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쓰러진 날의 기록
리트릿을 끝내고 집에 오는 길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 있냐고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된 통화는 예상치 못한 말들로 이어졌다.
"엄마가 쓰러져서 응급실에 왔다. 그런데 뇌에 출혈이 있었다는 것이 의심돼서 급하게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당황스러운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말을 들었는데, 이해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마침 옆에 있던 친구가 있던 덕분에 간신히 부여잡을 수 있었다.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일하러 다른 지역에 가있던 짝꿍까지 집으로 서둘러 돌아와 급한 대로 입원 짐을 챙겨 병원까지 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수술실에 들어간 이후였다. 입원짐은 아무 소용도 없었던 게, 당분간은 중환자실에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길면 무려 3주 동안이나.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에는 하루에 한 번, 20분밖에 면회가 안된다. 안된다고 하니 더더욱 엄마가 보고 싶었다. 수술대에 오르기 전에 보지 못한 것이 너무 슬프고 아쉬웠다. 수술이 끝나고 나면 깨어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정확한 증상은 뇌동맥류가 터진 거고, 병명은 지주막하 출혈이라고 한다. 뇌출혈은 사망률이 매우 높은 질환이고, 치료를 받아도 후유증이 심하다고 한다. 서너 시간을 기다려서 수술을 끝낸 의사를 만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들은 설명에서, 어쨌든 엄마의 수술을 얼른 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앞으로 그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며 어쩌면 움직이는 엄마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1이 그 자리에서 사망, 3/1은 치료 중 사망. 3/1은 살지만, 그중에 반은 또 후유증. 이런 글을 읽고 있노라니 하염없이 아득해지기만 했다. 엄마는 그렇게까지 잘못한 일이 없는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전조증상이나 몸이 안 좋지도 않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답이 있을 리 만무한 이야기들만 머릿속을 떠돌았다. 막막함에 울다가, 또 기다림에 지치기를 반복하다 마침내 엄마를 보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중환자실은 원칙적으로 하루 1회, 20분, 2명이 번갈아서 면회하게 되지만, 수술이 끝난 직후에는 특별히 몇 명 더 들여보내준다. 그때를 틈을 타 아빠와 나, 그리고 가족들 몇 명이 들어갔다. (왜 같이 살고 있는 내 짝꿍이 못 들어가고 큰엄마랑 작은 고모가 들어간 걸까.) 들어가니 엄마가 의식이 돌아왔다며 간호사가 엄마를 흔들어 깨웠다. 기적이었다. 분명히 의사는 아마 의식이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말이다.
"할머니는?"
엄마가 어리어리 깨어나 한말이다. 엄마는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수년간 모시다가 보내드린 바 있다. 자기 몸이 이렇게나 아파서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동안에도 자신이 돌봐야 하는 할머니부터 물어보다니. 그러고 나서 회사를, 그다음에는 나를 걱정한다. 평생 다른 사람 걱정만 하다가 이렇게 아파버린 엄마가 너무나 서글플 따름이었다.
남성 노인의 경우에는 배우자가 주 돌봄자지만, 여성 노인의 경우에는 딸이 돌보는 경우가 증가한다고 한다. 남자는 늙고 아프면 여성이, 여자가 아프고 늙어도 여성이 돌본다는 말이다. 엄마가 일하는 요양원에서도 요양사들은 다 여성이다. 여기 병원에서도 간호사들도 다 여성이고. 여성으로 태어난 자들은 이렇게 자신이 아닌 타인을 돌보는데 특화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생사가 오고 가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부터 챙길 말 큼.
엄마는 종종 자신은 지금도 진로 방황을 하고 있으며,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런 엄마가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찾아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쓰러져 버린다는 것이 너무나 야속했다. 엄마가 그렇게 돌봤던 가족 중에는 아빠도 있는데, 아빠는 건강도 살뜰히 챙기고, 하고 싶은 일도 열심히 하면서 살아서 스트레스도 별로 없는 듯하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라는 걸 알게 되긴 했지만..) 아빠가 자아실현을 열심히 하는 동안 엄마는 조금씩 아파갔던 것은 아닐까. 삶의 의미를 찾고 사회 속에서 기여하며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기보다는 조금씩 쪼글아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엄마의 삶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