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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날 Jul 08. 2024

생각보다 중요한 종자 이야기

이번에는 조금 전문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팜유 종자와 생산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전 글에서 팜유, 정확히 팜원유(CPO)는 기름야자나무의 열매에서 나온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팜원유 외에 팜핵, 팜씨앗껍질 등 다양한 부산물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팜유를 생산해 내는 기름야자나무에도 여러 종자들이 있습니다.


팜열매에서 나오는 품목들은 주산물이든 부산물이든 모두 기름, 사료, 바이오 연료, 비료 등 제각각 쓰임새가 있어서 버릴 데가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가장 좋은 기름야자나무 종자는, 무엇보다 주산물인 팜원유(CPO)를 많이 생산하는 종자입니다.


업계에서는 교배를 통해 팜유를 효율적으로 많이 생산하는 종자를 찾아내고, 그 외에 다양한 생명 과학 기술들을 활용하여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팜열매에서 노란 과육(Mesocarp) 부분이 우리가 익히 아는 팜원유(CPO, Crude Palm Oil)를 생산해 내는 부분이고, 중간에 팜핵(PK, Palm Kernel), 그리고 팜핵을 둘러싼 팜씨앗껍질(PKS, Palm Kernel Shell)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산물인 팜원유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종자는 노란 과육이 가장 많은 열매일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기름야자는 유전형에 따라 듀라(Dura), 피시페라(Pisifera), 테네라(Tenera)로 나뉩니다.


듀라는 열매에서 팜씨앗껍질(PKS, Palm Kernel Shell) 부분이 아주 두꺼운 종자입니다. 열매에서 팜씨앗껍질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으니, 팜유(CPO)를 생산하는 노란 과육(Mesocarp)의 비중이 작은 종자입니다.


피시페라는 듀라와는 반대로, 팜씨앗껍질이 없는 종자입니다. 따라서 노란 과육의 비중이 크고, 열매 낱알만 놓고 보면 우수한 종자인 것처럼 보입니다만, 대신 나무에서 열매가 잘 열리지 않아,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테네라는 듀라보다 팜씨앗껍질이 얇아 팜유 생산성도 높고, 피시페라보다 열매도 훨씬 더 많이 열리는 가장 좋은 종자입니다.


열매 생김새를 그림으로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Dura, Pisifera, Tenera (출처: socfindo)


가장 생산성이 우수한 테네라는 듀라와 피시페라를 교배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듀라의 유전형을 D×D, 피시페라의 유전형을 P×P라고 한다면, 테네라의 유전형은 이 둘을 섞은 D×P입니다.


교배를 시킬 때,

Dura(D×D) × Dura(D×D)를 교배시키면, 부모의 유전형을 하나씩 물려받아 Dura(D×D)가 나오고,

Dura(D×D) × Pisifera(P×P)를 교배시키면, 마찬가지 원리로 부모의 유전형을 하나씩 물려받는데 이번에는 Tenera(D×P)가 나옵니다.


가능한 교배 조합과 결과물을 정리해 보면,

1) Dura(D×D) × Dura(D×D) → Dura(D×D) 100%

2) Dura(D×D) × Pisifera(P×P) → Tenera(D×P) 100%

3) Pisifera(P×P) × Pisifera(P×P) → Pisifera(P×P) 100%

4) Dura(D×D) × Tenera(D×P) → Dura(D×D) 50%와 Tenera(D×P) 50%

5) Pisifera(P×P) × Tenera(D×P) → Pisifera(P×P) 50%와 Tenera(D×P) 50%

6) Tenera(D×P) + Tenera(D×P) → Dura(D×D) 25%, Pisifera(P×P) 25%, Tenera(D×P) 50%

총 6가지입니다.


테네라를 만들어내는 교배 조합은 2)번, 4)번, 5)번, 6)번이 있는데요, 여기서 테네라를 100% 만들어낼 수 있는 조합은 2)번 조합, 즉 듀라(D×D)와 피시페라(P×P)를 교배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방법으로 교배한다면 확률에 따라 테네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죠. 그래서 대부분의 종자 회사들이 2)번 방식으로 종자를 생산합니다.


