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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울 Oct 15. 2023

사십 년 남짓


 주말까지 반납하고 초과 근무하는 동료들이 안쓰러워 밥을 사겠노라 했더니 '좋다.'라며 따라나섰다. 그런데 학번으로 따져도 얼추 이십 년 남짓 차이 나는 그들 중 누구의 입맛에 맞추어야 할까. 김 부장을 생각하면 탕 집으로 가야 할 것이고, 송 기획을 생각하면 굽는 집으로 향해야 할 것이다. 두 사람에게 어디로 가면 좋겠냐고 묻자 사주는 사람의 맘이라며 극구 나에게 결정권을 미루었다. 고민 끝에 비도 부슬부슬 내리니 뜨끈한 국밥에 수육 한 접시. 요 정도면, 어느 정도 두 사람의 접점이 생길 듯싶었다.

  차가 골목길로 접어들자 김 부장은 바깥 풍경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궁금증이 생기면 잠시도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얼마나 거창한 걸 사려고 이렇듯 깊숙한 곳으로 들어서나 싶었을 것이다. 그때 어디선가 기운 없는 소리가 들렸다. 송 기획의 얼굴이 빨개졌다. 김 부장은 끼니때가 한참이나 지났으니 빈 소리가 나는 건 당연하다며 송 기획을 편들었다.

 나는 원래 돼지국밥을 싫어했다. 특유의 구린내가 싫기도 하고 다양한 부위의 고기들이 섞여 있어, 보기에도 썩 마뜩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집은 달랐다. 삼 년 전, 선배의 넋두리를 들어주려고 만났던 곳이다. 사주는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억지로 국물을 한술 떠먹어 보니, 내가 알던 돼지국밥과는 완전히 달랐다. 육수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느낌이랄까.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뒤에도 종종 들르게 되었다.

 김 부장이 간판을 힐끗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기 돼지가 너무 해맑게 웃고 있어서 죄책감이 든다나 어쩐다나. 또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했다. 한편 출입문을 열고 들어선 송 기획은  반대편 벽을 향해 달려갔다. 낙서처럼 끄적여 놓은 종이를 보고 어쩔 줄 몰라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야구 선수도 여기를 왔다 갔다며 사진까지 찍었다. 정말? 나도 놀라는 척해주었다.

  남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김 부장은 돼지국밥의 기원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두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무안 장터에서부터 시작되어 백 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는 밀양 기원설이다. 이에 맞서는 이북 기원설은 한국전쟁 당시 대거 월남한 흥남 일대 사람들이 정착시킨 음식이라고 한다.  내가 어느 주장이 더 맞냐고 묻자 김 부장은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모르겠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 남의 일에 끼어들기를 낙으로 삼는 모양이다.  옆자리에 앉은 노신사 한 분이 우리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반주 삼아 곁들인 소주병을 기울이며 말했다.

  "돼지국밥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잘 알지. "

   못 들은 척 해도 좋으련만. 이미 김 부장의 몸은 그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독백처럼 내뱉은 말에 김 부장이 낚였다. 노신사의 목소리에 힘이 빳빳하게 들어갔다.  

"이북 기원설?  어불성설이요."

밀양에 가면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한 식당이 삼 대째 버젓이 살아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소주잔을 비웠다.  담백한 국물과 두툼하면서도 푸짐한 살코기가 이 집과 닮았다며 김 부장에게 술을 권했다. 삼 형제가 선대의 전통을 잇기 위해 삼 대째 땀 흘리는 맛집이라는 말에 송기획도 의자를 돌려 앉았다.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송 기획의 젓가락은 역시 수육 쪽을 먼저 향했다. 90년생인 그녀의 입맛에는 어떨까. 음식 판정단의 결과를 기다리듯 오물오물 씹는 송 기획의 입만 쳐다보았다. 고개를 아래위로 서너 번 끄덕이더니,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쫄깃쫄깃한 식감에서 야성미가 느껴지네요.”

  무슨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싶어서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히죽이 한 번 웃을 뿐. 그게 전부였다.

  김 부장은 음식 앞에만 앉으면 콧등에 땀방울이 맺힌다. 그는 물수건으로 이마를  한 번 쓱 문지르며 말했다. 소 사골로 끓인 설렁탕이 잘 닦인 길을 가는 모범생 같다면, 돼지국밥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반항아 같은 맛이라고 했다. 교육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칭찬에 유명한 식객의 말이라며 나를 향해 손사래 쳤다.

 송 기획은 뜨거운 국물을 호호 불며 국물 색을 살폈고, 겉절이를 담던 주인장은 소 뼈로 육수를 우려내고 머리 고기를 쓴다고 했다. 여기서 머리 고기는 돼지머리 눌림이 아니라 돼지머리에서 발라낸 혀와 볼 등을 일컫는 것으로 외양과 식감이 독특해서 취향을 타지만 살코기보다 가격 대비 양이 많을 뿐만 아니라 육수에 콜라겐이 풍부하게 우러나와 국물이 고소하고 녹진하다.

 송기획이 살짝 주저하다가 물었다

  "식당 운영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는지요?"

  "돼지국밥을 끓여낸 지는 사십 년 남짓!"

 고기와 엎치락뒤치락 한 세월까지 합치면 반 세기라고 했다. 한 분야의 일을 삼십 년 넘게 하면 박사를 넘어 도사가 된다는 말이 있다. 고기는 써는 결에 따라 맛이 틀려지고 씹히는 질감이 달라진다니 내공이 느껴졌다. 고기만 바라보고 살아온 마음이 전해졌다.  

 밑반찬은 고향 텃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로 만든다는 말에 노신사는 호구조사에 나섰다. 고향은 거창이고 홀 서빙을 하는 젊은이가 아들과 며느리라는 사실까지. 문 바깥에서는 주야장천 불을 때고 솥을 올려 돼지를 삶고 있다. 국물에 녹아 나온 군내를 날리는 데 엄청나게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낯빛이 불콰해진 노신사는 자신의 고향 홍보까지 살뜰하게 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음골과 만어사, 돌이 눈물을 흘린다는 표충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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