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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행 슬리핑 버스 후기.

by John 강

호치민행 슬리핑 버스 후기.


훈련소 구막사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비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누워서 ‘이건 다 꿈일 거야 눈뜨면 집이겠지’ 하며 잠을 청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호치민 가는 슬리핑 버스에서 오랜만에 그때 그 비좁았던 공간이 떠올랐다.

20231127_075231.jpg 좌석이 양쪽 창가와 가운데 총 3줄이었다.


유튜브에서 봤던 슬리핑 버스는 굉장히 넓고 쾌적했다. 하지만, 버스에 오른 순간 뭔가 잘못된 걸 깨달았다. 내가 유튜브로 봤던 슬리핑 버스는 22인승이고, 내가 지금 탄 버스는 44인승이다. 닭장에 갇힌 닭처럼 좁은 침대에 갇혔다.


의자를 살짝 세워 책을 읽으려 하는데, 조절기가 망가졌는지 의자가 올라오지 않는다. 내 자리가 이상한 건가 싶어 옆좌석을 보니 등받이를 조절해 편하게 앉는다. 의자에 문제가 있다.


의자가 망가졌다는 말을 운전기사에 말할까 고민해 봤지만, 뭐 이 정도야 하며 그냥 앉아서 가기로 했다. 최악의 판단이었다.


20231127_132339.jpg 어깨가 꽉 차는 좌석, 그리고 짐칸에 못 실은 노트북가방.


약간 기울어진 좌석 때문에 몸이 조금씩 앞으로 미끄러진다. 잠을 잘 수도 없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핸드폰 신호가 잘 터지느냐다. 안 터진다! 10분당 1번씩 신호가 꺼진다. 핸드폰을 가방에 넣는다. 총체적 난국이다.


버스 자리는 불편하고 할 수 있는 게 없다. 고개를 돌리고 창밖 풍경이나 바라본다. 도심을 벗어날수록 낮은 건물이 보이고, 나무도 보이고, 산도 보인다. 멍하니 밖에만 바라본다. 잡생각이 든다.


사실 가게가 망했다는 건 거짓말이다. 가게가 어려웠던 건 맞아도 투자한 돈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월에 백만 원 정도는 수익이 남았다. 멀리서도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점점 늘어나 나름 성장세를 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가게가 정리한 이유가 있다.


길게 이야기하면 나도 스트레스고 읽는 사람도 스트레스이기에 짧게 요약해서 적겠다.


일단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내가 가게를 시작한 지 한 달 후, 같은 건물, 코너 반대편에 동일 사이즈의 점포를 내가 임차한 가격보다 월세 5만 원 싸게 들어온 임차인이 있었다. 기분은 나빴지만, 그래도 세주는 건 건물주 마음이니깐 참고 넘겼다. 하지만 동일업종이었다. 건물주와 싸웠지만, 답은 없었다.


그리고 건물주가 건물을 방치했다. 외부 전선이 터져 전기가 나갔다. 내부는 내가 해결해야 하지만, 외부전력이 건물에 들어오는 부분은 건물주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함께 갈 수 있는 건물주가 아니라 판단했다. 그리고 그런 건물주에게 월세를 주는 게 싫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넘기고 가게를 접은 것이다.


여행 내내 머릿속에는 건물주에 대한 분노가 남아 있었고, 앞으로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거리가 남아 있었다.


한 시간 넘게 멍하니 밖을 바라보니 머리가 텅 비었다. 분노도, 걱정도 없다. 머리가 텅 비니 어느덧 잠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잠을 깰 수밖에 없었다. 살짝 기울어진 의자 때문에 몸이 계속 아래로 쏠렸다.


잠을 잘 수도, 책을 읽을 수도, 핸드폰을 볼 수도 없다. 낭만은 무슨, 마치 서서 잠들어야 빽빽한 남미 교도소의 좀 좋은 버전이다. 그때 버스가 멈춘다. 아마 휴게소에 도착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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