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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샤에 얽혀있는 추억

by John 강

시샤(물담배)에 얽혀있는 추억



20대 초반, 공장에서 야간근무를 할 때 일이다. 난 반쯤 정규직 노동자였고, 누나는 일용직으로 우연히 공장에 첫발을 디뎠다. 밤 11시가 넘어가면 공장에 아무도 없었다. 조용한 공장. 웅하며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넓은 공장에 메아리친다. 저 멀리서 에어 프레셔가 쿵쿵 거리는 소리가 조용히 들린다.


소음에 가까운 소리였지만, 누나가 피는 담배 연기와 섞이니 레게 비트에 잼배를 두드리는 리듬이 연상된다. 자유롭게 흩날리는 담배 연기가 무대에서 춤을 추는 백댄서로 변하고, 누나는 무대를 휘젓는 무희로 변했다. 기계가 돌아가는 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 눈에는 오직 누나의 입술과 입술에 닿는 담배만 보였다.


그 전까진 흡연자를 극도로 싫어했지만, 누나 덕분에 담배 피우는 여자가 섹시해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래서 누나를 만날 때마다 담배를 한 갑씩 선물해 줬었는데, 순정적인 사랑을 하는 내게 누나는 말했다. ’나 폐암으로 죽은 꼴 보고 싶은 거니?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 누나와 잘 안됐다. 나도 여자를 좋아하는데, 그 누나도 하필이면 여자를 좋아해서 연인이 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뒤로 한동안 담배 피우는 여자에 대한 다른 선입견이 생겼다. 왠지 담배 피우는 여자는 여자를 좋아 할 것만 같았다.


시간이 많이 지나며 새로운 여자를 알게 됐다. 투박한 이목구비에, 살찐 게 부끄러운지 바지만 입고 다니는 여자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외적인 매력이 그리 두드러지지 않지만, 내 눈에는 아름답게 보였다. 그리고, 담배 피우는 모습에서, 그 옛날 그 누나에게 느꼈던 충격에 가까운 매력을 다시 느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사랑이란 감정은 모르겠고, 담배 피우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내뿜어진 연기에 은은히 보이는 그녀의 실루엣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꼬드겨 몇몇 사람들 그리고 그녀와 시샤바를 갔다.


담배를 한 갑 사주면 한 개비 정도 피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시샤바를 가면 한 두 시간 정도 정면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점, 난 비흡연자다.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기 위해 시샤바에서 처음 흡연을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 여자와 잘 안됐다. 내가 부족했다.


그때부터였을까? 가끔 지치고 힘들 때 시샤를 피고 싶다. 그러니, 가게도 망했고 여행도 왔는데 시샤가 끌리는 건 당연한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하필이면 호텔 바로 앞에 작은 시샤바 하나가 있다. 슬쩍 들어가 보니 큰 테이블이 두개, 작은 테이블이 두개 있었다. 큰테이블 한 곳은 러시안 커플이 시샤를 하고 있었다.


작은 테이블에 앉아 있으려 하니, 사장님이 큰 테이블에 앉으라 권하신다. 아, 이곳도 장사가 안되는 집인것 같다. 장사가 잘되는 집이면, 한가할 때에도 큰 테이블은 비워둬야하는 법인데. 사장님의 배려를 받아들여 큰 테이블에 앉았다.


시샤가 준비되는 동안 몇명이 앉는 테이블인지 손가락으로 세어본다. 젠장 마음이 아린다, 총 8인용 테이블 이였으며 옆에 티비와 PS4 까지 있다. 장사가 안되는 집이다. 동변상련의 고통이 느껴진다. 아 이러지 말자. 난 가게를 접었단 말이다.


혼자서 속으로 1인 독백극을 하는 동안, 시샤가 나왔다. 시샤 연기를 폐 깊숙이 빨아들인다. 깊숙이 들이키는 연기에는 온갖 잡생각이 붙어서 딸려 들어온다. 그 덕분인가, 후~ 하고 내뿜는 연기엔 한숨이 섞여있다. 하지만, 시샤를 오래하진 못했다.


20231124_204431.jpg 보통 2~3명이 피우는 물담배.


거의 1년 반만에 시샤를 하니. 속이 매스껍고 머리가 깨질것만 같다. 이래서 내가 답배를 안피운다. 몇 모금 하지도 못한 시샤를 남겨둔채 가게를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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