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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탐사, 쥐라기 공원을 가다.

중생대 쥐라기 묘곡층

by 팔레오

'쥐라기(Jurassic period)'는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 사이에 있는 쥐라산맥에서 유래된 지질 시대입니다. 잘 알다시피 쥐라기는 대표적인 공룡 시대였죠. 영화 쥐라기 공원(Jurassic park)에서도 그 이름이 그대로 사용되었기에 매우 친숙한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 이름은 쥐라기인데 '백악기(Cretaceous period)' 공룡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공룡 이름은 요즘 애들이 더 잘 알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쥐라기 공룡은 브라키오사우루스, 스테고사우루스, 알로사우르스 등입니다. 백악기 공룡으로는 너무도 유명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 트리케라톱스, 벨로키랍토르가 있죠.



쥐라 산맥의 지층

역사적으로 쥐라기와 백악기의 공룡들이 공존하지는 않았습니다. 지질시대가 다른 공룡이 공존하는 상황을 비유하자면, 구석기인들이 스포츠카를 타고 스마트폰을 쓰는 것보다도 더 비현실적입니다.


그 유명한 쥐라기 지층이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트라이아스기 후기와 쥐라기 전기에 해당하는 김포-연천탄전의 김포층군, 영월-단양탄전의 반송층군, 충남탄전의 남포층 등이 그것입니다. 그보다는 다소 늦은 쥐라기 중기에 해당하는 경북 봉화의 묘곡층도 있습니다. 그중 묘곡층을 찾아 쥐라기 시절로 시간여행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36번 국도를 달리다 남쪽으로 빠져나와 꼬불꼬불한 길을 15분 정도 달리면 묘골이라고 불리는 마을이 나옵니다. 묘가 많은 골짜기라서 묘골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를 한자로 쓰면 묘곡(墓谷)이 됩니다. 묘곡층은 여기서 유래된 이름이죠. 묘가 많은 골짜기라니 이름부터가 벌써 으스스합니다.



가을걷이를 앞두고 황금빛으로 물든 벼가 탐스럽습니다. 자세히 보면 메뚜기가 많이 보입니다. 예전엔 이 벼메뚜기들을 잡아다 많이들 구워 먹었죠. 나름 고소함은 있는데 지금 먹으라면 못 먹을 것 같습니다.



화석산지로 가기 위해 얕은 내를 건너는데 반갑지 않은 손님을 만났습니다. 지난번 도마뱀을 봐서 둔감해진 탓일까요? 체감상 1m는 되어 보이는 꽃뱀(유혈목이)과 사이좋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를 건넙니다. 유혈목이는 독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치명적인 맹독을 가지고 있습니다.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일본에서 사망자가 나온 사례가 있습니다. 다만 독니가 앞쪽이 아닌 뒤쪽에 있어 손가락같이 가느다란 부위를 제대로 물린 경우가 아니라면 독이 주입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독이 없는 뱀으로 알고 잡아서 빙빙 돌리거나 쓰담쓰담하며 가지고 노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죠. 어쨌든 독이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화석 산지에 가까워졌습니다. 붉게 물들어 바위를 타고 올라간 담쟁이덩굴이 참 멋집니다. 대학교에 오래된 건물에 담쟁이가 가득 올라앉은 것을 보면 그렇게 운치가 있을 수 없습니다. 벌레가 바글바글하다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요.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쥐라기 지층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왠지 지층 속에 쥐라기 공룡화석이 들어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가운데는 누군가 지층을 파낸 흔적이 보입니다.



지질 조사를 위해 코어 샘플을 추출한 자국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이를 보니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층보다는 일단 하천을 먼저 탐색해 보기로 합니다. 보통 지층에서 떨어져 나온 돌이 하천에 굴러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천에는 이와 같이 장석과 석영이 포함된 밝은 색의 일반적인 화성암이 아닌 검은색의 퇴적암이 눈에 보입니다. 명색이 쥐라기 화석탐사지만, 여기서 나오는 화석이 뭔지는 이미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공룡에 비해 많이 초라하기는 하지만 현실인 걸 어쩔 수 없죠. 사실 그게 오늘 목적이기도 합니다. 묘곡층의 대표적인 이매패 화석 3종과 복족류 화석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미국판 쥐라기 공원에는 다양한 공룡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판 쥐라기 공원에는 조개와 골뱅이만 있을 뿐이죠. 아쉽습니다.



한쪽 패각이 길쭉한 형태의 이매패 '쿠네옵시스 기홍아이(Cuneopsis kihongi)'입니다. 묘곡층 이매패 삼대장 중 하나죠. 패각을 덮고 있는 모암을 살살 걷어주면 완전한 모양을 볼 수 있겠네요.



또 다른 쿠네옵시스 기홍아이입니다. 한쪽 패각의 끝이 길쭉하게 생겼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현생 조개에서는 이와 같은 비율을 가진 것을 찾기 어렵습니다.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두 번째 대장인 유삼각 조개 '트리고니오이데스 청아이(Trigonioides cheongi)'를 발견했습니다. 깊은 골을 가지고 있어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대장을 만나봐야죠. 재첩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작고 앙증맞은 '낙동기아 리아이(Nagdongia leei)'입니다. 여기서 낙동은 우리가 아는 낙동강의 낙동입니다. 모식산지의 이름을 딴 화석이죠.



낙동기아 리아이가 또 나왔네요. 이것으로 한국의 쥐라기 공원 삼대장을 모두 만나보았습니다.

mission success!



이매패 외에도 복족류 화석도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오노고엔시스 고바야시에 대비되는 비비파루스 속(Viviparus sp. cf Onogoensis Kobayashi)' 복족류입니다. 우측 상단엔 비교를 위해 현생 다슬기를 올려보았습니다. 1억 5천만 년이 되도록 거의 진화하지 못한 다슬기네요.



이 묘골 냇가에 굴러다니는 검은 이암을 잘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이매패 화석과 복족류 화석을 볼 수 있습니다. 화석은 비록 초라(?)하지만 그래도 약 1억 5,000만 년 전에 살았던 동물들을 볼 수 있는 한국판 쥐라기 공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첨언하자면, 묘곡층은 관련학을 전공한 학부생조차도 잘 모르는, 유명하면서도 유명하지 않은 은밀한(?) 지층입니다. 그래서 더욱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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