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9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인도네시아 해외취업 처음과 끝.

해외 취업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서.

by John 강 Jun 15. 2024

0. 간단한 자기소개.     


 군대를 다녀와서 대학교를 입학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였고, 공부에도 취미가 없었기에 강의실보다는 피시방과 술집에 출석체크를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하나의 로망이 있었다. 해외 취업을 하고 싶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고등학교 수능 영어 원점수 12점, 8등급을 받은 것에 대한 보복심리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긴 했다. 


 대학교를 졸업하려면 졸업논문을 쓰던가, 아니면 토익성적으로 졸업논문을 대체해야 했다. 강의를 들은 적이 없는데 논문을 쓸 지식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무작정 토익학원에 다녔다. 초급반, 기초반, 중급반까지만 다니고 고급반에 들어가기 전 토익을 포기했다. 


  RC(읽기)는 성적이 거의 최상위권. 그러니까 보통 900점대 후반을 받는 사람만큼 나오는데, LC(듣기)가 항상 300점대였다. 토익을 쳐본 사람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할 것이고, 토익을 아직 접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비슷한 예를 들자면, 소주를 마시면 몇 병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데, 맥주를 마시면 500cc 한 잔만 마셔도 취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술을 해독하는 간은 튼튼한데 맥주란 주종이 안 맞는 거다. 토익에 나오는 단어들을 거의 다 외웠는데, 영어를 들을 귀가 좋지 못하다.  


 토익 시험을 10번 가까이 봐서 RC 475점, LC 325점 총합 800점을 받았다. 다행히 졸업 논문 대체 점수에 턱걸이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는 미련없이 접었다.


 토익 점수 800점. 물류 관리사 자격증. 학점 3.6. 애매한 스펙으로 취업 시장에 나섰다. 물류 관련 대기업에 이력서를 썼는데, 아쉽게도 모두 떨어졌다. 그때, 말레이시아에서  일하던 학교 동기에게 연락이 왔다.     


“오빠 말레이시아에서 일해볼래?” 

    

 말레이시아에 있는 한국식품 유통회사 창고관리직이 공석이었다. 월급은 당시 한국 돈으로 150만 원 정도였다. 최저시급에 약간 미치지 않는 금액이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해외에 취업하는 게 어디인가.


 언어가 조금 걱정이긴 했다. 하지만 동기 말로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영어를 잘 하기에 영어만 할 줄 알면 의사소통의 문제는 없다고 한다. 영어도 못한다고 하니 자신감을 가지란 동기의 말을 듣고 이력서를 썼다. 동기가 잘 말해준 덕분일까? 그쪽 회사에서도 나를 좋게 봐주셔서 수월하게 취업할 수 있었다.


 6개월간 일했다. 일을 그만둔 이유는 그때에는 개인 사정이라 둘러댔지만, 사실 이유는 따로 있다. 내용을 짧게 적으면 오해가 생기고 다 적으면 너무 길어져나 나중에 따로 이야기할 생각이다.

  

 그리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대기업 면접 몇 번 떨어지고 중소기업에 취업했으며, 일 년 8개월 정도 일하고 그만뒀다. 퇴사 후  잠시 휴식을 갖고 자격증 준비를 하다 우연히 부산시 해외 취업 프로그램을 접한 후 지원했다.


 지원 가능 국가는 일본,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이렇게 네 군데였다. 말레이시아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기에 말레이시아와 같은 언어권이라는 인도네시아에 지원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취업은 성공했고. 이직도 했고, 퇴사하고 한국에 들어올 때, 대기업 무역상사에서 이직 제의도 받았었다. 나름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