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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떠나는 비행기를 예약했습니다. - 나트랑

관광지. 그리고 관광지보다 아름다운 관광지 뒤편.

by John 강

관광지. 그리고 관광지보다 아름다운 관광지 뒤편.


태국에 있는 매홍손 시장, 매년 수 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유명한 관광지다. 기찻길을 중심으로 좌우로 길게 늘어선 시장, 매시간 관광객을 가득 태운 기차가 시장을 가로지른다.


시장이 제 기능을 하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장 보러 온 사람들보다 사진 찍으러 온 관광객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고작 기찻길 옆에 시장이 있을 뿐인데 사람들이 왜 저걸 보러 갈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트랑에서 기찻길 옆을 걸으며 깨달았다. 기찻길은 생각보다 아름답다.


나트랑 대표 관광지인 롱선사, 거대한 불상이 유명하다. 롱선사 앞에 도착하자마자 대형버스가 길게 늘어서 있는 장면이 가관이다. 대체 얼마나 좋으면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 걸까? 기대감이 올라간다. 약간의 두근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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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선사 입구부터 멋들어진 조형물이 많이 보인다. 구석구석 살피며 낮은 구릉을 올라가는데, 오래된 불상도 있고, 관리가 안 된 불상도 보인다. 그렇게 입구에서 이어진 길의 끝까지 올라가면 롱선사가 자랑하는 거대 불상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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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불상 밑에는 스님들 초상이 조각돼있다. 조각들을 살피며 불상을 한 바퀴 도는데, 불상 뒤쪽에 어두운 입구가 있다. 호기심이 일어 입구 안으로 들어선다. 안에는 작은 법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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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벽에는 베트남에 역대 유명했던 스님들의 조각이 벽에 새겨져 있다. 주름살 하나까지 표현된 조각은 마치 살아있는 듯 생동감 넘치고 화려했다. 스님 조각이 화려하다니. 아!, 그 순간 이곳에서 절에서 느껴져야 할 고요한 느낌이 들지 않고 관광지란 생각이 든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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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부처님이 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제자들과 세상을 떠돌던 중, 제자가 깨달음을 통해 얻은 기이한 능력으로 사람들을 모아온 적이 있다. 그때 부처님은 저들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기예를 얻기 위해 온 자들이라며 돌려보냈다. 롱선사가 그랬다.


마치 살아있는 듯한 섬세한 조각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그뿐이다. 그 안에서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 기대가 높았나 보다. 아쉽다.


실망스러운 롱선사를 뒤로하고 시내로 걸어간다. 베트남의 골목길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일부러 큰길이 아닌 좁은 골목길로 들어선다. 골목길로 들어서서 잠시 걷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주택가 사이를 가로지르는 기찻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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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버려진 기찻길이라 하고, 누구는 기차가 한 번씩 지나다닌다고 하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다. 오래되어 낡은 기찻길 옆으로는 질서 없이 풀이 자라나 있다. 그리고, 그 풀 사이 사이에 숨어서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송이가 존재감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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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뻗어있는 기찻길은 사람을 홀리는 묘한 재주가 있다. 사람이 사는 주택을 가로지르는 기찻길, 기찻길 주변에 마을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기찻길 덕분에 마을이 생긴 것인지는 몰라도 넋 놓고 기찻길을 바라보게 만든다. 기찻길은 생각보다 많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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