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살려다오
많은 비가 내려, 본래 계획했던 곳에서 급선회를 해 상대적으로 비가 적게 온 곳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바로 대관령입니다.
대관령, 많은 묵객들이 지나다녔던 길이자 여러 전설들이 서려있는 유서 깊은 곳!
조선시대 동서를 잇는 매우 중요한 관동대로의 최종 고갯길이었습니다.
그 대관령 옛 고갯길은 현대의 도로가 깔리면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고개에서 이어진 옛길의 일부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비록 최종 목적지는 아니지만 지나는 길에 그 옛길이 너무 궁금해 한번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현재도 많은 등산객과 관광객이 오가는 길인 만큼 입구부터 정비가 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비가 잘 되어있다는 것은 금속탐지를 하는 데 있어 달가운 일은 아닙니다. 현대인의 손길이 미칠수록 옛 모습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죠.
이곳은 비가 적게 와서 그런지, 배수가 잘돼서 그런지는 몰라도 길이 질척거리지 않아 좋았습니다. 좌우에 많은 돌무더기들이 있지만 이건 비교적 근래에 길을 정비하면서 쌓인 것이라 엽전이 나오는 그 돌무더기는 아닙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탐지기를 대보니 신호가 잡히네요. 확인해 보니 100% 음료뚜껑, 캔, 껌종이 등 쓰레기였습니다. 등산객들이 길바닥에 대놓고 쓰레기를 버리기 뭐 해 돌무더기 속에 쓰레기를 살포시 숨겨 놓았나 봅니다.
분위기는 참 좋은데 신호가 잡히는 곳은 모두 쓰레기뿐이라, 탐지기를 끄고 옛길의 정취만을 온전히 느끼면서 걸어보기로 합니다.
강릉에는 신사임당의 생가로 잘 알려진 오죽헌이 있죠. 신사임당이 대관령을 넘으며 남긴 글을 소개한 현판이 보입니다. 신사임당의 아들인 율곡 이이는 조선 최고의 천재였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험 천재!
무려 9번의 시험에서 모두 장원을 차지해 '구도장원공'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현대로 치면 수능, 사법고시, 외무고시, 행정고시 등 모든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한 거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율곡 이이를 키워낸 현모양처 신사임당을 일부러 폄하할 의도는 없지만, 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최고액권 지폐 인물로 쓸만한 위인이 그렇게도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를 만든 왕이나 번영을 이끈 지도자, 위대한 과학자나 사상가도 아니고...
외국 친구들이 대한민국 최고액권에 나온 사람이 어떤 위인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참 난감합니다. 아무리 봐도 주모(?) 같아 보여서 비주얼도 영 별로지만, 그래도 고액권이라 늘 친해지고 싶기는 합니다.
아무튼 신사임당이 강릉 오죽헌을 떠나 대관령의 이런 고개를 수없이 넘고 넘어 남편을 따라 한양으로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저 위에 보이는 작은 돌무더기 역시 유서 깊은 것이 아니어서 옛날 동전 대신 쓰레기가 잔뜩 들어있습니다.
옛길 중간에 넓은 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나무들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불이 났던 흔적입니다.
깨진 사기그릇이 많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주막터나 화전민터인듯 보입니다.
이런 도자기 파편들도 나름의 가치는 있습니다. 틀림없는 골동품이니 유약의 상태나 굽의 모양, 산화된 상태 등을 익혀두면 도자기를 감정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 덕분에 풍물시장에 나와있는 도자기를 보면 대충 진품 가품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가는 곳이라 엽전을 기대하고 오진 않았습니다만, 운 좋게도 당이전 하나가 길전으로 얻어걸렸습니다. 대관령 방문 기념품으로 딱~좋네요.
걷기 좋고 경관도 좋은 곳이지만 너무 많은 현대인의 발길이 미친 탓에 진정한 옛 모습은 많이 사라진 길인 것 같아 조금 아쉬웠습니다. 어쨌든 유명한 옛길을 가볍게 걸으며 워밍업도 했으니 이제 다른 고갯길로 본격적으로 탐사를 떠나봅니다.
산길을 한참 올랐습니다. 위성지도를 보니 이제 고갯길 끝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좁고 불편해 보이지만 이것이 손을 타지 않은 자연스러운 옛길의 모습입니다.
옛길 주위에 형광색에 가까운 노란색이 인상적인 풀떼기가 시선을 잡아 끕니다. 약초나 꽃과 같은 식물에 문외한이라 무슨 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름 예쁩니다.
