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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 회사원 김씨 Jun 25. 2023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

그리고 그 시간을 멈추게 하는 방법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의 강의를 듣다가 알게 된 사실하나.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하는데 그것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고 한다. 어린 사람의 뇌는 성능이 좋아서 동일한 시간 동안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더 많이 받아들이고 나이가 들수록 뇌의 성능이 저하되면서 좀더 듬성듬성한 정보를 입력한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어린 사람의 뇌는 고속카메라와 같아서 모든 장면과 상황을 슬로우모션으로 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똑 같은 시간을 보내도 더 많은 프레임이 저장되어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김대식 교수는 나이 들어서도 어린 사람들과 같이 더 시간을 느리게 가게 하는 방법으로 커피 마시기와 집중하기를 들고 있다. 두 가지 모두 매우 짧은 시간 동안 밖에 유지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집중력도 점점 떨어지게 마련이다. 


 모든 것에 항상 집중할 수는 없으니 결국 집중할 것을 선택해야 한다. 그건 아마도 사진 찍기와 비슷할 듯하다. 우리는 어떤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을 때 사진을 찍는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가서 내가 그곳에 있었음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처럼 말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그 상황을 시각적 이미지로 남겨 고정시키는 작업이다. 여행지에서 그 많은 시간과 장소 중 인상 깊었던 일부를 고정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진 속에 남겨지지 않은 연관된 기억들도 함께 소환해 낼 수 있게 된다. 전체를 다 담을 수는 없다. 그러니 이때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을 담고 어떤 것을 버릴지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남기고 싶은 것들 외의 것을 소거하는 선택의 과정, 우리가 남겨야 할 것에 집중하고 그 외의 것은 모두 망각 속에 버리는 선별작업 그것이 기억이니까.


 보통은 중요한 일 중요한 순간을 남긴다. 그러나 항상 중요한 것만 남기려 한다면 시간은 손살같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가 버릴 것이다. 내 기억 속을 뒤져 보아도 한달 동안 무엇을 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떠오르는 것이 몇 개 없을 것이다. 내가 살아온 한 달이, 일년이 너무나 빈약함에 깜짝 놀라고 헛헛함만 남을 것이다. 그러니 일상에서도 그냥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의미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카메라를 들이대보자. 듬성듬성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는 사건들이 기억 속에 흩어 질 때 한 순간 집중으로 의미 없던 사건을 의미 있는 사건으로 기억에 저장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 사건이 일어난 시간은 더 이상 빠르게 내 옆을 스쳐 지나간 여느 시간들이 아닌 특별한 시간으로 남게 될 것이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지나가는 그 길에 어느 날 문득 꽃이 피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잠시 멈추어 꽃의 향기를 느낄 때 그 길이 갑자기 낯설어 진다. 퇴근길 집으로 향하다 아파트 사이로 저물어가는 붉은 석양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그 선명한 이미지에 잠시 발길이 멈출 때 오늘의 퇴근은 다른 날과 다르게 된다. 늦은 밤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막내가 어느새 내 키를 훌쩍 넘긴 것을 보며 깜짝 놀랄 때 아들과 나의 시간은 잠시 멈추어 선다. 퇴근 후 와이프와 새로 산 와인의 향을 음미하며 수다를 떨던 어느 저녁 식사의 따뜻한 기억은 미래의 어느 날 그 와인의 향기와 함께 소환될 것이다. 남겨진 시간을 그리고 그와 함께 남겨질 기억을 더 풍성하게 하고자 한다면 지금 여기의 느낌에 잠시 집중하자.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잠시 여기에 묶어두자.어느 날 문득 ‘벌써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라는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지금 바로 카메라를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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