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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날 Aug 05. 2024

식량 위기, 정말 오는 걸까?

진짜 늑대는 언제 올까

식량 위기, 기후 위기,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오른다.


요즘 신문이나 책을 보면 많이 볼 수 있는 말입니다. 사실 이런 위기설은 요즘에도 많지만 10년, 아니 20년 전에도 많이 들어온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매번 이런 식량이나 기후 위기가 온다고 하긴 하는데, 솔직히 실생활에서 크게 느끼지 못했던 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식량 위기의 경우, 어느 특정 작물의 값이 오르고, '장바구니 물가가 올랐다' 정도로 몇 번 투덜대고 나면 지나간 느낌입니다. 마치 늑대가 온다던 양치기 소년의 외침을 들을 때처럼, 처음에는 위기의식이 생기다가도 나중에는 무뎌지는 것이죠.


하지만 보면 볼수록 이제는 식량 위기라는 진짜 늑대가 나타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이 글에서는 전반적인 식량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고, 그렇다면 앞으로 팜유는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식량 위기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기후가 변하고, 환경이 파괴되는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가장 큰 본질적인 이유 '식량에 대한 인간의 수요는 증가하는데, 땅은 한정돼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식량을 지금처럼 부족함 없이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당장 지금의 60대 이상 어르신 세대만 해도, 어릴 적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식량이 부족했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기를 지금처럼 풍족하게 먹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효과적인 경작 기술이나 생산성이 높은 종자가 개발되면서 식량의 생산량이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식량이 풍족한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의 교역이 활발해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그간 경제 성장을 빠르게 한 것도 있지만, 이런 기술의 발달이나 교역의 활성화가 오늘날의 풍족한 식생활에 큰 몫을 했을 것입니다.


아래는 UN FAO(식량 농업 기구,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통계자료를 통해 만든 그래프입니다. 주요 작물인 옥수수(Maize), 대두(Soya beans), 밀(WHeat), 쌀(Rice)의 생산량과 인구수(Population)를, 1961년을 1이라고 봤을 때 지금까지 얼마나 증가했는지 나타냅니다.


옥수수, 대두, 밀, 쌀 생산량과 인구 수 변화 (출처: UN FAO)


위 그래프를 보면 과거에 갈색으로 표시된 인구의 증가보다, 주요 작물들의 생산량 증가세가 훨씬 더 빨랐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풍족한 식량을 누리고 있는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곡물들은 비단 인간뿐 아니라 가축의 사료가 되면서, 우리의 육식 욕구 또한 채워줬습니다. 또 최근에는 바이오 디젤이나 바이오 에탄올 기술까지 나타나면서 옥수수와 콩의 생산량은 밀이나 쌀보다 더 빨리 증가하는 모습입니다.


지금까지는 기술과 교역으로 한정된 땅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 왔고, 작물들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줬지만, 이제는 그 한계에 봉착하고 있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땅은 한정돼 있는데,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죠. 지금까지의 모습과 앞으로의 모습을 아래 그래프와 같이 개념적으로 나타내 보았습니다.




그래프의 세로축은 물량이고, 가로축은 시간을 나타냅니다. 수요는 인구의 증가와 소득의 상승으로 앞으로 꾸준히 상승한다고 표현습니다. 하지만 공급은 과거에는 기술과 교역의 발달로 가파르게 증가했지만, 이제 제한된 땅이라는 한계에 부딪히면 그 증가폭이 줄어드는 곡선 형태의 그래프로 표현했습니다.


과거에는 수요보다 식량의 생산량이 적어, 빨간색으로 표시된 만큼 초과 수요, 즉 공급의 부족이 있었니다. 과거는 식량이 부족하고 배고픈 시절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기술과 교역의 발달로 생산이 늘어나 현재는 파란색만큼의 초과 공급이 발생한 상태입니다. 우리가 풍부한 식량을 누리면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예전처럼 공급량이 가파르게 늘어나지 못하니, 다시 초과 수요의 상태, 즉 식량 위기, 배고픈 시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사실 '수요'는 주어진 가격에서 얼마나 물건을 구입할 것인지를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 그래프처럼 초과수요가 나타난다는 이야기는 곧 가격이 올라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구가 늘어나 식량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고 해도 식량의 공급이 그에 맞게 늘어나지 못한다면, 식량이 귀해지면서 가격이 높아질 것입니다. 그 상황을 그래프로 설명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서는, 가격이 오를수록 수요량이 감소하기 때문에 수요 그래프가 우하향하고, 가격이 오를수록 공급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공급 그래프가 우상향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식량은, 수요가 증가해서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곧바로 공급량을 증가시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1년 간 씨를 뿌리고 키우고 수확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위 그래프처럼 공급 곡선은 수직의 형태가 되어버립니다. 가격이 오르더라도, 공급량을 늘릴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공급이 비탄력적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미래에 인구의 증가로 인해 식량 수요가 증가하더라도 한정된 땅의 문제로 인해 식량 생산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면, 1년이 지나도 공급량을 증가시킬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공급이 더 비탄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래프에서 보이는 것처럼 결국 식량 가격의 상승이라는 결과가 초래할 것입니다.


앞으로 예상되는 식량 위기라는 미래를 개념적인 이야기로 풀어보았는데요. 최근에 실제로 식량 위기의 전조가 보이는 모습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코코아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최근에 코코아의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코코아 선물가격 ('24년 5월 31일 기준, 단위: U$/톤, 출처: investing.com)


톤당 2~3천 불 안에서 움직이던 코코아 가격이 급등해서 9천 불을 넘어간 것인데요. 왜 이런 가격 급등이 발생했을까요?


