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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날 Jul 15. 2024

팜유 대국 인도네시아와 에너지 정책

기름야자에서 생산되는 팜유와 팜핵유는 전 세계 식물성 유지 생산량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미국 농무부 자료에 따르면, 22/23년 시즌 팜유는 총 78백만 톤, 팜핵유는 9백만 톤이 생산되었습니다. 이 둘을 합치면 87백만 톤인데, 전 세계 주요 식물성 유지 생산량이 218백만 톤이니, 기름야자로 만든 팜유와 팜핵유가 전 세계 주요 식물성 유지 생산량의 40%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팜유는 생산 지역이 편중돼 있습니다. 연중 내내 덥고 습한 적도 인근의 열대 우림이 많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두 국가에서 80% 이상이 생산되는데,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팜유와 팜핵유 물량이 약 5천만 톤 이상으로, 전체 팜유 생산량의 약 60%를 차지합니다.


어지럽게 숫자 이야기를 좀 했는데요, 결국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하는 팜유가 50백만 톤, 전 세계 주요 식물성 유지 생산량이 218백만 톤이라면, 전 세계에서 쓰는 주요 식물성 유지의 1/4 가까이를 인도네시아 한 곳에서 생산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이 정도면 인도네시아는 팜유 대국을 넘어 식물성 유지 대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팜유를 만드는 기름야자가 태동한 곳은 인도네시아가 아닙니다. 팜유를 만드는 기름야자의 정확한 학명은 Elaeis guineensis로, 서부 아프리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산업화 이전의 팜유 추출 (출처: A Brief History of the Oil Palm)


서부 아프리카에서 생산되던 팜유는 영국의 산업 혁명과 국제 무역이 활발해지며 수요가 많아집니다. 팜유는 영국 산업 혁명 당시 양초나 윤활유로 쓰이기도 했고, 국제 무역을 위해 긴 항해를 하는 선원들의 식량 자원으로도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기름야자나무의 생산성은 그 기원을 둔 서부 아프리카보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서 더 높은 상황입니다. 이 두 나라가 기름야자나무 생육에 적합한 적도 인근(위도 ±10˚)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아프리카보다 산업 인프라가 더 낫기 때문입니다. 고려 시대에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 선생님처럼, 세계적인 산업화와 더불어 팜유가 점점 더 필요해지는 시대의 흐름이 기름야자 종자를 서부 아프리카에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로 가져왔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상업용 팜농장이 개발(1911년 수마트라)되기 전, 1848년에 기름야자 종자가 인도네시아에 최초로 심어졌습니다. 자카르타 인근에 있는 '보고르'라는 지역에 Kebun Raya라는 큰 식물원이 있는데요. 인도네시아 최초의 기름야자 종자가 심어진 곳이 바로 이 식물원이고, 그곳에 이를 기념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팜유가 인도네시아의 주요 산업이 되고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으니, 이 정도 기념비는 세워줘야 하겠네요.


보고르 식물원에서..


이렇게 풍부한 생산에 힘입어 팜유는 인도네시아의 주요 산업기반이자 힘이 되었습니다. 2022년에는 팜유 수출을 금지하며 그 힘을 과시하기도 했었죠. 팜유는 식용 외에도 바이오디젤(Bio Diesel)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보통 바이오디젤은 일반 화석연료 디젤(경유)에 섞어서 사용하는데, 대표적인 친환경 연료 중 하나입니다. 2024년 현재 인도네시아는 운송 부문에서 쓰이는 디젤(경유)의 35%를 바이오디젤로 의무 혼합하는 소위 'B35'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인도네시아 주유소에서 경유를 주유하면 65%만 일반 경유이고 35%는 팜유라는 뜻입니다.


인도네시아 바이오디젤 의무 사용 정책은 빠르게 진행돼 왔습니다.

2008년 B2.5를 시작으로, 2010년 B7.5, 2014년 B10, 2015년 B15, 2016년 B20, 2020년 B30, 그리고 2023년 B35까지 왔는데, 참고로 2024년 현재 우리나라는 바이오디젤 의무 혼합 비율이 4%인 상황입니다. 인도네시아는 B40을 위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고, 잊을만하면 B100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들립니다.


참고로 세계 2위 팜유 생산국인 말레이시아는 기존의 B10에서 B20으로 확장하는 정책을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조코위 전 대통령과 바이오디젤 정책 (출처: CNBC Indonesia)


바이오디젤은 저온에서 기계 결함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 취약점이 있는데, 인도네시아는 1년 내내 덥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더위와 추위가 반복되는 나라에 비해 바이오디젤을 사용하기 좋은 환경이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인도네시아 현장에 있다 보면, 바이오디젤을 사용한 중장비가 고장이 잘 난다거나, 기름에 물이 생긴다는 이야기들이 들리는데요. 인도네시아는 왜 이렇게까지 바이오디젤 정책을 강력하게 펼치는 것일까요?


