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빠의 장애인 저널
아빠는 어느 날 새로운 일이 생겼다면서 ‘장애인 저널’ 기획서를 보여주었다. (아빠는 오래전부터 신문을 만드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급진적인 장애 운동을 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나름 반가웠다. 밥 먹으면서 전장연 이야기도 하고, 비마이너 이야기도 하고, 이길보라 언니의 신작에 대해서도 나누었다. 아빠랑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게 얼마 만인지. 머지않아 첫 신문이 나왔다. 나는 거부당한 몸을 꼭 읽어보라며 추천했다. 아빠는 대뜸 물었다.
“왜 아빠가 장애인 같아?”
장애인 신문을 만든다는 사람이 이 정도라니. 1차 충격. 무슨 소리냐고, 꼭 장애인이어야 읽어야 하는 거냐며 한마디 하니, 다시 대답한다.
“아빠가 소수자에 관심이 많긴 하지…”
아빠는 장애인 관련 신문을 만들 수 있을지언정 결코 본인은 장애인이 될 수 없으며, 장애와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그저 호혜와 자비로운 마음만 있을 뿐. 기만적이고 화가 났다. 장애가 없는 이는 장애에 대해서 논하지도, 언급하지도, 알 필요도 없는 것인가? 장애는 왜 아빠의 이야기가 될 수 없는가? 무엇이 아빠를 장애로부터 이토록 멀어지게 만든 것일까?
아빠의 창간사는 ‘인간해방과 장애인해방’에 대한 이야기였다. 미간을 조금 찌푸린 채 읽었다. (아빠라서 그런 것도 있을 테지만) 아빠가 장애와 멀찍이 떨어져 ‘해방’을 논하는 글을 써 내려가는 동안 엄마는 장애 속으로 들어갔다. 코로나에 걸린 이후로 거동이 어려워진 할머니의 장애를 기꺼이 나눠 가졌다. 집 밖으로 나설 수 없는 할머니와 함께, 꼼짝도 못 하는 신세가 되었으니까. 식민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이며, 인간 중심적으로 재생산되는 ‘해방’의 이야기는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 엄마의 이야기는 훨씬 해볼 만하다. 돌봄 최전선의 이야기야말로 허울뿐인 해방보다, 더 해방에 가까운 이야기로 들리니까.
아빠의 운동이 아닌, 엄마의 운동에 동참하고 싶다. 끝도 맥락도 없이 권리와 정상성 기준에 꿰맞추면서 파괴와 착취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가야 할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가 같이 있는 것이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바꿀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그렇게 전하고 싶다.
2. 엄마의 왼손 약지
그렇지만 엄마의 삶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매일 두세 번씩 기저귀를 갈았다. 가끔 배설물이 기저귀와 패드 밖으로 나오면 이불을 교체하고 세탁했다.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주 몸을 굴려주어야 하고, 온도가 적절한지, 티브이는 잘 작동하는지, 섬망 증상이 오진 않았는지 확인한다. 2주에서 한 달에 한 번은 할머니를 들어 휠체어에 태워서 병원에 왔다 갔다 했다. 피가 잘 나오지 않는 할머니 팔에 주사를 찔러 넣는 검사를 하고, 의사를 대면하고, 약을 지어왔다. 일주일에 한 번은 입맛이 까다롭고, 씹을 수 없는 할머니를 위해 영양이 고루 갖춰진 대용량 죽을 끓였다. 이 죽은 그냥 죽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야채와 고기를 아주 잘게 다져서 따로 볶고, 찹쌀로 밥을 짓고 팬에 얇게 펴서 오랜 시간 구워가며 누룽지를 만들어서 그걸로 다시 죽을 쑤었으니까. 그 정성을 들인 죽 한 그릇을 하루에 세 번 약 시간에 맞춰서 한술씩 입에 넣어주었다.
엄마라고 장애를 가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이라는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었다. 외상이나 골절, 절단 후에 회복이 되었음에도 통증을 느끼는 질환이다. 신체의 일부가 절단되었는데도 그 부위에서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원인도 명확하지 않고, 치료 방법도 없지만 손가락 한 마디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겨 방치한 것이 더 큰 문제가 되었다. 엄마는 아픈 손가락으로 암벽도 오르고, 자전거도 타고, 요리도 하고 살림도 하고 할머니도 돌보았다. 게으름뱅이 활동가인 나보다 훨씬 생산성이 높은, ‘갓생’이었다. 그럼에도 하루에도 여러 번 시퍼렇게 변해가는 손가락을 부여잡는 모습을 보는 것은 속상했다.
