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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랑심 Feb 23. 2022

아내와 나, 이케아 나들이

[팔랑심의 감성 채널]

지난 일요일에는 아내와 이케아에 들렀다. 이케아는 스웨덴에서 시작한 다국적 기업으로 가구나 기타 생활용품을 파는 매장이다. 국내에는 광명점을 시작으로 고양, 기흥 그리고 부산에도 있다고 한다.  내가 가는 곳은 고양점으로 그곳에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는 않아서 가볍게 산책하면서 쇼핑하기는 좋다. 다만 이케아가 판매하는 것이 주로 가구나 살림살이 용품인 탓에 새로 살림을 꾸리는 젊은 부부들에게는 살만한 것이 많겠지만 이미 30년 이상 살면서 어지간한 물건은 다 구비한 우리 부부에게는 딱히 더  필요한 물건은 없다. 더군다나 내가 얹혀살던 아내 명의의 조그만  집이 재개발에 들어가서 살림살이는 그야말로 짐일 뿐이다. 그럼에도 아내는 이케아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매번 가도 그 물건이 그 물건이지만 아내는 매번 새록새록 볼 것이 생기는 모양이다.  나로서는 그저 아내가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고 적당히 운동도 되고 그러면서 병원에서 불과 20분 내지 30분이면 갔다 올 수 있는 가까운 거리라서 두어 달에 한번 정도는 가는 것 같다.


매장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함께 걸어 다니다가 어느 순간 보면 아내는 사라지고 없다.  아내가 관심 있어하는 것은  주로 주방용품이고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의자와 같은 사무용품이거나 간단한 전기용품이다. 특히 나는 조명 기구 있는 곳을 좋아해서 한참을 그곳에서 보낸다.  그렇게 두 사람이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따로 떨어져서 다닌다. 그러다가 다시 만나는 것은 2층에 있는 식당이다. 


보통 이케아에 가는 시간이 늦은 점심시간이거나 이른 저녁 시간인 수가 많아서 거기서 한 끼를 때운다. 아내와 나는 시키는 음식도 다르다. 나는 주로 폭립이든 스테이크든 돼지고기를 시키지만  아내는 연어나 샐러드 종류를 즐긴다. 그리고 보면 우리 부부는 결혼할 때부터 비슷한 것이 별로 없었다. 아내는 산을 좋아했고 나는 물을 좋아했다. 그래서 수련의 시절이나 지방 파견 나가 있는 동안  휴가는 항상 산으로 간 적이 많았고 바닷가에 간 적은 드물다. 산에는 물도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주된 이유는 휴가지 등 가정생활과 관계된 것에서 주도권은 아내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서 울고 웃으면서 아참 웃으면서 지낸 적은 별로 없고 그렇다고 울면서 지낸 적도 별로 없다. 생각해 보니 주로 화내고 싸우면서 지낸 적이 많다. 물론 지금은 기운이 빠져서 둘 다 김이 빠진 사이다 혹은 알코올이 날아간 와인처럼 산다. 그냥 무덤덤하게 산다는 의미다. 그 세월이 이제 37년에 접어들어간다. 내가 진료하는 대부분 산모들의 나이보다 많은 세월이다.

앞으로 우리 둘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의 길이는 모른다. 잘은 모르겠지만 지나온 세월보다는 턱없이 적게  남았을 것이다. 며칠 전에는 아내와 함께 자주 등산을 다닌  등산 친구가  담낭암으로 갑자기 죽었다고 한다. 같은 동네 살면서  각별히 정이 갔던 동생이라 아내도 마음의 상심이 컸다고 한다. 아직 아내와 나는 양가의 부모님께서 모두 생존해 계시니 자식이 먼저 가는 불효는 저지르지 말아야겠지만 평균 수명이 60세 언저리였던 옛날과는 다르다 해도 지금도 이 나이는 세상을 하직한다고 해도 아주 놀랄 만한 나이는 아니다. 


그리고 내가 항상 하는 말이지만 삶에는 길이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60년쯤이면 하고 싶은 것은 어지간히 하고 살았지 싶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고 많은 곳에 여행도 다녔다.  앞으로 먹고 싶은 것, 꼭 가고 싶은 곳, 꼭 하고 싶은 것이 없지 않지만 이것을 안 하면 안 되겠다 싶은 것은 한두 가지 밖에는 없다. 그리고 그 한두 가지는 내가 바란다고 꼭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이제는 마음을 비웠다. 그저 사는 날까지는 남에게 큰 피해를 끼치지 말고 지저분한 자욱을 남기지 말고 조용하고 깨끗하게 사라질 수 있는 행운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날 먹은 음식은 아주 맛있지는 않았지만 햇살이 좋았고 휴일 오후의 시간이 주는 여유 덕분에 나름 즐거운 시간이었다. 삶이란 별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루가 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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