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팔레트 Oct 12. 2022

언니의 말, 그대로 기록하기.

└뒤늦게 달아보는 답변

**동생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아이의 말이라, 아이들의 이름을 그대로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21.12.29

엄마, 수아는 왜 사고가 난 거야? 찻길에서 사고 났어? 구급차가 왔어? 구급차가 와서 다음에는 어떻게 됐어? 왜 천국으로 보냈어? 안 보내면 안 될까? 죽었어? 죽었으면 죽었다고 말해.


└할머니, 수아, 엄마, 아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더더욱 네 잘못도 아니야.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사고로 일어난 일이야. 엄마도 보내기 싫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천국으로 보냈다고만 이야기해줘서 미안해. 죽음이라는 단어가 엄마도 힘들고 어렵게 느껴졌어. 할머니와 수아는 죽어서 이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지만, 우리가 마음으로 기억하자.       


22.01.05

나도 핸드폰이 생겼네. 이제 보고 싶을 때마다 전화할 거야. 1번이 엄마, 2번이 아빠, 3번이 할아버지... 고모랑 고모부도 저장해. 근데 엄마, 우리 아직 핸드폰에 수아 번호는 저장 안 했어. 수아는 몇 번에 해? 수아한테 전화하고 싶다.


└핸드폰이 생기고, 보고 싶은 사람에게 전화할 수 있다고 하니까 동생 생각이 났구나. 번호를 만들어서 보고 싶을 때마다 전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들 보고 싶을 때마다 언제든지 전화하자.     


22.01.09

엄마 동생 다시 데려오면 안 될까? 수아가 늘 내 곁에 있었는데, 없으니 보고 싶어. 아기가 필요해. 수아 말고 다른 동생은 안 돼.


└정말 보고 싶다. 우리 이렇게 보고 싶을 때마다 말하자. 생각날 때마다 이야기하자.


22.01.10

‘이놈-’ 하고 장난치면 좋아했어. 이제 세 살이라 혼내는 건지 알 거야. 아이스크림을 좋아했지. 꽃도 좋아해서 꽃 만지면 할머니가 ‘이놈-’ 했었어. 그러면 엄청나게 웃었지.


└그러고 보니 수아는 이제 세 살이구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저도 동생 있어요. 세 살이에요. 지금은 천국에 있어요.”라고 말하는 네가 부러울 때가 있어. 그 사실을 전하면서 너의 마음은 어떨까? 많이 보고 싶고, 생각나겠지. 같이 먹은 과자도 기억하고, 좋아하는 것들도 기억하네. 네가 동생을 많이 사랑하고 아껴줬지. 넌 참 좋은 언니구나.

‘이놈-’하면 웃는 소리 다시 듣고 싶다.        


22.1.14

엄마 너무 외로워. 아기들 보면 수아가 더 생각나. 아직 살아있을 거 같아. 남동생도 필요 없고, 다른 동생도 필요 없어. 수아가 있어야 해.


└울어도 괜찮아. 외롭고 보고 싶을 때 이렇게 같이 울자. 자꾸만 문 잠그고 몰래 울지 말고, 엄마에게 와줄래? “엄마, 수아가 너무 보고 싶어서 울었어.”라고 말해줄래? 네가 엄마에게 눈물을 숨길 때마다 엄마는 너에게 너무 미안해져. 눈치 보느라 제대로 울지 못할까 봐 걱정돼. 그러니 용기 내서 엄마에게 안겨줄래?        


22.1.24

이만큼(축구공 크기)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이~~ 만큼(머리 위로 큰 동그라미) 좋아해.


└어떤 마음인지 알 거 같아. 이전에도 많이 사랑했지만, 함께하지 못하니 그 사랑이 더 커지고 있어. 사랑하기만 할 때보다 후회와 아쉬움과 그리움이 더해져 사랑이 커져. 엄마도 너의 표현에 공감되네.         


22.4.17

엄마 백 살까지 같이 살기로 약속했잖아. 엄마는 절대 죽으면 안 돼. 백 살 되면 천국 가서 할머니랑 수아랑 놀자. 그때도 “까꿍” 하면 웃을까? 근데 내가 백 살 되면, 수아는 몇 살이지?


└그래, 꼭 백 살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천국에서 만나면 까꿍 놀이하자. 사실 엄마는 가끔 ‘못 찾겠다 꾀꼬리’를 평생 해야 한다는 생각에 괴로워. 그만 숨어있고, ‘까꿍’하고 나왔으면 좋겠어. 처음 ‘까꿍’이라고 말하던 날 얼마나 귀여웠는지 몰라. 지금은 또 어떤 말을 배웠을까. 혹시 엄마 보고 싶다고 말하고 있을까?  


    

22.4.24

수아야. 언니가 기도하면 들려? 보고 싶어. 사랑해.


└수아야. 언니가 기도하면 들려? 엄마도 보고 싶어. 사랑해.     


22.07.06

오늘 아쿠아리움 가? 고모랑 수아랑 부산에서 아쿠아리움 갔잖아. 수아가 생각나. 수아는 상어 안 무서워했는데, 제주에 같이 있었으면... 아쿠아리움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수아랑 100살까지 같이 살자고 약속을 못 했네. 내 동생이 제일 귀여웠는데... 100살까지 살자고 약속 도장 꽝 할걸... 천국에서 돌아오면 좋겠다.


└같이 할 수 있는 재밌고 즐거운 일들이 많은데, 못해서 너무 아쉬워. 수아랑 함께한 곳에서는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이야기하고, 같이 못 해본 일을 하면서도 늘 생각하자. ‘함께하지 못해 아쉬워. 우리 보고 있어?’라고 물어보자.