1) 비탄력적인 공급


초콜릿 재료가 되는 코코아(정확히는 카카오 Bean)는 나무에서 수확하는 열매입니다. 기름야자나무에서 팜열매가 나오는 것과 비슷하죠. 이 둘은 나무를 식재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야 열매가 나오게 됩니다. 팜의 경우 식재 후 3년은 지나야 열매를 맺기 시작하고, 5년은 되어야 제대로 된 생산성이 나옵니다. '나무에서 수확한다.' 이게 별 말이 아닌 것 같은데,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앞서 식량의 공급은 비탄력적이다, 왜냐하면 파종과 수확이라는 1년의 기간이 지나야 공급량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팜유나 코코아처럼 나무에서 수확하는 작물의 공급은 1년이 지나도 조정할 수 없어 더욱 비탄력적입니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코코아가 필요하다고 올해 당장 코코아나무를 심는다고 해서, 내년에 곧바로 코코아 생산량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만큼 성장하기까지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죠. 반대로 시장에 코코아가 넘친다고 해서 당장 코코아 생산량을 줄이기도 애매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코코아 잘 생산하고 있는 나무를 방치하거나 베어내야 하는데, 이것은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코코아의 수요가 증가한다면, 공급이 비탄력적인 코코아는 수요의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이에 따라 초과 수요가 발생하면서 가격만 오르게 됩니다.


2) 편중된 생산 지역


하지만 이번 코코아의 가격 급등은 갑작스러운 수요 증가 때문이 아닙니다. 갑자기 전 세계에 초콜릿의 인기가 더 높아진 것도 아니고, 인구 증가나 소득 증가에 따른 수요 증가는 장기적으로 천천히 이뤄질 것이니 말이죠. 이번 급등은 공급 측면의 충격에 의해 발생했습니다.


코코아는 생산량의 약 60%가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생산됩니다. 특히 코트디부아르의 생산량이 높은데, UN 식량농업기구 통계에 따르면 2021년과 2022년 전 세계 코코아 생산량의 약 38%가 코트디부아르에서 생산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평소보다 강우량이 많아지는 이상 기후가 발생했고, 이에 코코아나무에 치명적인 병해가 발생했고, 코코아의 생산량이 급감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먹는 초콜릿을 위한 코코아가 다 우리나에서 수확되고, 아프리카에서 먹는 코코아는 다 아프리카에서 수확되었더라면, 아프리카의 기상 이변이 그저 국제 뉴스로 남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아프리카라는 특정 지역에 코코아라는 작물의 생산이 편중돼 있다 보니, 한 지역의 기상 이변이 전 세계의 식량 가격 급등을 불러오게 된 것입니다.


3) 생산 기반의 성장 정체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프리카라는 편중된 지역에서 코코아의 대부분을 생산한 것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닙니다. 엘니뇨, 라니냐 같은 기상 이변도 어찌 보면 늘 있어 왔던 일인데, 왜 하필 지금 이렇게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코트디부아르의 코코아 생산 면적과 생산성 (출처: UN FAO)


위 그래프는 코트디부아르의 코코아 수확 면적과 생산성을 보여줍니다. 파란색으로 표시된 수확 면적은 꾸준히 증가하다가, 2019년부터 성장이 정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황색으로 표시된 생산성(면적당 생산량)은 2000년대 초반을 정점으로 계속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생산 기반, 즉 수확 면적과 생산성의 성장이 정체되고, 불안한 상태였기 때문에 기후 변화라는 외부 요인이 들이닥쳤을 때 더욱 맥없이 공급이 줄어든 것입니다.


코트디부아르의 생산성 감소 문제의 원인에는 코코아나무의 노후화가 있습니다. 코코아나무는 기름야자나무처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생산성이 낮아지기 때문에 베어내고 새로 심는 재식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가난한 농민들 당장의 생계를 위해, 노후화되어 생산성이 낮아진 나무를 베어내고 새로운 나무를 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를 베어내고 새 나무를 심은 후 열매가 날 때까지의 기간 동안 수입이 없어질 텐데, 이 기간을 버티질 못 하는 것이죠. 이 부분은 팜유도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가뭄, 홍수 같은 기상 이변은 대부분 단기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단기적인 영향이 공급 부족의 원인이었다면, 올해 가격이 폭등하더라도 내년에 날씨만 정상화되면 가격이 다시 정상화되겠지만, 나무의 노후화와 같은 생산 기반의 구조적인 문제는 내년에도 계속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앞으로도 공급 부족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는 높은 코코아 가격의 고착화, 즉 뉴 노멀을 형성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카카오 Bean (출처: Florida Fruit Geek)




미래에 식량 위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부족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식량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작물은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름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팜유나 코코아처럼 공급이 일반 작물보다 더 비탄력적인 경우, 두 번째로 생산 지역이 편중돼 있어서 한 지역이 타격을 받으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당 작물의 생산 기반의 성장이 정체된 작물의 경우 외부 충격에 따라 전 세계적인 식량 위기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 외부 충격이 기후 변화이든, 장기적인 인구 증가이든 말이죠.


이런 세 가지 특성을 가진 식량은 앞으로 늘어나는 인구와 소득 수준에 발맞춰 공급량을 늘리기 어려울 것이고, 외부 요인에 따라 가격이 큰 폭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으로 어떤 식량이 부족해지고 어떤 식량의 가격이 급등할지 궁금하다면, 그 식량이 위의 세 가지 기준을 얼마나 만족하는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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