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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굴화석의 천국

신생대 마이오세 천곡사층

by 팔레오

경주에는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건천리층 외에도 신생대 마이오세 때 쌓인 천곡사층이 있습니다. 천곡사층 혹은 천북역암이라고 불리는 지층에서 다양한 연체동물 화석이 산출되는데요. 특히 대형 굴화석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한 굴화석을 만나러 동해바다에 접해 있는 경주 외곽 문무대왕면을 찾았습니다. 굴화석은 경주 천곡사층 말고도 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울산의 신현층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그 두 지역을 제외하면 대형 굴화석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주차 후 좁은 농로와 접해있는 작은 내를 따라 걷습니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한적한 농촌 풍경이네요. 길을 걸으면서도 눈은 계속 오른쪽 물가를 주시합니다. 바로 거기에서 화석이 굴러다닐 테니까요.



'경주 돌은 다 옥돌이냐?'는 속담처럼 모두가 화석은 아니므로 냇가에 널브러진 돌을 자세히 살펴 옥석을 가려야 합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시작부터 큼직한 옥돌 아니 굴화석 하나가 생체 레이더에 감지되었습니다. 과연 어느 게 굴화석인지 한번 맞춰보시기를~



이제 보이실 겁니다. 굴껍데기는 누구에게나 익숙하기 때문에 다른 돌과 쉽게 구별이 됩니다. 화석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무심코 보면 그냥 누군가 버린 굴껍데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요.



크라소스트레아 그라비테스타 어일엔시스(Crassostrea gravitesta eoilensis)

그런데 꺼내어 뒤집어 보니 모양이 특이합니다. 아주 아주 길쭉하죠. 물론 이런 형태의 현생 굴이 있긴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크고 우람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모식산지인 어일층의 이름을 딴 대형 굴화석 '크라소스트레아 그라비테스타 어일엔시스(Crassostrea gravitesta eoilensis)'입니다. 김수한모 거북이와 두루미도 아니고 이름 한번 깁니다. 어일이라는 명칭은 현 문무대왕면의 과거 이름이 어일면인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대충 손으로 길이를 어림해 보니 40cm 정도에 뇌피셜로 측정한 무게 또한 5kg은 족히 되었습니다. 왼쪽이 꽤 많이 깨져나간 것으로 미루어 원래는 5cm 이상 길고 더 무거웠을 듯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600만 년 전에 살았던 굴화석이 이처럼 크게 성장한 이유는 여러 요인들과 더불어 당시의 높은 수온 때문이었다는 게 학계의 정설입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무너져 내린 지층이 나타났습니다. 지난 2016년 경주 지진 때 무너진 것으로 보이네요.



무너져 내린 흙더미 사이에 굴화석이 살짝 묻혀있습니다. 아마도 이 흙더미 아래엔 많은 화석이 깔려있을 듯합니다.



흙더미 위쪽 냇가에도 굴화석이 보입니다. 무너져 내린 지층의 상류 쪽에서도 굴화석이 발견된다는 것은 그 위쪽에도 화석 지층이 있다는 뜻이겠죠.



역시 추측이 맞았습니다. 조금 더 상류로 올라가니 많은 굴화석이 하천을 따라 흩어져 있네요. 떼로 굴러다닌다는 표현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또 다른 지층이 나타났습니다. 대부분 사암과 황토지만 층리구조가 관찰됩니다. 굴화석이 나오는 층은 대략 1~2m 두께로 저 가운데 어딘가에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70~80도쯤 되는 급경사에다 낙석의 위험이 있어 보여, 제대로 살펴보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패스~



다시 상류 쪽으로 이동합니다. 하천을 따라 걷다 보면 끊이지 않고 화석이 계속 보이는데, 대부분은 하천에서 오래 굴러먹어서 그런지 온전한 것보다는 여기저기 닳고 닳아 심하게 깨진 것이 더 많은 편입니다.



그래도 비교적 얌전하게 굴러먹어서, 곱게 닳고 닳아 버린 녀석도 있습니다.



초대형 굴화석이 또 나타났습니다. 아까 길쭉한 그거, 김수한모 거북이와 두루미~


네 그거 맞습니다.

크라소스트레아 그라비테스타 어일엔시스!

조금 전에 보았던 것보다 더 길쭉한 형태에다 길이도 조금 더 깁니다. 큼직한 바게트빵이 연상되네요.



크라소스트레아 그라비테스타 요코야마(Crassostrea gravitesta Yokoyama)

굴화석에 대해 tmi를 해보자면, 길쭉한 형태의 크라소스트레아 그라비테스타 어일엔시스는 상대적으로 귀합니다. 이보다 훨씬 흔하게 산출되는 '크라소스트레아 그라비테스타 요코야마(Crassostrea gravitesta Yokoyama)'가 있는데 이는 손바닥처럼 넓은 모양을 하고 있어 두 종이 외관상 큰 차이점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따 거 이름이 너무 길어 앞으로는 '길쭉이', '넙쭉이'로 쓰겠습니다.


