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날 Jun 21. 2024

오늘도 팜유를 쓰는 이유

압도적인 생산성

우리나라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팜유를 구매한 경험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팜유는 보통 가정용보다는 공장에서 라면, 과자를 만드는 데 더 많이 쓰이기 때문이죠.


마트에 가보면 콩기름도 있고 올리브유, 해바라기씨유, 카놀라유 등등 식용유 종류도 많은데요. 그러면 2022년처럼 인도네시아 팜유 수출을 막으면 팜유 말고 다른 기름을 사용하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어려운 이유는 팜유는 생활 물가를 잡아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위 그래프는 미국 농무부(USDA)에서 집계한 세계 주요 식물성 유지 생산량을 보여줍니다. 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 이전 전 세계 주요 식물성 유지 생산량에서 팜유와 팜핵유(모두 같은 열매에서 나오는 기름)가 차지하는 비중은 30%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폭발적인 증가세에 힘입어 현재는 약 4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96/97은 시즌을 나타냅니다. 나라마다, 품목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1996년 10월 ~ 1997년 9월입니다.)


자료를 보면 전체 주요 식물성 유지 생산량은 96/97 시즌 73.7백만 톤에서 22/23 시즌 218.35백만 톤으로 196%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팜유와 팜핵유는 무려 337% 증가했습니다. 인구가 늘어나고, 경제 발전으로 생활 수준이 개선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식물성 유지 수요의 많은 부분을 팜유가 채워준 것입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팜유의 압도적인 생산성에 있습니다. 팜유는 1헥타르(100m × 100m) 당 일반적으로 3톤 정도의 기름을 생산해 내는 반면, 대두유, 유채씨유, 해바라기씨유와 같은 다른 식물성유지는 보통 1헥타르당 1톤 미만의 기름 밖에 생산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성 유지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팜유를 대체하기 위해 다른 작물을 심으면 훨씬 더 많은 땅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이는 팜유가 다른 식물성 유지에 비해 저렴한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더 작은 면적에서 더 많은 식용유를 만들어내는 팜유의 이러한 특성은, 지구를 최대한 덜 개발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시킵니다. 이 점은 팜유가 환경을 파괴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논리이기도 합니다.




팜유 다음으로 생산이 많이 되는 식물성 유지인 대두유는, 팜유보다 낮은 생산성 외에도 무작정 생산을 늘리기 어려운 사정이 있습니다. 대두는 브라질, 미국, 아르헨티나 등에서 주로 생산되는데, 상당 물량이 중국으로 수출됩니다. 이렇게 대두를 수입한 중국은 이를 처리(Crush)하여, ‘대두유(Soybean oil)’와 ‘대두박(Soybean meal)’을 만듭니다. 대두박은 대두에서 대두유를 짜낸 후 남은 산물인데, 축산 사료로 많이 쓰입니다. 대두 1위 수입국인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대두를 처리(Crush)하는 국가입니다. 즉, 중국은 대두유와 대두박의 1위 생산국입니다.


대두의 최대 생산국인 브라질, 미국, 아르헨티나가 아닌, 중국에서 대두가 가장 많이 처리(Crush)되어 대두유와 대두박 생산이 가장 많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중국 내수의 어마어마한 육류 수요에 따 사료 수요가 높기 때문입니다. OECD 보고서(OECD-FAO Agricultural Outlook 2023-2032)에 따르면, 중국의 2020~22년 평균 돼지고기 소비량은 52백만 톤으로, 같은 시기 전 세계 소비량인 117백만 톤에 거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중국 인구가 많다고 해도 전 세계 인구의 약 18% 수준에 불과니, 1인당 소비량으로 봐도 굉장히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19년 미중 무역전쟁이 발생했을 때, 중국이 미국산 대두 수입을 줄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중국이 미국을 미워해서 미국산 대두 수입을 줄인 것도 있었겠지만, 더 큰 이유는 당시 중국에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돌아 중국의 돼지들이 폐사하면서 대두, 즉 축산 사료인 대두박의 원료가 별로 필요하지 않아 졌던 것입니다.