꽃 사진을 찍고 있는데 처음 보는 번호로 갑자기 전화가 옵니다.
"여보세요?"
"가면 안돼!"
"네???"
"가면... 죽어!!!"
"누구세요?"
그리고는 전화가 끊어집니다.
'뭐지 이게?'
잠시 후 전화가 또 울립니다.
"여보세요?"
"bgm) 으아악~~~ 그만... 아아악... 꺄아악~~~ 안돼"
현대인이 치유할 수 없는 병에 걸렸다고 야스퍼스가 말한 것처럼 요즘 정신 나간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전화 잘 못 거셨습니다."
매몰차게 전화를 끊고 걷는데...
세상에... 바닥에 엽전이 한가득입니다. 신이 나서 주머니에 막 쓸어 담습니다.
돈이 계속 줄줄이 이어집니다. 그 줄을 따라가니 큰 상자가 있네요. 상자 안을 들여다보니 깜깜합니다. 불안한 마음이 들어 주머니를 만져보니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습니다.
"아~~~ 내 돈~~~"
정신을 차려보니 차 안입니다.
'나는 누구고 여기는 어디? 나는 대체 언제 잠이 들었으며 어디서부터가 꿈인가?'
대관령에 들렀다가 점심 먹고 차에서 깜빡 잠이 들어 꿈을 꾸었네요.
그렇다면 아까 그 엽전은???
제발 그것 만큼은 꿈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주머니를 만졌더니....
'텅텅~~~'
"하아... ㅠ"
'내가 엽전의 꿈을 꾸었던 것일까? 엽전의 나의 꿈을 꾸었던 것일까?'
정신줄 챙기고 산을 오릅니다. 고개 올라가는 길이 어지럽고 험한 것으로 보아 인적이 끊긴 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허허, 누가 뭐 이런 데다 애기 인형을 흘렸어~"
하고 발로 툭 건드리고는 별생각 없이 걷다가 문득 등골을 타고 내려오는 전율이 엄습합니다.
여기는 해발 1,000m가 넘는... 첩첩산중...
누가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자꾸만 뒤를 돌아봅니다. 걸음이 점점 빨라집니다.
"헉헉~ 헉헉~"
축지법을 시전해 금세 고갯길에 당도했습니다.
첫 엽전을 보자 그만 반가운 마음이 들어 아까 봤던 무서운 인형은 잠시 머릿속에서 지워집니다. 그나저나 내려갈 때 또 봐야 할 텐데 큰일이네요.
또 나옵니다.
"네 다음 엽전~"
평소와 같지 않게 탐지음이 비명처럼 울부짖는 소리로 들립니다. 아마도 기분 탓일 테죠. 반가운 소리가 섬뜩하게 들립니다. 무서엉~~~!
돌틈 한구석에 엽전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숨어있었네요. 몇백 년 전 조상님이 넣어둔 모양 그대로일 겁니다. 문득 어떤 기원을 하고 이처럼 엽전을 심어놓았는지 궁금해집니다.
여기도 옹기종기 모여 있네요. 엽전이 이렇게 모여있다는 건, 아마도 옛날 사람들이 오가면서 뭔가 무서운 일을 겪어서 평소보다 더 많은 돈을 서낭신께 상납했던 것이 아닐지?
조금 전 애기 인형을 보고 등골이 오싹했던 것처럼...
오늘은 제가 무서워서 오히려 돈을 더 묻어두고 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흔한 일제시대 동전도 없이 엽전만 나오는 것으로 보아 왕래가 끊긴 지 아주 오래된 옛길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늦게 출발한 데다 대관령 옛길 유람도 한 덕분에 시간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많은 엽전을 볼 수 있었던 건 공포의 고갯길 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오래전, 험준한 대관령을 넘으며 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눈보라나 추위를 만나 얼어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릉의 뜻있는 분이 사재를 털어 강릉과 횡계 사이 반정에 주막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살리게 되었고 이후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사람들이 공덕비를 세웠다고 하네요.
백두대간 저 험한 길을 호랑이, 산적, 추위, 귀신 등 무섭고 두려운 일을 감수하면서 어쩔 수 없이 오가야만 했던 조상님들의 애환이 떠오릅니다.
그에 비해 편하게 차를 타고 정비된 길을 다니면서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엽전이나 줍고 다니는 것이 너무나 큰 호사를 누리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