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현장으로...
사직서를 확인한 본사 박 이사는 곧장 내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의 시작은 쌍욕으로 시작했고, 흥분을 가라앉힌 박 이사는 내 상황과 현장 상황을 확인한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쌍욕을 퍼붓곤 전화를 끊었다. 변태 같은 말이지만, 쌍욕 속에 애정이 담긴 걸 느꼈다. 박 이사 성격에 쌍욕을 했다는 건 자신이 책임을 진다는 뜻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규모 현장인 A현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A 현장에는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지만, 누군가에게 피해가 될 수 있음에 말을 아껴야 함이다. 가장 많은 생각을 한 곳에서 가장 간단하게 글을 써야 하는 모순을 이겨내고 짧게 적는다.
A 현장은 작은 공단을 만드는 수준의 대규모 현장이었다. 몇 개의 대기업 건설사와 우리 같은 중소 건설사 수십 개 그리고 수백 개의 소규모 회사들이 모여들었다.
현장이 크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알짜배기 공사는 한국에서 시찰을 나왔을 때, 구두로 협의가 진행됐다. 처음에 끼어들지 못한 회사는 잔잔한 잔잔바리 업무만 받아야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꽤나 규모가 있던 우리에겐 그리 매력적인 현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하늘길이 막혀 사전에 계약된 공사들이 지연됐다. 그래서 잔잔바리 작업이라도 많이 받아 현장을 꾸렸다. 현지인들만 있어도 굴러갈 수 있는 현장이었다. 다만, 한국인 한 두 명이 있으면, 후속공정에 도움이 될 수 있기에 소장님 한분과 내가 투입됐다.
소장님은 일감을 따오고, 나는 현장관리를 해야 하는데, 작업들이 너무나 간단하다. 인원확인과 작업진척확인하고, 선제공정 진행 상황만 확인하는 간단한 일뿐이다. 현장관리라 하기도 민망했다. 마치 어릴 적 골목에서 동네 형들과 축구할 때 깍두기로 껴서 아무것도 모르고 골목을 뛰어다니던 느낌이다. 어릴 땐 그게 고마웠지만, 커서 직장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니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할 게 없으니 현장을 걷고 또 걷는다. 가끔가다 게임 속 이벤트처럼 A현장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지만, 한국인이 비싼 월급 받아가며 할 일은 없다는 뜻이다.
돈값 못하고 현장에서 빈 둥 거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문자를 받았다.
작년 연말에 한 다리 건너 문자로만 연락을 주고받았었던, 자카르타에서 일하는 안면 없는 학교 선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