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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날 Aug 09. 2024

팜유는 언제나 풍족할까?

앞선 글들을 통해 팜유는 전 세계 주요 식물성 유지 생산량의 약 40%를 차지하고, 각종 바이오 연료로 사용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인구가 증가하고 소득이 늘어나며 식물성 유지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함에 따라, 주요 식물성 유지 생산량은 1990년대 후반 대비 200% 정도 증가했습니다. 이 기간 팜유는 300% 이상 증가하면서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시키는 큰 역할을 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바이오디젤과 같은 연료용 수요까지 생겨나면서 그 수요가 더욱 늘어나는 추세이죠. 그렇다면 팜유는 앞으로도 늘어나는 인간의 수요를 든든하게 채워줄 수 있을까요?


바로 앞의 글에서 식량 위기에 대해 다루면서 세 가지 조건, 즉 공급이 비탄력적이고, 생산 지역이 편중돼 있고, 생산 기반이 정체된 식량의 경우 앞으로의 공급이 부족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코코아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았죠. 그렇다면 팜유는 어떨까요? 먼저 팜유는 코코아처럼 나무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공급이 비탄력적입니다. 첫 번째 조건을 만족한 셈인데,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앞 글에서 이미 여러 번 언급했으니 이 글에서는 생략하도록 하고, 나머지 두 조건인 팜유의 생산 지역이 편중돼 있는지, 생산 기반이 정체돼 있는지 점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팜유는 생산 지역이 편중돼 있습니다. 전통적인 강자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입니다. 미국농무부 자료에 따르면, 이 두 국가에서 생산하는 팜유는 23/24년 시즌('23년 10~ '24년 9월) 기준 6,600만 톤으로 전 세계 팜유 생산량 8,000만 톤의 80% 이상을 차지합니다. 과거 96/97년 시즌에도 이 두 국가의 팜유 생산량은 전 세계 팜유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사실 과거에는 말레이시아의 생산량이 더 높았는데, 2005년 전후 역전되어, 지금은 인도네시아가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팜유 생산국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생산 지역이 편중돼 있다는 것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팜유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생산 기반은 어떤 상황일까요? 먼저 미국농무부 자료를 기반으로 00/01 시즌에서 최근 22/23 시즌까지의 수확 면적과 생산성(생산량 ÷ 수확 면적)을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인도네시아 팜유 수확면적 및 생산성 (출처: 미국 농무부 자료 가공)

인도네시아의 경우, 수확 면적은 증가하는 추세이고, 생산성은 다소 정체된 모습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수확 면적이 증가한다면 크게 생산 차질을 걱정할 단계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의 경우, 수확 면적은 증가 추세이지만, 생산성은 많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팜유 수확면적 및 생산성 (출처: 미국 농무부 자료 가공)

앞서 살펴본 코트디부아르의 코코아 수확 면적, 생산성과 비슷한 느낌인데요.


미국농무부의 두 자료를 보면 앞으로 팜유 생산량은 줄어들지는 않더라도, 획기적으로 늘어날 가능성 역시 적어 보입니다. 전 세계 팜유 생산량은 99/00 시즌 ~ 09/10 시즌까지 연평균 7.8%씩 성장했지만, 10/11 시즌 ~ 23/24 시즌까지는 연평균 3.7% 성장하며 그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습니다.


통계 출처를 미국농무부가 아닌 인도네시아 농무부나 말레이시아 팜유 위원회로 바꾸면 상황은 좀 더 심각해집니다.