눈치가 빠른 분들이라면 알았을 수도 있지만, 이런 방식은 농가들로 하여금 종자 회사에 의존하도록 만듭니다. 종자 회사로부터 테네라(D×P) 종자를 사서 농장을 100% 테네라 기름야자나무로 구성한 농장이 있다고 해보죠. 이 농장은 자기가 식재한 테네라 나무들로 자체적인 종자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체적으로 만든 종자는 6)번처럼, 듀라나 피시페라가 나올 확률이 50%나 되기 때문이죠. 종자의 생산성은 농장의 경제적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듀라나 피시페라가 50%로 나온다는 확률은 사업적으로 리스크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규로 식재하거나 오래된 나무를 베어내고 재식재할 때에는 다시 종자 회사가 2)번 방식으로 만들어낸 테네라(D×P) 종자를 구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종자 관리를 제대로 못 한 팜농장이나 자연상태에서는 듀라, 피시페라, 테네라 기름야자나무가 다양하게 있지만, 팜유 생산이 목적인 농장에서는 테네라 종자 나무만 많이 심는 것이 좋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수많은 섬들로 이뤄져 있는데, 그중 팜사업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섬이 수마트라와 칼리만탄입니다. 팜사업의 역사가 오래된 수마트라 지역에서는 팜씨앗껍질(PKS)의 품질이 굉장히 좋고, 역사가 짧은 칼리만탄 지역에서는 품질이 낮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듯 좋은 종자는 팜씨앗껍질이 얇고 팜열매의 과육 부분이 큰 종자라고 하였죠. 그래서 사실 수마트라의 팜씨앗껍질 품질이 좋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팜원유(CPO)의 수율이 높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래 인도네시아 농무부(Kementerian Pertanian)의 통계 자료를 보면, 좌측 1, 3, 5, 7, 8, 9번 구역이 수마트라 지역입니다. 나머지 오른쪽 2, 4, 6, 10번 구역이 칼리만탄 지역입니다. 기름야자 식재 면적과 팜유(CPO 기준) 생산량이 나와 있는데, 실제로 계산해 보면 수마트라 지역은 ha당 2.5톤, 칼리만탄 지역은 ha당 3.3톤의 팜유를 생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인도네시아 농무부 / Statistik Perkebunan 2022-2024)


이런 현상은 아무래도 팜사업 역사가 오래된(=최신 기술이 덜 적용된) 수마트라 지역에 테네라 종자를 체계적으로 식재한 농장보다 듀라 품종이 섞인 농장들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테네라와 같은 교잡 육종 외에도, 더 높은 생산성을 위한 연구 개발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좋은 종자는 수마트라와 칼리만탄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은 팜유를 생산할 수 있게 합니다. 팜유 생산성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결국 지구에 빚진 땅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환경 보존과도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습니다. 같은 팜유를 되도록이면 땅을 좁게 쓰면서,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그 땅을 야생동물들에게 다시 돌려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한 편으로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바로 생물 다양성 문제입니다. 비단 팜유뿐 아니라, 대두와 같은 다른 작물들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교잡 육종’을 통해 생산성이 높은 종자를 만들어냅니다. 문제는 이렇게 되다 보니, 지구상에 온통 같은 종자의 농산물들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사실 자연 상태에서는, 듀라, 피시페라, 테네라가 다양하게 공존하는 것이 더 이로울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테네라에게 치명적인 곰팡이나 세균, 질병이 돌게 되면, 대부분이 테네라 나무로만 이루어진 기름야자 농장의 나무들은 모두 고사해 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양한 나무들이 있었더라면 듀라, 피시페라는 살아남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또 앞서 이야기했듯, 생산성이 높은 테네라는 자체적으로는 50%의 확률로만 테네라 종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결국 신규 식재나 재식재를 위해서는 종자 회사로부터 다시 종자를 구입해야 합니다. 즉, 농민들이 종자 회사에 의존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기름야자는 상황이 낫습니다. 기름야자의 경우 식재를 25~30년 정도 주기로 하기 때문에 25~30년마다 새로운 종자를 구입하게 되지만, 팜유가 아니라 매년 파종과 수확을 하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들은 결국 '매년' 종자 회사에 의존하게 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종자 개발은 결국 인간의 늘어나는 식량 수요에 대응해서, 같은 토지에서 더 많은 생산물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는 경제적일 뿐 아니라 환경적으로도 이로운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생물의 다양성을 해치고, 농민들로 하여금 종자 회사에 의존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양면성과 복잡성을 잘 알아야 이와 관련한 소식을 접했을 때 좀 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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