그럴 때면 우리도 그냥 다른 이들처럼 편해질 순 없을까 생각했다. 왜 삼촌들과 일을 나누지 않느냐며 잔소리하기도 했다. 차라리 돈이라도 더 받으라고. 아니면 요양원을 알아보는 건 어떠냐고. 엄마는 침묵했다. 엄마의 삶은 할머니와 너무나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 사는 집도 할머니가 세대주이고, 돌봄에서 나오는 비용, 이를테면 국가의 보조금이나 가족 요양 비용, 용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엄마는 이런 것들을 꽤나 지혜롭게 운용했다) 게다가 위에 언급한 양의 돌봄 노동은 일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어떨 것 같냐는 나의 물음에 엄마는 -홀가분하지 않을까 싶었던 예상을 가볍게 비껴가며 -섭섭할 것 같다고 했다. 속상할 것 같다고도 했다. 엄마는 두려운 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를 돌보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걸지도 모르겠다.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워 보이는 할머니의 삶은, 엄마를 살아가게 하는 삶이기도 했다.
수전은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은 돌봄이 필요 없다거나 돌봄을 받는 사람은 돌봄을 제공하지 않는다. (268)’는 전제에 대해서 언급하며, 돌보는 자와 돌봄 받는 이의 경계에 대해서 질문한다. 이것으로 인해 장애인은 의존적이며 수혜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사회적 역할을 제한받게 된다. 마치 아빠의 알량한 온정주의처럼 말이다. 우리가 할머니를 거동 불편 노인 취급을 한다면, 아마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시설에 맡겼다면 그 존재를 잊은 듯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엄마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고, 그것은 여러모로 엄마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덕분에 할머니는 거동을 못 하실지언정 어느 면에서는 경제권을 가지고 있는 위치에 머물 수 있으며, 정서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가족들을 쥐락펴락하기도 한다. 약지가 아픈 날이나, 몸과 마음이 힘든 날이면 엄마는 우울했지만, 어찌 되었든 할머니 식사를 챙겨드리려 침대에서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우리는 할머니가 침상 위에서(도) 끼치고 있는 영향력이 무엇이 있는지 더 많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이 처절한 돌봄의 현장은 그다지 이상적이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이해타산적이기만 하거나, 차갑기만 하지도 않았다. 엄마의 운동에 동참하고자 일단 조용히 지켜보며, -나 또한 아픈 사람으로서- 돌보는 이의 옆에 있어 주는 것으로, 작은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엄마가 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일인지 언급하는 것으로 소소한 역할을 해보려 한다.
3. 할아버지와 사월이
지금 할머니가 누워있는 방은, 40여 년 전 할아버지가 앓다가 돌아가신 방이다. 마을에서 사람들이 와서 염습하고, 그 자리에서 장례를 치른 방이기도 하다. 할아버지는 어디가 아팠냐는 물음에 엄마는 대답을 잘하지 못했다.
“간도 안 좋았던 것 같고, 폐도 안 좋았던 것 같아.”
어떻게 병명을 모를 수가 있지? 그 시대는 그러기도 했단다. 많이 아파 병원에 갔다가 가망이 없다며 집에서 임종을 맞으셨다. 그러나 지금, 할머니의 통증은 사뭇 다르게 취급되는 듯 보였다. 큰 병원에 들락날락하며 여러 검사를 통해 할머니의 병명은 정해졌다. 폐암으로 명명되자 병원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었다. 입원해 있으면 할머니의 컨디션이 좋았다. 우리는 할머니가 어느 정도 회복할 때까지 병원에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항암도 수술도 하지 않으리라 결정하자 의사는 우리에게 선을 그었다. 치료하지 않을 거면 더 이상 입원은 어렵다고. 결국 병원에서 쫓겨나 집으로 왔다. 이젠 할머니가 너무 아파하면 다급하게 응급실에 가거나, 아니면 호스피스 병동이나 요양 병원에 모셔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제 병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할머니가 몹시 아프다고 하면 갈 응급실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검사로는 여전히 명명할 수 없는 통증도 있었고, 그거든 저거든 다량의 진통제로 다뤄질 뿐이었다. 애써 만나러 간 주치의는 ”수치는 정상입니다”나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습니다”와 같은 말을 할 뿐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이야기해 주진 않았다.
