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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은 나뭇잎 화석의 천국

신생대 마이오세 금광동층

by 팔레오

10여 년 전, 우연히 우리나라에서 화석이 산출된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정보력을 총동원해 생애 최초로 찾아가 본 화석산지가 포항의 금광리였습니다. 당시에 금광동셰일층원(현 금광동층)으로 불리던 특별한 지층을 보기 위해 동이 틀 무렵부터 부지런히 돌아다녔는데, 화석이나 암석에 대한 기초지식이 많이 부족했던 때라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겨우 지층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찾아낸 지층의 모습은 마치 수백 권의 오래된 책을 쌓아둔 것 같은 신기한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층 아래에는 종잇장같이 얇은 파편들이 무수히 널브러져 있었죠. 그 많은 파편더미 속에서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는 나뭇잎 화석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과 벅찬 감정은 지금까지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이후 수년 동안 금광리 이곳저곳을 여러 차례 답사하며 금광동층 화석산지가 여러모로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셰일층에서 매우 다양한 식물화석이 다량으로 산출되는 데다 신생대 지층으로는 보기 드문 육성층이면서, 두호층보다 1,000만 년 가량 앞선 시기에 형성된 지층이라 그간의 식물 변화상도 살펴볼 수가 있었으니까요. 더구나 국내 다른 지역에서 구경하기 힘든 규화목까지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좀 아쉬웠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 화석산지의 운명이 그렇듯 훌륭한 금광리 화석산지도 개발의 광풍을 피하지 못하고, 여러 군데 화석산지가 훼손되거나 아예 통째로 사라져 버리기도 했으니까 말이죠.



그 금광동층 화석산지가 천연기념물 577호로 지정돼 보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이전에 금광동층 화석산지를 여러 차례 탐사하며 보았던 이모저모들이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게 될 듯합니다. 지금부터 보게 될 사진들은 오래전에 찍은 것이어서 현재 모습과는 다소 상이할 수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도로 옆 작은 개울을 따라 노출된 셰일층이 보입니다. 셰일층은 주로 고운 진흙이 매우 얇게 겹겹이 쌓인 지층을 말합니다.



얼마나 얇으냐면 대개 1mm 도 채 안됩니다. 두꺼운 종이 정도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종잇장같은 셰일판 사이사이에 다양한 종류의 나뭇잎 화석이 랜덤으로 들어 있습니다.



누군가 가장 멋진 지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서슴지 않고 금광동 셰일층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다음으로 멋진 지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또 금광동 셰일층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또 그다음 세 번째로 멋진 지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금·광·동 셰·일·층'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 멋진 셰일층 아래 떨어져 있는 얇은 판을 찬찬히 들춰보면 누구라도 쉽게 나뭇잎 화석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산출되는 나뭇잎 화석의 종류는 실로 다양합니다. 2010년 논문에서는 '27과 43속 64분류군(백인성 et al.)'의 나뭇잎 화석을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은 이와 같은 파편상의 형태로 나오지만, 조금 큰 전석을 들춰보면 완전한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운도 좀 따라야 합니다.



현생 벚나무잎과 매우 흡사한 나뭇잎 화석입니다. 2,300만 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보존상태가 좋습니다. 직접 보면 정말로 탄성이 나올 정도죠. 지금 보면서도 소름이 돋습니다.



지층 인근에 주택 건설을 위해 꽤 넓은 자리를 중장비로 깎아냈네요. 얼마 후 이곳에는 깔끔한 현대식 가옥이 들어섰습니다.



깎인 지층 인근에 땅에서 파낸 큼직한 셰일판이 건축 폐자재처럼 수북이 쌓여있습니다. 화석탐사를 하다가 이런 것을 만나면 바로 럭키비키~죠.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화석들이 꽤 많았습니다. 골재로 활용해 매립하거나 공사 폐기물로 취급해 아무렇게나 버려지기에는 참 아까운 화석들입니다.



역시나 멋진 단풍잎 화석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단풍나무는 현대에 인위적으로 많이 심어서 흔해 보이나, 의외로 자연에서 자생하는 개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화석으로 만나기 쉽지 않은 녀석이죠.



