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
시진 출처 (Image by Mario Hagen from Pixabay)
최근 고등학생 아들과 조금 소원해졌다. 조금만 더 공부하면 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맘처럼 따라 주지 않는다. 친구들과 축구하고 게임을 하는 시간이 더 즐거우리라. 이해는 하지만 지금은 공부를 할 때라고 좀 있다 시험이 끝나고 즐겨도 된다고 말하지만 도통 먹히지 않는다. 아들은 갑자기 잔소리가 늘어난 아빠가 탐탁치 않고 나는 내 맘을 모르는 아들이 탐탁치 않다.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 (p36)
사진 출처 : 교보문고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이라는 책을 읽다가 이 문장을 읽고 멈칫하게 되었다.
아들은 존재만으로 나에게 ‘행복 (Felix)’이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일까? 태어나기 전 아들이 와이프 뱃속에 있을 때는 건강하게 태어나기만 바랐다. 유치원, 초등학교 들어가서까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건강하게만 자라는 것뿐 이었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몸이 약해서 운동과 담 쌓고 살았기에 아들에게는 모든 운동을 체험하게 해 주었다. 덕분에 잘하지는 못해도 왠만한 운동은 다 할 줄 안다. 당연히 매우 건강하다. 여기에 착하기 까지 하니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착하고 건강하기만 바랬던 아들에게 갑자기 불만이 생긴 것은 아들이 변해서가 아니라 내가 변해서구나. 아들은 예전과 같이 그대로 인데 불만의 원인이 또 그로 인한 불행의 원인이 나에게 있었구나. 더 정확히는 내 욕심에서부터 내 불행은 시작된 것 이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
건강하니 착하길 바라고 착하니 공부를 잘 했으면 바란다. 아들은 아마 갑자기 화가 늘어난 아빠 때문에 곤혹스러웠을 것 같다. 아들은 행복한데 나만 내 욕심에 불행하다. 스스로 불행에 밀어 넣고 있다. 가족의 건강함에 아무 탈도 없음에 감사해야 하는데 너무 행복한 나머지 행복을 모르고 살았나 보다. 지금 이순간 나에게 주어진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는데 자꾸 그것을 잊는다.
책 속에서 저자는 이탈리아에서 친구들과 등산했던 경험을 들려준다. 한참 산을 오르다 나타난 푸른 들판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친구들은 그곳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저자는 등산의 목적을 잊은 친구들에게 빨리 길을 떠나자고 재촉한다. 그때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런 시간을 누리려고 사는 거야.”
‘이런 시간’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감동의 순간. 작지만 소중한 그 시간 그것들을 누리기 위해 우리는 사는 것이다. 좋은 삶이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닐까? 작고 흩어져 있는 ‘이런 시간’들을 누리다 보면 좋은 삶은, 행복한 삶은 이미 이루어져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다가올 거창한 무엇인가를 위한 삶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