만약 우리 사회가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죽음의 과정을 지원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최소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통제를 필요로 하는 어떤 부분은 사라질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죽음을 숨기고 부인하는 사회는 분명히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부추긴다. (…) 사람들이 가능한 한 편안하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의학과 심리학의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 된다면, 죽음과 죽어 가는 것을 준비하는 일이 친구와 가족들이 보통 예상하는 삶의 중요하고 창조적인 단계로 여겨진다면 사람들을 계속 살아 있게 만들려는 우리의 문화적인 강박이 아마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216)
병원은 우리에게 병명을 알려주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병원으로의 여행을 두세 달여 만에 마치고, 다시 이 방으로 왔다. 우리는 가능하면 할머니가 할아버지처럼 이 방에서 돌아가시길 바란다. 할머니가 가능하면 고통스럽지 않고, 또 평화롭게 세상을 떠날 수 있기를 바라다. '1949년에는 미국인의 50%가 병원에서 죽었지만, 이제는 80%에 이른다.'(185)라는 책의 구절은, 우리에겐 너무 간절한 한마디다. 할머니를 방에서 돌아가시게 하려면, 그리고 다시 이 땅에 되돌려주려면 얼마나 지난한 노력이 필요한지 이젠 알고 있으니까. 왜 생명으로 태어나서 - 당연한 죽음이라는 것을 거쳐 땅으로 돌아가 순환의 구조에 참여하는 것이 더 어색하고, 애써야만 하는 일이 되었는가? 왜 더 생명다운 일은 덜 인간다운 일이고, 덜 생명다운 일은 더 인간적인 일이 되었는가?
몇 해 전 꽤나 우스운 일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유골이 묻혀있던 동네가 개발이 되면서 나무상자에 담긴 유골함이 우리의 손으로 넘어왔다. 외삼촌과 엄마는 어느 날 할아버지의 유골분을 상자에서 꺼내어 뒷산에 묻어버렸다. 금기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깨버리는 사람들이라니 (그게 우리 가족이라니) 웃음이 났다. 이것이 왜 금기냐면 유골을 땅에 묻거나 뿌리는 건 불법이기도 한고, 할아버지의 유골이 묻힌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함께 살았던 강아지 ‘사월이’도 묻혀있었다. 그리고 이곳 또한 머지않아 곧 개발되어서 포클레인으로 마구 파헤쳐질 것이 분명하다!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거기에다 돌을 하나 얹어놓고 제사 지내는 가족들을 보며 웃었다. 지금 당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하는 건가! 사랑하는 영화 ‘캡틴 판타스틱’에서 유골을 공항 화장실 변기에 내려버리는 장면도 떠올랐다. 죽음은 생각보다 별거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엄숙하지도, 진지하지도, 조상님의 분노를 두려워하며 극진히 모셔야 할 필요도 없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밥상 앞에서 죽음에 관해서 이야기하며 깔깔 웃었다. 그런 우리 가족이 제법 마음에 든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모두 죽는다. (이 문장은 여러 번 적어 보아도, 어색하면서 익숙하다) 그리고 죽기 전에는 죽을 만큼 아플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빠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이것들을 피해 갈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 생명이 가진 주기 속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 죽음과 장애를 피하고 싶은 열망은 생명이 아니고 싶은 열망과 닮았다. 역설적이게도 피하고자 하는 욕망은 더 큰 통제를, 통제는 더 큰 억압을 만들어 냈다. 생명이고 싶지만, 여전히 장애란 타자화하기엔 너무 가깝고, 그렇다고 받아들이기에는 어렵게만 느껴졌다. 하루가 멀다고 마주해야 했던 다리의 통증, 질병과 노화를 겪는 할머니, 장애인 저널을 만드는 아빠,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을 앓는 엄마, 선천 질환을 발견해 생사의 경계에 다녀온 언니, 그리고 도시에서 살기에는 너무나 강력한 몰이성향을 가진 강아지까지 함께하는 장애로운 가족 안에서 살면서도 그랬다. 스스로를 장애를 가졌다고 정체화하지 않는 그 누구도 모두 사고를 겪고, 병들고, 아플 수 있는 존재들이고, 언젠가 죽을 존재들임을 알고 있어도 그랬다.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는 힘을 길러볼 수 있을까? 다리를 다친 후 죽음과 한걸음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니 몸과 마음이 건강한 이들이 그리는 것들에 대해서 이제는 더 이상 눈길이 가지 않는다. 소외되고 타자화되고 부서진 존재들이 그리는 긴긴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생명이 죽음과 닿은 부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거부당한 몸은 내게 그 이야기들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해 준 책이다. 다르고 다양한 몸의 서사를 조금은 덜 낯설고 두렵게 해 준 책이다. 내가 사랑하는 다채롭고 서글픈, 그러나 그래서 더 소중하고 위대한 거부당한 몸들을 떠올려본다. 거부당한 몸은 이성애를 벗어난 존재들이 사랑하는 몸이다. 조각조각 난 축산 동물들의 몸이자 도시에 사는 목양견의 몸이다. 장애라 이름 붙여진 몸이고, 늙고 병든 이들의 몸이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에서 벗어난 우리 대다수의 몸이다.
나의 몸이고, 너의 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