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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랑심 Sep 01. 2022

Ep02. 병원의 선택은 결혼과 비슷하다

임신 280일, 두렵고도  설레는 특별한 여행


오늘은 출산을 앞두신 분들이 임신을 하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즉 병원의 선택과 관련한 주제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글을 보시는  분 중에는 이미 병원을 선택하여 잘 진료를 받고 계신 분도 있을 것이고 아직 출산 병원을 정하지 못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산부인과 병원에  갈 일은 아예 없는  분도 있겠지요. 그러나 비록 산부인과는 아니라도 병원을 가야 할 일이 평생에 단 한 번도 없는 분들은 아마 거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을 모두 포함하여  참고가 되도록  병원 선택에 관한 전반적 내용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병원 선택에 관한 내용이 길어서 임신 중인 분을 위한 산부인과 병원 선택에 관한 조언은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선택--

오늘 점심은 무얼 먹을지 하는 사소한 고민부터 이 사람을 평생의 반려자로 택할 것인가 하는 큰 선택까지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산다는 것은 곧 선택과도 같다는 의미에서 Birth와 Death의 사이는 Choice라는 말도 있습니다.

사소한 것이라 해도  한 끼를 해결할 음식점을 선택하기 위해서 하는 고민도 사실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하물며  질병에 걸렸을 때 혹은 출산을 앞두고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줄 병원을 선택하는 문제는 다른 어떤 선택보다 어려울 것입니다.  병원을 잘못 선택하였을 경우의 대가는 맛없는 음식으로 한 끼를 때워서 기분이 나쁜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일은 아마도 다음 4가지 범주 중 하나에  속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ㄱ.  중요하지 않고 힘들지 않은 일

ㄴ.  중요하지 않고 힘든 일

ㄷ.  중요하고 힘들지 않은 일

ㄹ.  중요하고 힘든 일

개인차가 있겠지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는 일과  큰 병의 치료를 위해 혹은  출산을 위해 병원을 선택하는 일이 아마도 중요하면서도 힘든 일일 것입니다.  중요하면서도 힘들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전에 모 종편에서 방영한  "먹거리 X파일"에는  착한 식당을 찾아서 소개해 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식당만큼 아니 어쩌면 식당보다 훨씬 더 중요한 병원에 대하여는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와 비슷한 추천 병원 혹은 어떤  단체에서 선정한 병원이라는 이름을 단 병원이 있기는 하지만 그 모두는 돈을 받고 선정한 홍보 목적의 것이거나 아니면 정부나 특정 기관에서 특정 목적하에 정한 것일 뿐 착한 식당과 같은 의미의  병원들은 아닙니다.


--착한 병원이 없는 이유--

그렇다면 분명히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착한 식당과 같이 착한 병원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평가 기준이 복잡하고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식당에 대한 평가는 맛과 서비스가 대표적인데 그 두 가지는 비교적 명확하여 설사 개인차가 있다고 해도 편차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내가 맛있고 서비스를 좋게 평가한 식당은 다른 사람도 비슷하게 평가를 합니다. 그러나 병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편차도 클 뿐 아니라 기준도 식당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판단의 근거가 될  정보를 얻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둘째는 그런 평가에 대하여 의사들의 수용력이 높지 않다는 점입니다. 평가를 해서 공개를 했을 경우 우수한 평가를 받은 병원이야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병원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공표하지 않지만 과거 한때  전국의 모든 산부인과 병의원의 제왕절개 수술률을 공개하고 그중 수술률이 낮은 병원 5곳과 높은 병원  5곳은 일간지 사회면 1면에 공개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런 조사를 하지도 공개하지도 않습니다. 공개하지 않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순위에 들지 못한 병원의 항의가 심해서였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병원 평가의 기준--

병원을 평가하기 위한 여러 지표들이 있지만 그중 일반인이 외부에서 그나마 알 수 있는 것은 병원의  규모, 장비 보유 현황,  그리고 의료진의 수 정도뿐이며 정작 중요한 의료의 질에 대한 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용해 본 사람들이 올린 온라인 상의 후기글을 통해 약간은 알아볼 여지가 있지만 그것도 직원의 친절 등  외부로 드러난 극히 일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2020년도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의료기관 이용 소비자 현황 조사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외래 진료를 받는 환자의 경우 의료기관  선택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ㄱ. 의사의 실력이 좋아서  61.1%

ㄴ. 병원이 유명해서   49.6%

ㄷ. 시설과 장비가 좋아서 43.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입원 진료를 받는 환자의 경우 의료 기관 선택 이유는 2위와 3위가 바뀌기는 했지만 크게 차이는 없었습니다.