인도네시아 농무부(Kementerian Pertanian)의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2022년보다 2023년 수확 면적이 약 1백만 ha 증가했다는 미국농무부 자료와는 달리, 2022년 수확 면적 12,712,058ha에서 2023년 12,576,900ha로 오히려 감소할 것이며, 2024년 식재 면적 또한 12,848,800ha로, 전년 대비 크게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팜유 위원회(MPOB)의 통계를 살펴봐도, 2019년부터 꾸준히 수확 면적이 증가했다는 미국 농무부 자료와는 달리, 말레이시아 기름야자 식재 면적이 2019년을 정점으로 2023년까지 꾸준히 감소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요약하자면, 미국 농무부의 통계를 보면 그래도 수확 면적이 증가 혹은 정체하는 추세라 공급 충격이 단기간 내에 올 것 같지 않다는, 그나마 조금 더 낙관적인 분석을 할 수 있지만,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통계를 보면 식재 면적이 정체 혹은 감소하는 모습으로, 공급 충격이 좀 더 빨리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통계를 다루는 기관마다 자료가 100%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국토 면적이 1,004만 ha라고 하는데, 인도네시아의 기름야자 농장은 1,200만 ha가 넘는 데다 중간에 도로도 있고, 사람이 사는 곳도 있으니 정확한 식재 면적을 정확히 구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참고로 미국농무부나 인도네시아 농무부의 수확 면적(Area Harvested / Mature Area)과 말레이시아 팜유 위원회의 식재 면적(Planted Area)은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기름야자나무가 식재되고 3년 정도가 지나야 제대로 팜유를 생산할 수 있는 팜열매를 맺기 시작하는데, 수확 면적은 팜유를 생산할 수 있는 성숙된 나무만 포함하는 면적이고, 식재 면적은 아직 성숙되지 않은 나무까지 포함한 면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확 면적이든 식재 면적이든, 정체 혹은 감소한다는 것은 생산 기반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미국농무부, 인도네시아 농무부, 말레이시아 팜유 위원회 그 어느 자료를 보아도 앞으로의 팜유 생산이 과거에 그래왔듯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처럼 팜유의 생산 기반 중 수확 면적이 정체돼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018년 인도네시아 정부는 3년간 팜유 사업을 위한 신규 허가를 중단하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팜유 생산을 위해 열대우림을 개발해 기름야자나무를 심으면, 생태계 다양성을 훼손하는 등 환경을 파괴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있었고, 이에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이 조치는 3년이 지난 2021년에 중단되었지만, 이런 분위기가 최근의 수확 면적의 증가를 억제한 부분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정부 역시 2015년에는 환경 보호를 위해 기름야자 식재 면적을 650만 ha로 제한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앞서 말레이시아 팜유 위원회 자료에서 보았듯 식재 면적은 2019년 590만 ha를 기점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정부가 농장 면적의 확대를 억제한 것이 수확 면적이 정체된 이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인건비의 상승이 있습니다. 팜사업은 수확 작업을 인력에 의존해야 하는 노동 집약적 사업이며,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모두 그간 저렴한 인건비에 수혜를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빠르게 인건비가 상승하고 있으며, 특히나 고된 열매 수확은 점점 더 인기가 없는 직업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팜사업에서 외국인 저임금 노동력에 많이 의존해 온 말레이시아는, 코로나19로 인해 외국인 저임금 작업자의 국가 간 이동이 어려워지고 코로나19 검사나 격리 등이 시행되면서 타격을 입었습니다.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비용이 증가한 것입니다. 이처럼 팜유를 생산하는 사업 자체의 경제성이 나빠지게 된 것도 수확 면적이 정체된 또 다른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오랜 기간 팜사업이 확장되면서, 기름야자 농장을 할만한 좋은 땅이 점점 사라지는 상황에서 정부의 친환경 정책이나 인건비의 상승이 이처럼 수확 면적의 정체와 감소를 야기했습니다. 면적은 그렇다고 치고, 그렇다면 생산성은 왜 정체하거나 감소한 것일까요?


노후화 / 앞선 글 '기름야자 농장에서 식탁까지 - 농장'편에서 잠깐 소개했는데, 기름야자나무는 나이에 따라 다른 생산성을 가지며, 이를 그래프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출처: Kushairi et. al, Oil Palm Biology: Facts & Figures)


마치 사람처럼, 어린 시절에는 제대로 된 생산을 못 하다가, 청·장년기가 되어가며 생산성이 오르고, 이후 노년기가 되면 생산성이 낮아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기름야자 농장의 면적이 100ha다."라고만 해서는 그 농장에서 얼마나 많은 팜유가 생산될지 알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그 농장이 모두 식재 후 3년이 채 되지 않은 미성숙목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팜유를 생산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10~20년 차인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팜유를 많이 생산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전망 또한 다릅니다. 같은 예로, 지금 미성숙목으로만 이루어진 농장은, 당장에는 생산량이 높지 않겠지만 10년 후 생산량이 높을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금 10~20년 차인 나무들로 이루어진 농장은 10년 후 생산량이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늙은 나무가 많을지, 젊은 나무가 많을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런 궁금증으로 제가 계산한 것이 말레이시아 팜유 위원회 학술지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이 글에서 그 내용을 모두 다루기는 어렵겠지만, 제 나름의 분석에 따른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모두 20년 차 이상의 노후화된 나무의 비중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즉, 앞으로는 과거처럼 생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풍족한 팜유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풍족한, 그래서 식물성 유지 중 가장 저렴한 팜유의 시대가 저문다는 것은 앞으로 비싼 식물성 유지의 시대가 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식물성 유지는 앞서 살펴보았듯 식용으로도 쓰이지만, 생활 용품에도 들어가고 이제는 운송 연료로도 쓰이고 있는 자원인데 말이죠. 그렇다면 팜유의 생산 정체는 전반적인 물가의 상승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부터 무작정 팜유 생산을 늘리기 위해 열대우림을 개발한다면, 이 또한 미래에 치명적인 환경 문제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환경을 보호할 것인가, 인간의 수요를 충족시킬 것인가. 이런 고차 방정식 속에서 앞으로 팜유는 우리가 접하는 뉴스에서 점점 더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것 같습니다.


학술지 참고: WORLD PALM OIL SUPPLY FORECAST: REVIEW AND UPDATE – OPIEJ (mpob.gov.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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