역시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화석입니다. 조금 탄화되어 색상은 별로지만 크기 하나만큼은 끝판왕급입니다.



셰일 한 장의 두께가 체감이 되시나요? 화석을 살짝 덮고 있는 윗판 틈새에 바늘을 넣어 살짝살짝 뜯어내면 전체적인 모습이 드러날 것입니다.



탄화 과정을 심하게 겪으면 이와 같이 화석이 완전히 검은색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주로 밝은 색의 셰일판보다, 회색빛 짙은 셰일판에서 이와 같은 화석이 잘 나옵니다. 미적으로는 밝은 색 셰일판이 더 낫긴 합니다.



메타세콰이아 화석입니다. 학술적인 학명은 '메타세콰이아 옥시덴탈리스(Metasequoia occidentalis)'라고 합니다. 이 메타세콰이아는 중생대 백악기에 등장해 신생대 3기까지 살다가 멸종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반전이 있습니다. 메타세콰이아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신생대 빙하기를 겪으면서 완전히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1940년대에 중국 쓰촨성 일부지역에서 살아있는 메타세콰이아가 발견되었습니다.


이후 그 씨앗을 가져다 전 세계에 번식시켜 지금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죠. 은행나무나 실러캔스 같은 고생대 물고기와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는 포장도로 건설을 위해 지층을 깎아 길을 낸 곳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공사가 중단되었고 이와 같은 상태로 수년 간 방치되었다가 비교적 근래에 이르러 공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여기는 노출된 암석이 풍화되어 흙처럼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로 보아 이곳은 꽤 오래전에 농지 개간 같은 사유로 개발이 이루어졌던 듯합니다.



또 여기는 농기계 통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농로 확장 공사를 했네요. 도로 옆 절개된 지층이 선명합니다.



축사인지 창고인지 모를 대형 건물을 짓느라 본래 있던 산을 크게 깎아냈습니다. 여담이지만 금광리에는 꽤 성격이 와일드한 땅주인이 있는데요. 근처에만 와도 육두문자 사자후를 시전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덕분에 꽤 많은 화석 동호인들이 험한 꼴을 겪었다고 합니다. 일단 욕부터 하고 보는 주인장 인성 무엇?



건물 뒤쪽 한편에 굴삭기로 절토한 흔적이 생생합니다. 아마 이 자리에도 건물을 지으려는 듯 보입니다.



장소가 어디든 금광동층에서는 화석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돌을 들춰보면서 마치 보물 찾기라도 하는 기분입니다.



꼬리와 몸통만 남은 어류 화석이 나타났습니다. 금광동층에서의 어류화석은 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류화석에 대한 연구논문이나 정식 보고가 없기 때문이죠.


두호층은 바다에서 형성된 해성층인 반면, 금광동층은 민물 호수에서 퇴적물이 서서히 쌓여 형성된 육성층입니다. 신기한 점은 바다 어류 화석을 비롯해 다양한 바다 동물 화석이 많이 발견되는 두호층에 반해, 금광동층에서는 민물 어류를 비롯한 동물의 화석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당시 호수가 생물이 살기 힘든 혐기성의 유독 환경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논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학계의 정설이었지만, 저와 아들이 함께 다년간 이곳을 꾸준히 탐사한 결과 여러 물고기 화석과 다수의 골격 파편들을 발견했고, 이를 정리하고 연구해 전국과학전람회에 '우리나라 최초로 신생대 담수어 화석을 보고'하는 작품을 출품해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아~ 오늘 따라 목에 힘 좀 들어갑니다.



또 이 금광동층은 과거 화산 활동이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즉 신생대 시기 포항에 활화산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때문에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응회암층에 규화목이나 탄화목과 같은 나무 화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무가 쓰러지고 화산재가 덮이면, 나무의 원래 성분인 셀룰로오스와 리그닌이 물에 녹아 있는 규산 성분과 서서히 치환되면서 나무의 미세 구조가 석영 결정으로 탈바꿈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규화목입니다. 규화목이라고 하면 외국에서만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규화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 금광동층에서 말이죠.



