만두 뒤집개를 잡았고 벌써 삼십 년이 다 돼 간다고 했다. 어디까지가 참말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노포(老鋪) 후보군에 넣기로 했다.
드디어 만두가 나왔다. 설레는 맘으로 파를 듬뿍 넣은 간장에 쿡 찍은 후, 야무지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야들야들한 만두의 속에는 거의 아무것도 안 들어가 있다. 그렇다고 아예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도 없다. 당면 서너 줄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맛이야. 이때, 감동에 벅찬 내게 찬물을 끼얹는 여고생의 말이 들렸다.
”만두가 덜 구워진 거 같은데? 이건 뭐 굽다가 말았잖아. “
둘은 갸우뚱한 표정으로 우리 테이블을 곁눈질하더니, 자기네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서야 먹기 시작했다.
남 가르치기 좋아하는 선배가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속으로는 '이 무식한 것들'이라고 외치고 싶었겠지만 점잖게 말했다.
"얘들아, 자고로 납작 만두는 촉촉하게 구워야 하는 거란다."
언제부터인가 음식계에 '겉바속촉'이라는 말이 등장하더니 모든 조리법에 적용되는 공용어가 되었다. 튀김에 가까울 정도로 만두피를 딱딱하게 만들어버리는, '겉바속촉'을 납작 만두에도 수학 공식처럼 적용한 탓이었다.
가게 문을 나서면서 선배는 굽지 않은 만두 한 봉지를 따로 손에 쥐여주었다. 어떤 이는 밀가루 토르티야쯤으로 생각하겠지만 나에게 이 납작 만두는 유년의 기억이 담긴 음식이다. 한때는 부잣집 친구의 비위를 맞추는 대가로 얻어먹는 유혹의 상징물이었다. 오늘따라 군침을 꿀꺽 삼키며 자존심을 지켜낸 어린 시절의 내가 새삼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