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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날 Jul 05. 2024

팜유의 정확한 뜻과 종류 총정리

팜올레유? 팜스테아린유? 팜핵유?

지금까지 팜원유(CPO)가 만들어지고 운반되는 과정, 팜원유와 팜핵유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라면이나 과자봉지 뒷 면, ‘원재료명과 함량’에는 더 어려운 말들이 쓰여 있습니다. ‘팜스테아린유’, ‘팜올레인유’, ‘팜스테아린경화유’ 등등.. 이런 것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이제 정제소에서 식용유로 만들어지고 우리 식탁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다시 잠깐 팜원유 공장(CPO Mill)으로 돌아와서, 운송 트럭을 통해 저장탱크로 팜원유를 이동하는 모습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운송 트럭에서 저장탱크로 옮겨지는 팜원유(CPO) (본인 촬영)

팜원유를 보니 색깔도 빨갛고 지저분해 보이기도 해서 아직은 먹음직스럽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여기서 불순물만 정제하여 빨간 상태로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레드팜오일’로 판매되고 있는데,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실 저 색이 빨간 이유도 카로틴(carotene)이라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인데, 카로틴은 당근 같은 채소에 들어있는 적황색 물질로 우리 몸에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뒤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레드팜오일이 아닌 일반적인 경우, 팜원유가 식탁에 올 수 있도록 깨끗하게 만드는 곳이 바로 정제소(Refinery)입니다. 이 정제 공정에서 팜원유는 식용유가 되어 우리 식탁으로 올라오게 됩니다.


팜원유(CPO) 정제 공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불순물을 없애고(Refine), 색을 희게 하고(Bleach), 냄새를 없애는(Deodorize) 공정입니다. 이 세 가지의 앞 글자를 따서, 이 공정을 거친 팜유 제 팜유(RBD Palm Oil)라고 부릅니다.


두 번째 공정은, 이 정제 팜유를 고체와 액체 부분으로 분리하는 작업입니다. 팜원유 안에는 고체 성분과 액체 성분이 섞여 있는데, 높은 온도에서는 고체 성분도 액체 형태를 띠게 됩니다. 이를 분리하기 위해 먼저 팜원유를 차갑게 만듭니다. 그렇게 되면 고체 성분이 액체에서 고체로 변하게 되는데, 녹아있던 마가린을 냉장고에 넣으면 차가워지면서 굳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이렇게 고체 성분은 고체 형태, 액체 성분은 액체 형태를 띠게 될 때 필터를 통해 이 둘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팜유 정제소 엔지니어가 이에 대해 비유를 들어 설명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마치 커피가 뜨거울 땐 물(액체)과 커피 가루(고체)가 잘 섞여 있다가, 가만히 오래 둬서 차갑게 식으면 커피 가루가 가라앉으며 물과 커피 가루가 분리되듯이, RBD 팜유를 차갑게 만들어서 그 안에 있던 고체 성분과 액체 성분이 분리되게 만드는 원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리되면 고체 성분은 마가린 형태로, 액체 성분은 식용유 형태로 우리 식탁에 올라온다고 보면 됩니다. 전문 용어로 이 고체 성분 마가린을 팜스테아린(Stearin), 액체 성분 식용유를 팜올레인(Olein)이라고 부릅니다. 다만 여기서 팜스테아린이 고체 성분이라고 하는 게, 마치 플라스틱이나 지우개처럼 딱딱한 물체라는 것이 아니라, 녹는점이 섭씨 50도 정도로 높다는 뜻입니다. 지금껏 팜스테아린을 쉽게 마가린으로 표현했는데, 버터나 마가린을 냉장고에 보관할 땐 고체인데 열을 가하면 액체가 되는 것을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좌: 팜스테아린유, 우: 팜올레인유 (본인 촬영)


이렇게 고체와 액체로 분리할 때, 차갑게 식히는 시간에 따라, 분리된 액체가 얼마나 순수한 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뜨거운 커피를 아주 오랫동안 식히면 물이 커피 가루와 많이 분리될 것이고, 조금만 식히면 물과 커피 가루가 애매하게 분리될 될 것입니다. 팜유의 고체 성분인 팜스테아린, 액체 성분인 팜올레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과정을 오랫동안 하면 순수한 팜올레인을 얻는 반면, 짧게 하면 올레인 성분 안에도, 마치 커피 가루가 섞인 물처럼 팜스테아린의 함량이 어느 정도 남아있게 됩니다.