얼마 전 모 대형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이 발생했지만  근무하던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이송했다가 사망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해당 병원에는 뇌수술을 담당할 의사가 2명이나 있었지만 그날엔  모두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병원의 두 의사가 실력이 부족해서 간호사가 사망하거나 혹은 그 병원의 시설이나 장비가 부족해서 사망한 것이 아닙니다. 의료진의 실력이나 병원의 시설과 장비의 수준에서 그 병원은 국내 탑 4에 속하는  병원입니다.

대형 병원에 가보면 흰 가운을 입고 다니는 많은 의사들, 수술복을 입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수많은 의료진과 지원 인력들이 있습니다. 더불어 복잡해 보이는 고가의 수많은 의료 장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이 병원은 내 생명과 건강을 안전하게 지켜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착각입니다. 모든 하드웨어는 사람이 다루는 것이며 사람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잘 작동하지 않으면 잘 만들어진 수술실이며 고가의 장비들이라고 해 봐야 그저 돌덩어리와 쇠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가운을 입고 다니는 수많은 사람도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며 그중 어떤 한 사람만이 나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의 성실함과 능력이 나의 건강과 생명을 좌우합니다.  그것은 큰 병원이든 작은 병원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의 사건에 대하여 뇌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어떤 의사분은  왜곡된 의료 수가의 문제가 있으며 이로 인해 의사들이 수가가 적고 위험이 높은 분야를 기피하다 보니 생긴 일이라고 합니다. 사실 출산도 그렇고 뇌 수술을 담당할 의사의 수도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왜곡된 구조는 당연히 해결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를 피상적으로 본 것일 뿐 문제가 생긴 핵심은 아닙니다. 뇌수술을 담당할 의사 중 한 명은 해외 학회에 참여를 했고 한 명은 휴가를 갔다고 합니다. 뇌수술을 할 수 있는 2명의 의사가 모두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 것은 그런 큰 규모의 병원은 말할 것도 없고 작은 병원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왜곡된 제도의 문제는 시간을 두고 해결해 나가야 하고 그런 제도의 미비가 의사의 책임에 대하여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번 대형 병원 간호사 사망은 이런 제도의 문제와 병원 시스템의 문제 등 등이 모두 얽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의사의 책임감 혹은 사명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병원 선택시 조언 구하는 대상--

그렇다면 사람들은 병원의 선택을 앞두고 누구로부터  조언을 받을까요?

역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한 같은 조사에서 외래 진료를 위해 의료기관을 선택할 때 참고하는 소스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ㄱ. 지인  추천 25.3%

ㄴ. 가족 추천 24.9%

ㄷ. 인터넷 사이트 12.8%

ㄹ. 병원 내 지인 12.1%

입원 진료 이용자들의 경우 1위와 2위 순위가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동일했습니다. 