22.07.08

엄마 꿈에서 할머니 만났어. 천국에서 잠깐 나 만나러 놀러 왔나 봐.


└할머니랑 놀아서 재밌었겠다! 할머니랑 노는 거 정말 좋아했잖아. 엄마는 꿈을 거의 안 꿔. 꿈을 자주 꾸는 고모랑, 시아가 참 부러워. 엄마 꿈에 할머니랑 수아가 나와주면 좋겠어. 꿈이라도 한 번 더 보고 싶다.       


22.07.20

우리 가족은 왜 세 명이야? 언니, 오빠도 없고 아기도 없어.


└우리는 원래 네 명이었는데, 세 명이 되었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세 명보다 더 많아.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시고 고모 고모부 삼촌도 있어. 사촌 오빠도 가족이고, 사촌 동생들도 가족이야. 꼭 같이 살아야만 가족인 건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고, 사랑하고, 위해주면 가족이지.

       


22.07.26

너무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해? 하나님한테 수아 다시 돌려달라고 기도해. 사고 났을 때 말이야. 내가 전화가 있었어야 해. 그래서 전화받아서 사고 난 걸 알았어야 해. 기도해서 하나님이 사고 난 거 알아서, 죽지 않게 해야 했는데... 살려달라고 기도해야 했는데...


└너무 안타깝지만... 전화로 막을 수 없는 일이었어. 더구나 시아가 기도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은 절대 아니야. 엄마도 너무나 되돌리고 싶어. 왜 그건 안 되는 걸까? 우리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아서 영화처럼 시간이 되돌아가면 좋겠어.  


22.7.31

엄마, 엄마!! 꿈에서 수아가 살아났다고 했어. 그리고 수아랑 놀았어.


└(그게 진짜면 정말 좋겠다.) 그 이야길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어? 날아갈 듯 기뻤어? 수아랑 노는 꿈을 자주 꾸네. 수아도 언니랑 노는 게 좋은가 봐. 꿈에서는 뭐 하고 놀아?     

 


22.8.21


하늘의 구름이 먹고 싶게 생겼어. 장난감 같기도 하다. 수아는 구름 만지고, 가지고 놀고 있을까? 혹시 구름 먹는 건 아닐까?  


└(엄마는 가끔 네가 부럽다.) 엄마도 수아가 하늘에서 구름 먹고, 놀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 아마 처음 솜사탕을 먹을 때처럼 놓지 않으려 구름을 꽉 잡고 있으려나. 하얀 얼굴에 예쁜 드레스 입고 구름 위를 뛰어다니려나.        


22.08.29

할아버지랑 고모 고모부 보니까 할머니랑 수아 생각이 많이 났어. 할머니랑 수아가 있었으면 행복했을 텐데... 천국에서 생일 축하하겠지?


└우리 시아가 많이 컸구나. 할머니 생신날 모였는데, 할머니가 안 계시니 많이 허전했지? 엄마도 ‘우리 모두 살아있다면, 정말 행복했을 텐데...’라고 자주 느낀단다.     


22.10.06

엄마 곧 내 생일이야. 생일 선물로 수아가 다시 오면 좋겠어. 눈을 감았다가 뜨면, 짜잔 하고 나타나면 어때? 아니면, 내가 다시 6살로 돌아가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야. 할머니도 있고, 수아도 있고, 친구들도 있어. 그리고 엄마도 내 옆에 있어.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할머니와 수아를 볼 수 없는 현실이 얼마나 힘들었니. 그런데 제주라는 낯선 곳에 와서 더 힘들었구나. 네가 좋아하던 집도 유치원도 친구들도 떠나게 해서 미안해. 새로운 환경이 오히려 너에게 더 짐이 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했지만, 이전에 살던 곳에서 계속 사는 건 엄마 아빠에겐 너무 힘든 일이었단다. 아직도 가끔 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너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해 미안해. 그래도 제주에 적응하고, 친구도 사귀고, 엄마 아빠랑 셋이서 다니는 걸 좋아해 주는 우리 딸. 이렇게 살아줘서 고마워. 많이 사랑해.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생일 축하해.       


22.10.08.

(사진을 보며) 수아 엄청 귀여워. 눈동자도 귀엽고, 손가락도 귀엽고 다 귀여워. (뽀뽀하며) 수아 사진 보니까 더 보고 싶다. 만나서 안아보고 싶어. 이 세상에서 제일 귀여워.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수아야. 이렇게 귀여운데, 죽었네. 수아한테 장난감 다 줄 수 있는데, 수아가 없어. 엄마, 수아 다시 만나면 어때? 오랜만에 만나서 쑥스러울 것 같아.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 나는 한 가지 잘못한 게 있어. 미리 알았으면 말이야. “교통사고 날 거 같아요. 나가지 마세요.”라고 할걸. 수아랑 할머니는 백 살까지 살자는 약속 못 지켰네. 안 되겠어. 할머니는 다시 인천으로 가고, 수아는 다시 여기 오라고 하자. 부산 천국에 갔으니 우리가 부산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시아도 그런 생각 하는구나. 엄마가 여러  말하지만, 사고는 절대  잘못이 아니야. 엄마도 너처럼 생각해. “오늘 나가지 마세요.”라고 말할걸. 할아버지도 ‘영상통화  해서 늦게 나가게 할걸하신대. 천국은 어디든 상관없이  연결되어있어. 부산에 가지 않아도 여기도 천국이 있어. (우리를  보고 있을까? 우리 이야기  듣고 있을까?) 우리가 하는 말을 다 듣고 있을 거야.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거야.


이전 17화 엄마를 잃은 딸의 일기 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