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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랑심 Feb 23. 2022

다육이와  두 갈래 길

[팔랑심의 감성 채널]

다육이는 잎이나 줄기 등에 수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식물을 말한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선인장류 중에 대부분이 다육 식물에 속한다. 다육이는 키우기가 쉽고 통통한 줄기나 잎 때문에 모양이 귀여워서 키우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집에도 아내가 키우다가 내 팽개쳐둔 벽어연이라는 이름의 다육이가 있었다. 지금은 처갓집으로 이사를 들어오는 탓에 아마 어딘가로 버려지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사람이 다육 식물을  좋아해서 작은 다육이 하나를 온갖 정성을 다해 키웠다고 한다. 키운 지 2년쯤 되었을 때 분갈이를 해 주어야 잘 큰다고 해서 어느 날인가 분갈이를 위해 좀 큰 화분을 하나 준비하고 다육이가 몸담고 있던 흙을 걷어 내었다. 그러자 잔털 하나 없는 앙상한 뿌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플라스틱이었다. 다육이는 진짜가 아닌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였다. 그 사람은 그런 플라스틱에 2년 동안 열심히 물을 주고 혹시 죽을까 봐 마음 졸이고 때때로 햇볕도 쪼이면서 정성을 쏫았던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가 만든 여인 조각상이 아테나 여신의 마음을 움직여 숨을 쉬고 피가 도는 진짜 여인이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그 사람이 키우던 다육이는 여신의 눈길을  받지 못했다.  2년 동안 기울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플라스틱 그대로였다. 그 사람은 2년 동안 정성껏 키웠던 다육이 아니 플라스틱을 아무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내다 버렸다. 


이 이야기는 큰 딸에게 들은 것으로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한다.  아무리 살아있는 것과 죽어 있는 혹은 무생물인 것을 구분을 못할까 싶기도 하지만 다육이는 성장이 느리기 때문에 아주  허황한 이야기도 아닐 듯싶다. 여하튼 살면서 겪게 되는 황당하고 허무한 일이 종종 있지만 그 사람도 그랬을 것이다.  2년쯤이나 되는 긴 기간을 아무 의미 없는 일로 허송세월 했으니 말이다.


오늘 다이소에 들러 화분 2개를 샀다. 인조 다육이도 있었고 진짜 화초도 있었다. 향기가 좋을 것  같아 막 피기 시작한 쟈스민과 꽃은 볼 수 없지만 잎이 예쁜 아이비를 샀다. 영상의 밑그림으로 쓸 목적이기도 하고 마침 이제 봄도 되고 하여 화분을 입양해 보았다. 생화와 조화를 구분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조화는 눈으로 보기에도 조잡해 보였지만  무엇보다 생화가 가진  부드럽고 약해 보이는 촉감이 없다. 그래서 에피소드의 주인공처럼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세상사 많은 부분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은 생각만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기준을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서  진짜가  가짜 이기도 하고 가짜가 진짜이기도 하다. 그래서 세상은 이지경 아니 요지경이다.


내가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 출산을 돕는 것을 업으로 한지  30년이 넘었다.  다육이를 키우던 그 사람이  보냈던 2년의 10배도 더 지난 기간이다. 그 사람은 다육이가 가짜인 것을 알았지만 우리 인간은 자신이 키우는 다육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평생 알지 못한 채 열심히 키우다가 갈 수 있을 뿐이다. 아니 어떤 사람은 자신이 키우는 다육이가 뭔지도 모르고 가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삶의 목적이나 모습은 다 다른 것이니까. 

내가 어릴 때 불렀던 동요 중에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로 시작하는 동요가 있었다.  요즘 아이들도 그런 동요를 부르는지 모르겠다. 요즘 와서 다시 떠올려 보니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동요라기엔 내용이 참 심오하다. 그 동요의 맨 마지막 문장은 "살았니? 죽었니?" 하는 것이다. 내 다육이는 잘 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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