농수로 한가운데 족히 수십 kg이 넘어 보이는 큰 규화목이 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화석이든 뭐든 농사를 짓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저 물길을 막는 돌덩어리일 뿐이라 언젠가는 어디론가로 버려지게 될 것입니다.



세세한 나무의 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디테일이 좋은지 직접 만져보지 않으면 돌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런 규화목을 절단 연마 후 단면을 관찰해 보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단면을 50배율 현미경으로 관찰해 보았습니다. 나이테 구조가 그대로 보이죠.



이를 500배율로 확대하면 세포벽까지도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구조를 연구하면 어떤 나무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외형만 나무 형태로 남은 게 아니라 내부 구조까지도 이렇게 완벽하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 너무나 경이롭습니다.



또한 화산 활동 덕분에 만들어진 흑요석 또는 유리질 화산암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뜨거운 화산열에 의해 이산화규소와 같은 것이 녹으면 이처럼 천연 유리라고 할 수 있는 유리질 화산암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죠.



깨진 부분이 조개 모양, 즉 패각상이 되는 것은 흑요석과 유리질 화산암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다만 이곳에서 발견되는 것은 검은색이 아닌 초록색이 더 두드러진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전 원시인들은 이것을 깨서 화살촉이나 도끼 등 다양한 도구를 만들기도 했죠.



도로 공사가 중단된 곳에 생뚱맞게도 속도 제한 표지판부터 먼저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은 얇은 판상의 셰일층보다 더 오래전에 형성된 금광동층 하부 지층이 있는 곳입니다.



이 하부 지층의 암석 특징은 층리가 얇지 않아 얼핏 보면 두호층의 유백색 이암과 흡사해 보인다는 점인데요. 두호층의 이암이나 금광동층 셰일과 달리 물이 닿으면 바로 균열이 생기면서 금세 부스러지는 게 특징입니다. 자세히 관찰하고 만져보면 두호층 이암과 색상도 조금 다르고 질감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해안가의 두호층에서는 보기 힘든 너도밤나무 나뭇잎 화석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두호층이 생성되기 전보다 1,000만 년 앞선 한반도는 너도밤나무가 서식하기 좋았던 선선한 기후였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오늘 날 국내에서 너도밤나무는 울릉도 일부지역에서만 자생하고 있습니다.



느릅나무과의 나뭇잎 화석 아래 메타세콰이아 나뭇잎 화석이 숨어있습니다. 아래 숨어있는 메타세콰이아의 완전한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그러면 위에 있는 화석이 손상될 것이 뻔하죠. 궁금하지만 메타세콰이아의 예쁜 얼굴은 영원히 못 보는 걸로...



오랫동안 공사가 중단되어 있다 보니 노출된 암석이 풍화되어 잘게 부서졌고, 주변에는 나무와 풀도 무성해졌습니다. 이 상태에서는 온전한 화석을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이후에 다시 찾았더니 여름철 소나기로 자잘한 돌이 씻겨 내려간 곳에 신선한 지층이 일부 드러나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화석 파편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연 노출된 큼직한 참나무과 나뭇잎 화석입니다.



화석도감을 봐도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웠던 나뭇잎 화석입니다. 현생 나뭇잎과 비교하면 어떤 것과 가장 비슷해 보이시나요? 오늘의 퀴즈입니다.



지층 위에 그대로 자연 노출되어 있는 2,300만 년 전의 화석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입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멋진 화석들을 엄청나게 많이 품고 있었던 이 하부지층 구간은 결국 중장비에 의해 바닥까지 시원하게 싹 밀리고 현재는 포장도로가 되어버렸습니다.


처음 찾은 화석산지의 좋은 추억으로 남은 '금광동층 신생대 마이오세 화석 산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니, 이제는 더 이상의 무분별한 개발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것 같아 다행입니다. 앞으로 먼 후대에까지도 잘 보존되어 전해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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