돼지고기 이야기에서 다시 돌아와, 대두유는 대두박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일종의 부산물입니다. 대두 1kg을 처리했을 때 대두박은 약 0.8kg, 대두유는 약 0.2kg이 나옵니다. 대두 농가들은 대두 생산을 늘리거나 줄이는 의사결절을 할 때 당연히 경제적인 이득을 따지게 되는데요.


식물성 유지가 부족해져서 대두유 가격이 오른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대두유 가격이 올라, 대두유 생산을 늘리기 위해 농가에서 대두 생산을 급격하게 늘리게 되면, 대두유 생산이 늘겠지만 대두박의 생산도 덩달아 늘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대두박의 공급 과잉이 일어나고, 이는 대두의 주산물인 대두박 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즉, 부산물인 대두유를 만들려다가 주산물인 대두박 가격의 하락을 가져올 우려가 있기 때문에 대두 생산을 늘리기는 쉽지 않은 것입니다.


이 외에도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대두, 유채, 해바라기는 한번 경작을 하면 보통 다음 해에는 다른 작물을 심고 나서 다시 경작해야 하는 특성(윤작, Crop Rotation)이 있습니다. 이러한 작물들은 한 번 심고 난 다음에는 같은 땅에 옥수수나 곡물류를 심어줘야 높은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년에 식물성 유지의 공급 부족이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지금 농가가 옥수수를 심어야 하는 타이밍이라면 대두나 유채, 해바라기를 심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즉, 대두나 유채, 해바라기는 생산량을 매년 마음대로 늘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대두유, 유채씨유, 해바라기씨유 모두 생산을 폭발적으로 늘리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팜유는 앞서 이야기했듯 압도적인 생산성을 가지고 있고, 팜열매의 주산물 기름인 팜유입니다. 또한 매년 파종과 수확을 하는 작물이 아닌, 기름야자(Oil Palm) 나무에서 열매를 맺으며 한 번 심으면 2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연중 내내 생산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인구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고,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사람들은 더 많은 식물성 유지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식용유를 사용한 기호식품을 더 많이 먹게 될 수도 있고, 굳이 식용이 아니더라도, 샴푸, 화장품 등등 수많은 용도의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바이오 디젤과 같은 새로운 수요도 생겨났죠.


앞서 미국 농무부(USDA) 자료를 통해, 지금까지는 팜유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오며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켜 온 것을 보았습니다. 팜유의 존재가 없었다면, 우리는 대두유, 유채씨유, 해바라기씨유와 같은 식물성 유지들로 늘어나는 수요를 계속 충족시켜야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팜유보다 낮은 생산성으로 인해 원하는 만큼 수요가 충족되지 않았을 것이고, 만성적인 식물성 유지 부족에 시달리면서 지금보다 훨씬 높은 식용유, 라면, 과자, 샴푸, 화장품 가격을 마주하고 있었겠죠. 팜유가 생활 물가를 잡아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도 우리가 팜유를 쓰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제 팜유 주요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농장을 개발할 수 있는 면적이 거의 대부분 개발된 상황입니다. 예전보다 더 강화된 환경 규제 역시 추가적으로 농장을 개발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는 소위 ‘빈 땅’에 기름야자나무를 심어가며 전 세계 식물성 유지의 수요를 충족시켜 왔지만, 앞으로의 수요 증가에도 팜유가 해결사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비단 팜유뿐 아니라 전반적인 식물성 유지 시장에 대한 질문, 더 나아가 인플레이션, 식량안보, 바이오 에너지에 대한 질문이 될 것입니다.


팜(기름야자) 농장 전경 (본인 촬영)


이전 01화 [프롤로그] 가장 만만했던 식용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