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의사: "임신 7주입니다. 오늘이 4월 26일이니 출산 예정일은 12월 13일이 되겠네요."
남편: "임신 7주면 대략 한 달 반쯤 되었다는 건가요?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저희는 결혼한 지 한 달 밖에 안되었거든요."
의사: "임신 7주라는 건 임신한 날부터가 아니고 마지막 생리 시작일부터 계산한 겁니다. 그러니까 실제 임신된 날은 5주쯤 전인 거죠."
남편: "그럼 우리 부부가 결혼하고 신혼여행 가서 처음 잠자리한 것이 3월 29일이면 임신 7주가 맞나요?"
의사: "3월 29일이 임신된 날이고 그 14일 전인 3월 15일이 부인의 생리 시작일이라면 오늘은 임신 6주에 해당하는 날입니다. 그렇지만 초음파 검사는 개인에 따라 1주일 정도가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임신 6주라도 초음파에서 태아 크기나 태낭 크기로 판단했을 때 7주로 나올 수도 있고 5주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남편: "정확히 며칠에 임신된 건지는 모르나요?"
의사: " 1주일 정도 차이가 날 수 있으니 임신된 정확한 날짜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
남편: "그럼 태아 혈액형은 언제부터 알 수 있나요?"
의사: "태아 혈액형이요? 태아 혈액형은 제대 천자 검사로 태아 혈액을 채취하면 알 수 있지만 너무 위험한 검사라서 잘하지는 않습니다."
남편: "제대 천자 검사인가 하는 건 언제 할 수 있나요?"
의사: "그 검사는 산모 복부를 통과하여 자궁에 바늘을 찔러서 탯줄의 혈액을 뽑는 거라서 임신 7개월이나 되어야 할 수 있는 검사입니다. 그런데 왜 그 검사를 궁금해하시는 건지....."
남편: "아무래도 날짜가 너무 차이가 나는 것 같아서 아기가 내 아기인지 확인할 수 있는지 해서요."
의사: "제대 천자 검사나 양수 검사는 염색체 이상을 보는 목적이지 친자 확인 목적으로 하는 검사는 아닙니다."
남편: "그럼 태아가 내 친자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나요?"
의사: "예. 출산 전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옆에 앉은 산모는 잔뜩 화가 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내용을 들어보니 아내에게는 결혼 전에 동거하던 남자 친구가 있었다. 남편은 그런 아내가 전 남자 친구와 아직 관계를 끊지 못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그러던 차에 아기의 임신 주수마저 차이가 있다 보니 의혹을 가지게 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산모의 뱃속에 있는 아기의 아빠가 누군지를 의학적으로 명확히 밝혀보기는 어렵다. 태아에 대한 친자확인 검사를 하려면 양수 검사나 융모 검사를 해야 하는데 친자 확인 목적으로는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양수 검사나 융모 검사는 태아 사망이나 조산의 위험 때문에 의학적으로 꼭 필요한 경우에만 시행한다.
출생한 아기에 대하여 친모가 누군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친부가 누군지에 대하여는 염색체 검사를 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필요에 따라 아이의 친자 확인 검사를 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태아에 대한 친자 확인을 요구하는 분은 사실 많지 않다. 친자 확인 등 출산 전에 하는 유전자 검사에 대한 규정은 우리나라는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정해두고 있다. 이 법에 근거하여 임신 중에 시행하는 양수 검사나 융모 검사 등의 염색체 검사는 모두 산모의 동의를 받고 검사를 한다. 혈액형이 부부 두 사람 사이에서 나올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거나 남편이 무정자증임에도 임신된 경우 등 출생 후 친자 확인을 요청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8년 법원에 접수된 친자확인 소송은 4,492건이라고 한다. 의뢰 건수 중 약 30%는 친자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생각보다 꽤 높은 수치다. 친자 확인 소송의 사례가 아닌 일반적인 전 세계의 평균 부성 불일치율은 1%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99%는 친자가 맞고 단지 1% 만이 친자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자기의 유전자가 포함되지 않은 아기를 기르는 것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래서 확실히 자신의 아기를 키우기 위해 일부일처의 결혼 제도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다.