사실 인도네시아는 왕년에 OPEC(석유 수출국 기구) 회원이었던, 산유국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에너지 석유화학 회사 쉘(Shell)의 모태인 로열더치가 바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북동부 지역에서 석유를 발견하면서 사업을 시작했죠. 하지만 인도네시아 원유(Crude Oil) 생산량은 1990년대부터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아래 생산량 그래프 보면 쭉쭉 빠지는 모습입니다.


인도네시아 원유(Crude Oil) 생산량 (단위: 백만 톤, 출처: Energy Institute)


하지만 경제가 발전하면서 원유 수요는 늘어났고, 어느 순간 인도네시아는 원유 순수입국이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원유(Crude Oil) 수출량과 수입량 (단위: 천 톤, 출처: 인도네시아 통계청)


그래프에서 빨간색이 원유(Crude Oil) 수입량, 파란색이 수출량인데요. 순수출국에서 순수입국이 되고 있는 모습이 아주 명확하게 보입니다.


이렇게 원유 수출국에서 수입하는 국가로 입장이 바뀌니, OPEC에서 "다 같이 감산하자!"라고 할 때 유가상승이 부담스러운 인도네시아는 감산을 거부하면서 OPEC에서 나오게 됩니다. 인도네시아는 1962년 OPEC에 가입했지만, 2009년 탈퇴했습니다. 이후 2015년에 재가입했지만 2016년에 다시 OPEC을 떠나게 됩니다.


이렇게 원유가 부족하던 차에, 자국에 풍부한 팜유로 원유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바이오디젤 기술이 개발되었으니, 강력하게 이를 밀어붙이는 모습입니다.


팜유를 바이오디젤로 사용하면 석유 자원에 대한 외부 의존도를 낮출 수도 있고, 한 편으로는 바이오디젤 정책을 통해 팜유 가격을 원하는 대로 조금은 부양할 수도 있습니다. 팜유 가격은 2011년 경을 피크로, 2021년 폭등 전까지 오랜 기간 동안 낮게 유지되어 왔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인도네시아 바이오디젤 정책은 2008년부터 시작해 2010년, 그리고 2014~2016년 3년 연속으로 확대해 왔는데요. 이 시기에는 팜유 가격도 낮았으니, 수요를 진작하는, 즉 팜유 가격을 올릴 수 있는 바이오디젤 정책 시행에 있어 그리 부담도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너무 낮은 팜유 가격에 불만이 쌓인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한 번씩 바이오디젤 의무 사용량을 확대하겠다는 발표를 하면, 팜유 가격을 부양하고 환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팜원유(CPO) 가격 (말레이시아 선물 기준, 단위: U$/톤, 출처: Investing.com)


물론 바이오디젤 의무 사용량은 한 번 올리게 되면 다시 내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바이오디젤 의무 사용량을 줄이게 되면 마치 친환경 정책이 뒷걸음질 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단기적인 가격 부양을 위해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한 바이오디젤 정책을 마구잡이로 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정부가 팜유 가격 부양을 위해서 바이오디젤 정책을 사용된다는 것은 조금 음모론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의도야 어쨌든 인도네시아 정부의 의도가 어떻든 팜유라는 원자재(Commodity)의 가격에 인도네시아 정부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강력한 영향력입니다. 2024년 당선된 인도네시아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 역시 강력한 바이오디젤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 한 편으로는,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며 국제적으로 뭇매를 맞고 있는 팜유를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가 바이오디젤로 많이 소비해서 세계적으로 공급량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오면, 팜유를 비판하던 사람들도 그때부터는 쉽게 팜유를 비판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환경을 파괴하는 팜유, 안 써!"

"그래 쓰지 마. 우리도 바이오디젤 만드느라 팜유 부족해. 달라고 해도 안 줘!"

"... 진짜 하나도 못 줘?"


이처럼 여러 상황이 적절하게 받쳐주는 가운데, 국제적으로도 친환경 정책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게 되니, 인도네시아 정부는 신나게 바이오디젤 의무 사용량을 높이게 되고, 글로벌 주요 바이오 연료 생산국이 되었습니다.


국가별 바이오 연료 생산량, 빨간색이 인도네시아 (출처: IEA, 국제 에너지 기구)



인도네시아는 지금도 바이오디젤 정책에 속도를 내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바이오디젤이 정말 친환경적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습니다. 결국 바이오디젤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팜유를 생산해야 하고, 그러면 더 많은 열대우림 파괴와 농장 조성이 필요한데, 이게 친환경이 맞냐는 것입니다. 특히 이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EU이고, 2019년에는 팜유를 ‘바이오디젤 연료로서’ 퇴출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비단 팜유뿐 아니라, 바이오디젤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먹는 식량을 연료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비판과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바이오디젤 정책은 좀 더 많은 고민과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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