넙쭉이의 형태는 우리가 먹는 현생 바윗굴인 '크라소스트레아 니포니카(Crassostrea nipponica)'와 매우 흡사합니다. 아...이것도 이름이 기네요. 하지만 현생종과 외형만 대략 비슷할 뿐이지 패각의 두께나 크기는 현생종과 비교하지 못할 만큼 무지막지합니다.



드디어 굴화석이 가득한 찐 노두가 나타났습니다. 보이시나요?



지층 중간쯤에 약 1~2m 두께로 층을 따라 하얀 돌이 박혀 있는 게 모두 굴화석입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굴이 이처럼 지층 속에 파묻혀 떼죽음을 당하고는 화석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죽고 난 후 화석이 된 녀석들도 있겠지만요.


이것을 연구해 1,600만 년 전에 누군가 굴양식을 했던 증거라고 그럴듯하게 논문을 써서 한번 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혹시 그러면 이그노벨상이라도 줄지?



그런데 이렇게 밖에 노출된 화석은 대부분 풍화되어 손으로 만지면 부스러질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따라서 굳이 땀 빼서 파내봐야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도 간혹 상태가 좋아 보이는 것이 박혀있기는 하네요.



또한 이 부근에서는 굴화석과 별개로 복족류나 이매패류가 들어있는 사암질 전석도 심심찮게 발견됩니다. 얼핏 보기에는 만만한 사암 덩어리로 생각할 수 있으나 실상은 콘크리트나 다름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단단합니다.



예쁜 복족류 '비카리아 속(Vicarya.sp)'들이 가득해도 사실상 그림의 떡입니다. 이걸 꺼내보겠다고 망치를 휘두르면, 단단한 모암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탄산칼슘과 방해석으로 이루어진 화석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깨져나가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입니까?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같은 대사에 사르르 녹아버리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까?


아무리 단단한 모암이라도 요리조리 잘 돌려보면 자연적으로 생긴 크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망치로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포기를 모르는 인간의 노력에 신이 화답이라도 하듯, 방해석이 수정처럼 반짝거리는 제법 큰 비카리아 속 복족류 하나를 내어줍니다.



복족류 화석이 가득한 또 다른 전석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신은 화답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화석을 꺼낼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이 있긴 합니다.


바로 급속 냉동과 가열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석 내에 들어있는 공기가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면서 미세한 균열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건 장비가 받쳐주는 전문 기관 연구실에서 가치가 높은 화석을 연구할 때나 할만한 일이죠. 혹시나 집에 있는 전자레인지와 냉장고를 활용해 따라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만약 그랬다가는 등짝이 남아나지 않을 듯합니다. 언제나 답을 찾는다 해도 이번 만큼은 노답입니다.



현생 꼬막과 유사한 이매패 화석이 박혀있는 전석도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꼬막 참 좋아하는데요. 삶은 꼬막에 양념을 해서 하나씩 빼먹으면 밥도둑이죠. 그런데 전에 간장게장이 밥도둑~밥도둑~ 이러길래 얼마나 밥을 잘 훔쳐가는지 지켜보았는데 웬걸 밥이 하나도 줄지 않더라구요. 나중에 알고 보니 계속 지켜봐서 훔쳐가지 못한 거라고 하네요.


식물인간도 들으면 벌떡 일어나서 따귀를 갈긴다는 아재개그 죄송합니다.



꼬막류 화석이 또 나왔습니다. 내부 몰드의 모양만 예쁘게 남았네요.


'그래 오늘 저녁은 꼬막이다.'

사람 참 단순합니다.



우와~ 운 좋게 자연 노출된 비카리아를 만났습니다. 화석의 상태가 깨끗한 것으로 미루어 최근에 노출된 보입니다. 마침 주위에 크랙이 있어서 살살 두드리며 달래니 이내 떨어져 물속으로 퐁당했습니다.



잘 수습해서 중간에 끊어진 부분을 붙여주었더니 깔끔한 모습으로 변모했습니다.



이곳 경주 굴화석 산지는 언제든 큰 비가 내려 지층이 무너지면 이처럼 냇가에 새로운 굴화석이 계속 공급돼 나뒹굴게 될 듯합니다. 큰 비가 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이죠. 신기하게도 굴화석이 많아 그런지 민물 냇가인데도 바다내음이 느껴졌습니다.


굴화석을 보고 바다내음을 맡으니 생굴이 급땡기네요. 까딱 잘못하면 노로바이러스에 걸려 '러시안굴렛'이라고 악명이 자자하지만 치명적인 생굴의 유혹은 매번 요행을 바라며 리볼버의 방아쇠를 당기게 합니다.


"그래 너로 정했다, 오늘 저녁은 굴이다!(생굴철은 겨울임을 잠시 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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