얼핏 들으면 스테아린 함량이 적은 순수한 올레인의 품질이 좋을 것 같은데요. 과자를 만들기 위해 팜유를 사용하는 업체에서 무조건 순수한 것만 원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과자 업체에서 원하는 맛과 풍미를 살리기 위해서 가장 맛있는 조합을 찾기 때문입니다.


너무 맛있어서 ‘악마의 잼’이라고 불리는 누텔라에는 팜유가 많이 들어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때 EU에서 팜유가 환경을 파괴하고 건강에 나쁘다는 논란이 있었을 때, 누텔라를 만드는 이탈리아 식품 기업 Ferrero 측에서는, 팜유 없이 만든 누텔라는 'Inferior substitute'라며, 팜유를 계속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결국 '그 맛'이 안 난다는 것일 겁니다. 게다가 팜유가 아닌 해바라기씨유나 유채씨유 같은 기름을 대체로 쓴다면 원가가 오르게 되겠죠. 이때 Ferrero가 팜유를 퇴출했다면 안 그래도 비싼 초콜릿 가격이 더 비싸게 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악마의 잼 = 팜유로만 낼 수 있는 맛? (출처: nutella)


팜열매의 과육 부분에서 나오는 팜원유(CPO)가 아닌, 씨앗에서 나오는 팜핵유는 세제나 화장품 원료, 식품 첨가제로 사용됩니다. 팜핵유는 로르산(Lauric Acid)이라는 성분을 포함하고 있고, (라우릭 애씨드, 라우르산 등으로도 불림) 이 성분을 포함한 기름을 라우릭 오일(Lauric Oil)이라고 하는데, 팜핵유는 야자유(Coconut Oil)와 함께 대표적인 라우릭 오일의 한 종류입니다. 서로 대체될 수 있는 성격을 가진 만큼 가격도 비슷하게 움직입니다.


한 번 더 정리하자면,

정제 팜유(RBD Palm Oil): 열매 과육에서 나온 기름을 정제한 것

팜올레인유(Olein): 정제 팜유 중 액체 부분 → 보통 식용유

팜스테아린유(Stearin): 정제 팜유 중 고체 부분 → 마가린, 비누 등

팜핵유(Palm Kernel Oil): 열매 씨앗에서 나온 기름 → 화장품이나 식품 첨가제

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용도는 이 외에도 다양합니다. 필요하면 화학적으로 성질을 바꿀 수도 있는데, 그중 경화 에스테르화는 기름에 화학처리를 해 고체 형로 만드는 공정이라고 합니다.


(홈런볼초코)


이제 이렇게 과자 뒷면의 원재료에 나와있는 수많은 팜유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팜유 시장을 분석할 때, 인도네시아 팜오일 협회(GAPKI) 통계자료에서 말하는 팜오일(Palm Oil)은 과육에서 나온 팜원유(CPO)와 씨앗에서 나온 팜핵유(PKO)를 함께 일컫습니다. 반면, 미국 농무부(USDA) 통계자료에서 말하는 팜오일(Palm Oil)은 과육에서 나온 팜원유(CPO)만 일컫고, 팜핵유는 Palm Kernel Oil로 따로 구분합니다.


단어로는 같은 ‘팜유(Palm Oil)’인데 어디선 정제 팜유나 팜올레인유만 뜻하고 어디선 과육, 씨앗에서 나온 모든 기름, 어디선 과육에서만 나온 기름이라고 정의합니다. 팜유가 어디서 나오고 어떤 종류가 나오는지,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안다면 누군가 팜유, 팜오일, palm oil을 이야기할 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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