무정자증이나 희소 정자증의 문제로 임신하기 어려운 부부에게 남편 혹은 타인의 정액을 자위를 통해 받아서 특수 처리를 한 후에 가느다란 관에 담아 여성의 자궁 내로 직접 넣어 주는 난임 시술을 인공 수정이라고 한다. 남편의 정자를 이용한 인공 수정은 "배우자 간 인공 수정 (AIH, Artificial Insemination by Husband)"이라 하고 타인의 정자를 이용한 인공 수정은 "비배우자 간 인공 수정 (AID, Artificial Insemination by Donor)"이라고 한다. 지금은 웬만한 대학 병원에는 정자은행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산부인과 전문의 수련을 하던 30년 전에는 정자은행이 없었다. 그래서 정자를 확보하는 것이 산부인과 전공의 2년 차의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2년 차 중에 학생 실습을 지도하는 사람을 교육 담당 수석의 (Education chief)라고 부른다. 인공 수정 시술을 받을 난임 부부가 배란기가 되어 병원을 방문하면 정자를 확보하기 위해 교육 담당 수석의는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야 한다. 보통 도서관을 방문하는 것이 제일 쉽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서울대학 병원에서 인공 수정을 하면 서울대 의대생의 정자를 받아서 인공 수정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난임 환자들 사이에 암암리에 소문이 나있었다. 그래서인지 이왕이면 머리 좋은 유전자를 받고 싶은 마음에 서울대 병원에는 인공 수정 환자가 많았다. 산부인과 실습을 도는 학생 중에 정자 공여를 많이 하는 학생도 있고 그렇지 않은 학생도 있다. 한 명이 한 번에 여러 번 정자 기증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학생들은 한번 이상은 교육 담당 수석의에게 끌려가기 쉽다.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 번도 정자 기증은 하지 않았다. 당시의 서울대 병원을 이용한 난임 부부들에게는 기여한 바가 없어 죄송하지만 나는 머리도 체력도 뛰어나지 않으니 오히려 잘한 일이 아닐까 싶다. 말썽꾸러기는 지금 있는 내 아이들 3명으로 충분하다.
법적으로는 친자라는 것이 꼭 유전적 자녀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자 기증으로 낳은 아기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부부 어느 한쪽의 유전자도 가지고 있는 않은 입양아도 친자다. 흔히 입양아는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는 말을 한다. 자신의 유전자가 섞인 아기를 낳고 기르고 싶은 마음은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의 욕망이다. 그리고 그런 본능이 있기 때문에 한 생물종이 유지될 수 있기도 하다. 많은 난임 부부들이 힘든 과정을 거치고라도 자신의 아기를 낳고자 하는 것도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으로만 살아가는 동물이 아니다. 본능 외에 이성이 있다. 직접 진통을 해서 낳은 아기나 진통 없이 가슴으로 낳은 아기나 다 자신의 아기다. 직접 산고를 겪고 낳은 아기만이 내 아기라는 생각은 상당히 좁은 틀이다.
태아가 양막을 뚫고 나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듯이 갇힌 사고의 틀을 깨고 나와야 좀 더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입양아가 내 친자가 될 수 있다면 내가 직접 낳지 않았더라도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은 내 자녀일 수 있다. 나이 든 모든 이는 내 부모가 될 수도 있고 비슷한 또래의 모든 사람은 형제자매가 될 수 있다. 많은 종교들에서 인류애를 강조하는 것은 그럼으로써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해서일 것이다. 흔히 종교를 내세에서 천국에 가는 것이 목적인 것으로 잘못 이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알기로 종교의 목적은 지금 현재의 삶을 의미 있고 선하게 살게 하려는 것이다. 나와 피를 나누지 않은 모든 사람들을 적과 원수로 여기는 곳이 지옥이라면 유전자와 관계없이 모두 친구나 가족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곳이 천국이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달리는 84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부인이었던 갈라와의 사이에 자녀는 두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전 한 60세 여성이 자신이 살바도르 달리의 친딸이라며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녀는 1950년대 자신의 어머니가 달리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면서 달리와 연인 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했다. 친딸인 것을 증명할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스페인 정부는 할 수 없이 지방의 극장 지하실에 묻힌 달리의 무덤을 개봉하기로 결정했다. 1톤에 달하는 덮개를 제거하고 달리의 시신에서 피부와 손톱, 뼈의 일부를 채취하여 DNA 분석을 했다. 결국 그녀는 달리의 친딸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녀가 달리의 친딸이었다면 달리가 남긴 재산의 25%를 차지할 자격이 생겼겠지만 대신 그녀는 막대한 묘지 발굴 비용만 떠안고 말았다.
여기 실은 그림은 달리가 21살 때 바르셀로나 미술학교에 다닐 때 그린 자신의 아버지의 초상이다. 아직 초보 화가로 초현실주의 작풍이 뚜렷하지 않은 시기의 그림이다. 달리가 17살이 되었을 때 달리의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나서 달리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여동생 그러니까 달리의 이모와 재혼을 했다. 그런 이유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달리는 변호사인 아버지와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림에서도 왠지 모르게 완고한 느낌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아들의 그림 활동을 위해 기꺼이 초상화의 모델이 되어 준 모양이다. 손에 든 담배 파이프나 멋진 양복을 보면 달리가 보여준 쇼맨쉽 기질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달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본다면 그림의 인물은 누가 봐도 달리의 아버지다.
-여기 실은 그림-
살바도르 달리의 “내 아버지의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