얼마 전 저희 병원 분만실 어흥미호샘의 지인이 "번쩍 피자"라고 피자 가게를 차렸습니다. 개업 기념으로 보내준 피자는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픈하고 나서 장사가 잘 되는가 물어보니 첫날부터 주문이 많았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유명 브랜드 피자가 아님에도 많이 팔렸다고 하여 그 이유를 물어보니 이미 몇 군데 프랜차이즈로 지점을 내었고 이용자들의 평판이 좋은 편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생각 난 김에 피자뿐 아니라 직원들이 좋아하는 마라상궈나 떡볶이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배달 앱에 올라온 리뷰가 좋은 곳을 선택한다고 말하더군요. 직원 중의 한 명은 지인이 가게를 열어서 영수증 첨부 없이 리뷰를 좋게 달았다가 밴을 당했다고 합니다. 밴이란 강제 퇴출이라는 의미로 객관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평가를 왜곡할 수 있어서 아예 그 사이트에서는 주문을 차단당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의 배달앱들은 나름대로 평판 관리를 객관적으로 하려고 노력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병원의 경우는 그렇게 객관적으로 평가할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산부인과의 경우 그렇게 대놓고 홍보성 광고를 하는 곳은 별로 없지만 성형외과나 피부과는 광고에 쏟는 비용이 엄청나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성형외과만 해도 아르바이트 생을 두고 가짜로 후기를 올리고 악플은 포털에 이야기해서 내려 달라고 항의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관리에 드는 비용만  수천만의 비용이 든다고 하던데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의료의 3 요소--

연극의 3 요소는  배우, 관객, 희곡이라고 합니다. 이 3가지가 있어야 연극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의료의 3 요소는 저는 환자 또는 수요자, 의료인, 의학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환자나 수요자가 없는 의료는 연구는 될지 언정 의료가 될 수는 없고 의사 등 의료인이  없는 진료는 주술이나 민간 처방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의료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3번째, 환자와 의사 둘을 이어주는 것이 의학이라는 학문으로 이것이 3 요소 중 제일 중요한 항목입니다. 연극에서 희곡처럼 의학이라는 토대 위에서 의료 행위가 이루어집니다. 물론 이런 의료의 3 요소는  그저 제가 혼자 생각으로 가정한 것일 뿐 그런 개념이 현재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의학의 3 요소에 대하여는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예병일 선생님이 지은 "저도 의학은 어렵습니다만"이라는 책에 보면  의학의 3 요소는 의사의 의학 지식, 기계를 다루는 기술,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태도라고 합니다.  즉 지식, 기술, 태도가  3 요소입니다. 이런 3 요소는 사실 단어만 조금 바꾸면 의학뿐 아니라 많은 서비스 업무에 통용되는 내용일 것입니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로 법률 지식, 변론의 방법, 그리고 의뢰인을 대하는 태도로 바꾸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요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방송이 인기라고 합니다. 그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비결은 자폐 변호사라는 특이한 소재가 한몫했겠지만 그보다는 우영우라는 주인공이 의뢰인을 대하는 태도가 기존의 방식과  달라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의료 영역에서는 그런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자폐라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의사가 될 수는 있습니다. "굿닥터"라고 전에 KBS에서 방영한 프로그램처럼  자폐를 가진 의사가 주인공인 드라마도 있었고 외국 영화 "레인맨"의 주인공은  실제 자폐 의사인  킴픽이 모델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킴픽은 실제로는 자폐는 아니었다고 하지만요. 어쨌거나 변호사 우영우처럼 혁신적인 방식으로 재판을 이끌어 가는 것을 의료에서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재판에서도 사형 선고가 내려질 수 있고 한 사람의 권리를 매우 제약하는 판결을 다루므로 어느 정도는 의학과 비슷한 점이 있지만 재판은 직접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재판은  판사나 변호사 혹은 검사 등 어느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과 변호로 그릇된 판결이 나오더라도 그것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1심과 2심 그리고 최종심인 대법원 재판까지 3 심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료에는 3 심제가 없습니다. 의료 전달 체계라는 것이 있어서 1차 병원을 방문하여 진료의뢰서를 받아서 2차나 3 차 병원을 가도록 하고 있지만 이는 재판의 3 심제와는 다릅니다. 그리고 의료 전달 체계는 현재는 거의 유명무실 해져서 제 기능을 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여하튼 1차 병원에서 의사의 오진이나 잘못된 치료로 환자가 생명이나 건강을 잃었을 경우 2차 병원 혹은 3차 병원을 가더라도 회복이  어렵거나 치료는 고사하고 원상으로서의 회복조차 아예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생명은 한번 잃으면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의료에서 2차 병원, 3차 병원이란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판단을 받는 개념이 아니라 병의 중증도에 따라  치료에 적정한 병원을 단계를 나누어 둔 것뿐입니다. 즉 단순 감기는 1차 병원에서 다루는 것이 적합하고 각종 암이나 난치병은 3차 병원에서 다루기에 적절하다고 구분을 지어 놓은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1차 병원이 되었든  3차 병원이 되었든 의사 한 명 한 명의 판단과 행동은 매우 중요합니다. 1차든 2차든 3차든 한 의사의 실수는 만회가 어려운 것도 있어서 의학에서는 어떤 개인 한 의사의 혁신적인 방식의 치료나 진단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사소한 약 하나도 총 3차례의 임상 시험을 거쳐서 사용 여부가 허가가 납니다. 내가 만든 효과적인 약이 있다고 해서 검증도 없이 바로 환자에게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도 있나 모르겠는데 제가 어릴 때는 이명래 고약이 유명했습니다. 종기에 붙이면 금방 터지고 상처가 아물도록 한 연고의 일종으로 기름종이 같은 것에 싸진 까만 연고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개인이 개발한 연고나 알약은 가문의 처방약으로 민간이나 한방에서는 널리 사용되었지만 철저한 검증과 생체 실험 과정을 거쳐야 하는 현대 의학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명의란--

