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고 있어? 이렇게 연락하는 거 너무 구질구질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문득 떠올라 옛 대화들을 읽어보았어. 혹시 괜찮다면 오랜만에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어 졌는데 어때?”
헤어진 지 3년쯤 지난 옛 연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과연 답장이 올까? 걱정과 달리 답은 그리 늦지 않게 왔다.
“오랜만이야. 그래. 한 번 얼굴 보자.”
20대 초반부터 서른쯤까지. 수년을 연인관계로 지내어 내 몸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던 이다. 우리는 한동안 같이 살았다. 커다란 플라타너스가 있는 곳에서. 품이 넓은 그 나무에 올라서 놀곤 했다. 올라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도 부르고 사랑도 나누었다. 그 플라타너스를 떠올리면 애틋한 기분이 들었다. 보드라운 살결을 쓰다듬으며 편안함을 느꼈다. 그는 나에게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다. 언제든 다시 찾아갈 수 있는 플라타너스 같은 사람. 그를 참 좋아했다. 무모한 여행을 떠나는 나를 멀리 보내고도 다달이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면 용돈을 보내주었다. 타지에서 누군가 만나 사랑을 나누어도, 좋은 모험을 하고 있다며 응원해 주었다.
헤어짐은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운 답답함과 견디기 힘든 마음들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하루아침에 깡그리 없어질 리 만무했다. 그와 헤어지는 것은 그저 연인 한 명을 떠나오는 것과는 달랐다. 그 계절을 채워왔던 추억도 잃고, 오랫동안 같이 커온 친구도 잃고, 지칠 때 기댈 수 있었던 가족도 잃고, 함께 웃고 떠들었던 커뮤니티까지 잃었다. 그와 연인으로서의 관계만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건 가능하지 않았다. 이곳의 이별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친구로 지내고 싶다는 나의 말에, 그도 그리하면 좋겠다고 답변했지만, 단 한 번도 먼저 연락이 온 적이 없다. 우연히 마주쳤을 때는 친구는커녕 아는 사람도 못될 만큼 뚝딱거리기만 했다. 짜증이 났다.
“도대체 왜 헤어지고 나면 친구가 될 수 없는 거야?”
친구에게 푸념을 터놓으니 물어보니 내가 이상한 것이란다.
“너 미련이 있는 거 아냐? 난 그런 적이 없었어. 헤어지고 나서 다시 만나고 싶거나 한 적이 없었다고. 네가 미련이 있는 게 아니면 왜 굳이 그런 에너지를 써가면서 다시 만나고 그러는 거야?”
헤어지고 나서도 이 사람이 여전히 내 인생에 소중한 사람이었고, 다른 방식으로라도 관계 맺으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구 애인과 남은 관계는 남이 되거나, 섹스 파트너가 되거나, 재결합하거나. 그러나 그와 남이 되고 싶지도 않았고, 섹스하고 싶지도 않고, 연인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지금까지처럼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지켜보는 존재로서 곁에 있을 순 없는 걸까? 의무와 섹스를 빼고, 우정과 애정을 남겨둘 수는 없는 건가? 이게 정말 나의 욕심인가?
“내가 참 좋은 사람을 만났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 아마 이때 사랑을 늘 기억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 같아.”
“그동안 정말 미안하고 고마웠어. 지금 내 삶의 많은 부분들이 네가 만들어준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아”
애정이 가득하지만 끈적하지 않은 말들을 나누고 돌아오는 길, 또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눈물을 철철 흘릴 정도의 애틋함, 그러나 미련은 한 톨도 없는, 사랑하지만 후회는 없는, 이 마음을 어디에도 꺼내지 않고 혼자 간직하기로 했다. 아직 세상에 꺼내기에는 너무 이른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