혁신적인 방식으로 진단을 하건, 혹은 혁신적인 방법으로 치료를 하던 의료에서는 그것이 안전하고 효과가 있는지를 수많은 사람의 비교 검토와 오랜 기간의 검증 과정을 거친 후에 실제 임상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 때문에 우영우처럼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변론을 승소로 이끄는 사례가 재판에서는 가능하겠지만 의료에서는 나오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따라서 의료에서 명의라고 하면 이전에 쌓인 수많은 지식을 잘 적용하여 잘 훈련된 능숙한 기술로, 환자의 아픔을 잘 헤아려서 치료를 해 내는 의사일 뿐입니다. 물론 그렇게 평범하게 잘 해내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는 합니다. 의료에서는 다수에게 적용할 수 있는 평범한 처방이 소수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비범한 처방보다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에 제가 수련할 때 대학병원에는 여러 유명한 교수님이 계셨는데  위암 수술의 세계적 권위자로 알려진 외과 교수님이 한분 계셨습니다. 인턴으로 교수님의 수술에 들어가서 보조를 하면서 보면 잘 모르는 제 눈에도 위암 절제 수술을 정말 깔끔하고 빠르게 해 내셨습니다.  역시 명의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었는데 나중에 외과 수술실  수간호사님의 말을 듣고는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 교수님이 전공의 수련을 하던 시절 똥손도 그런 똥손이 없었다고 합니다. 외과 전공의들 중 가장 수술을 못 해서 그 선생님의 어시스트를 서는 것을 다들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런 분이 수십 년 후에는 외과 수술의 명의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수많은 수술 사례라는 경험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소의치병, 중의치인,대의치국--

누구는 동의보감에 있는 말이라고 하고 누구는 중국의 국부라고 하는  손문이 한 말이라고도 하는데 저는 손문도 잘 알지 못하고 더군다나 동의보감은 읽어 보지도 못하여 정확한 출처는 모르는 채로 인용해 봅니다. 의사의 종류에는 3가지 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소의는 병을 고치는 의사이고, 둘째  중의는  사람을 고치는 의사이며, 셋째 대의는 나라를 고치는 의사라고 합니다. 저는 병을 고치는 것도 아니고 임신부들의 출산을 돕는 것이 주요 업무인 의사입니다. 임신과 출산은 병이 아닙니다. 따라서 저는  소의도 못되고 굳이 말하자면 준의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군대의 계급 중에는 소위 중위 대위가 있습니다. 그리고 소위의 바로 밑이 준위입니다. 사관 학교를 마치면 처음에 부대에 소위로 임관하는 것에 비하여 준위는 부사관 학교를 마치고 진급한 사람이 올라가는 계급이라고 합니다. 저는 산부인과 전문의로 군대를 가야했기 때문에 군대에서 별로 필요가 없어 전방 군대 복무 대신 대체  복무로 지방 의료원에서 산부인과 과장으로  36개월을 근무하였습니다. 군대의 군의관은 전문의가 아닌 경우 중위 계급장을 달지만 전문의는 대위 계급에 속합니다. 저는 전문의로 근무하였기 때문에  대위로 예편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의는 아니고 대위이면서 준의입니다.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서 좋은 의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값싸고 질 좋고 서비스도 좋은 음식은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료가 좋고 질이 좋으면 가격이 비싼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의사로는 비록 한의사이기는 하지만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을, 외국의 의사로는 슈바이처를 좋은 의사로 꼽습니다. 두 분 다 훌륭한 의사이고 가난하고 아프고 의료 소외 지역의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의술을 베풀었습니다. 만일 지금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에서 허준이나 슈바이처가 개업을 하였거나 대학병원에 월급쟁이 의사로 근무하게 되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제 생각에는 개업했다면 1년도 안돼 문을 닫았을 것이고 취직을 했다면 잘렸을 것입니다.


흔히 원장이 운영하는 소규모 개인 의원은 경영에 대하여 신경을 많이 쓰고 대형병원에 봉직하는 의사는 경영에 대하여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 데 그렇지 않습니다. 대형 병원의 의사도 자신의 월급은 물론이고 소속된 파트의 여러 직원들의 월급도 벌어야 할 책임가 있습니다. 매달 한 번씩 병원의 경영과 관련한 기획 회의를 하는 곳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실적이 좋지 않으면 퇴직하여야 하며 퇴직할 정도로 밥벌이를 못하는 것은 아니라도 성과가 뛰어나지 않으면 병원의 중요 직책을 맡기 어렵습니다. 참고로 대형병원의 원장이나 부원장 혹은 기획실장 등 중요 직책은  실적이 좋은 진료과의 의사가 차지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좋은 의사란--

환자에게는 비용을 많이 받지 않으면서도 긴 시간 상담을 해 주고 정확하게 진단을 해서 빠른 시일 내로 치료를 마무리해 주면서 그 모든 과정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정성 들여 설명해 주는 의사일 것입니다.  병원의 설립자에게는 수입을 많이 올려 주고 의료 분쟁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지 않는 의사가 좋은 의사고  보험 재정을 담당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약이나 처치를 최소한으로 하여 보험 재정을 축내지 않으면서 민원이 발생하지 않아 골치 아플 일이 없으면서 휴가 때나 의사들의 파업 투쟁 때도 문을 닫지 않고 진료를 해 주는 의사가 좋은 의사일 것입니다.

지금 이 영상을 보시는 분들은 병원 설립자나 정부 당국자의 입장은 아니니 병원을 이용하는 입장 혹은 차후 병원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는 입장에서는 진료 비용이 싸고 응대가 친절하고  정확히 진단해서 빠르게 낫도록 돕는  의사를 바랄 것입니다.


--병원과 의사의 선택--

병원 혹은 의사의 선택은 결혼과 비슷합니다. 정하기 전에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은 열심히 알아 보되 정하고 나면 믿고 따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의사란 것이 과연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있다한들 쉽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의사를 만나기를 바라기보다 자신의 여건에서 만나게 되는 한  의사로 하여금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게 하는 것이 쉬운 일입니다. 

그 방법은 신뢰입니다.

나에게 바가지를 씌울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의심의 눈초리로 진료를 받는 환자와 나를 전적으로 믿고 진단과 치료를 맡기는 환자.

둘 중에 누가 더 속기 쉬울까요? 속이기 쉬운 것으로야 물론 후자겠지만 의사는 기계가 아니고 여러분들과 똑같이 평범한 감정과 이성을 가진 사람일 뿐이기 때문에 후자의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가  신의 존재나 신의 말씀에 대하여  한 말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는 말이 의료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낫기 위하여 믿는다."

어떤 치료나 약이  나을지 안 나을지 의심을 하고 소위 명의라는 의사를 찾아 닥터 쇼핑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동네 주치 의사를  믿고 따르면서 그의 조언대로 행하면 결국 낫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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