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납시다.
망한 식당을 처분하고 멍하니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침에 눈 뜨는 게 싫다. 그렇다고 계속 누워있을 수도 없다. 눈을 감고 누워있으면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다니기 때문이다. 3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퇴사, 사업, 폐업, 파혼, 식당, 폐업 이란 굵직한 경력을 쌓았다. 뜨겁게 불타오르던 심장은 차갑게 식은 지 오래다.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머릿속에서 밀어내고자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는다. 게임이라도 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만, 노트북도 구형, 핸드폰도 구형이라 할 수 있는 게임이 없다. 그저 유튜브에서 어릴 때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나 예능을 찾아보며 시간을 때운다. 과거의 프로그램을 보며 과거를 추억하는 거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니, 할 힘이 없다. 무기력이 내 몸을 지배한다.
그러던 어느 날 변화 바람은 날 찾아왔다.
"형 그렇게 살다가 형 죽을까 봐 겁난다. 같이 여행이라도 가자. 형 여행 좋아했잖아."
친한 동생이 찾아와 밥을 사주며 내게 여행을 권한다.
"내가 여행 갈 돈이 어디 있어서."
"형 예전에 주식에 돈 좀 있다 하지 않았어? 그거 팔았단 말은 못 들었는데?"
"아…."
잊고 있었다. 예전에 잘 나가던 직장인일 때 주변에서 주식 안 하면 바보란 소리를 듣고 멋모르고 사놓고 까먹었다. 이게 이제야 기억이 나다니. 부랴부랴 앱을 다운 받으려 하는데, 거래했던 회사가 A 투자 증권이었는지, B 투자 증권이었는지 헷갈린다. 핸드폰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어디지 어디였지를 내뱉으며 멀뚱멀뚱 거리자 동생이 한심하다는 듯 말한다.
"형, 예전에 다닌 회사에서 가까웠던 증권사가 어디야?"
동생의 말을 들으니 불현듯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계좌를 만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A도 B도 아닌 C 증권사였다. 앱을 깔고 공인인증서를 만드는 사이, 당시에 어떤 주식을 샀었는지 생각해 본다. 뭘 사뒀더라. 설마 휴짓조각 된 거 아니겠지. 그때 연습 삼아 사본다고 주식을 100만 원어치 샀는데, 뭘 샀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런데 계좌를 확인하자 헛웃음이 나온다.
"허허…."
"왜 형? 휴짓조각 됐어?"
"아니, 돈은 벌었는데 어이가 없어서. 쇼핑몰 한다고 1,000만 원 날리고, 타코야끼 구우면서 2년 동안 5,000만 원을 날렸는데, 잊고 있던 주식이 5년 만에 100만 원에서 250만 원이 됐으면, 그동안 난 뭘 하고 산 걸까?"
허무하다. 가맹비에 인테리어 비용에 교육비까지, 창업하는데 약 5,000만 원이 들었다. 하루 12시간씩, 심지어 휴일도 없이 일해도 월세부터 아르바이트생 월급까지 이것저것 다 떼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매일 열심히 일했는데 번 돈이 없다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나는 우습지도 못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방치하다 못해 기억에서 까마득히 지워진 주식은 혼자서 몸집을 키웠다. 지난 2년간 허무하게 날린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과 너무나 비교가 된다. 입은 마르다 못해 모래를 씹은 듯 텁텁하기까지 하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생은 해맑다.
"오 대박! 여행 가면 되겠네."
여행이라, 사실 아주 여유가 없는 건 아니다. 가게를 정리하고 돌려받은 가게 보증금 1500만 원이 통장에 잠들어 있다. 하지만, 나이는 들었고 할 줄 아는 건 타코야끼 굽는 거라 정 안 되면 타코야끼 트럭이라도 할 요량으로 빼놓은 돈이다. 그리고 1,500만 원 말고도 예전에 직장 생활하며 모아놓은 돈이 서너 달 생활비 정도는 된다. 그러니 공돈 같은 250만 원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그리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 돈이면 몇 달 치 생활비인데."
"그전에 형이 뭐 어떻게 될 것 같아서 그래."
"나야 시간이 남는다 치고, 너 회사는? 나 때문에 무리해서 가지 마."
"직원이 3명이라도 그래도 명색이 사장인데 며칠 자리 못 비울까? 어차피 곧 추석이라 택배 마감해서 일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다. 가자."
"그래도 여행은 좀…."
"아 쫌! 가자면 가자! 거울 좀 봐 형 얼굴에 살기 싫다고 쓰여 있다니까?"
맞는 말이다. 겉으론 멍하니 노트북 영상을 보며 과거를 추억하는 척 앉아 있지만, 속으로는 죽음을 부르는 봉화를 피우고 있었다. 좌절과 슬픔이란 핑계로 내 영혼에 불을 지르고 행복과 희망을 장작 삼아 불길을 키운다. 멀리서도 잘 보일 수 있도록 장작을 계속 집어넣는다. 과거의 행복과 미래의 희망을 활활 태운다. 행복과 미래 근처에 있던 감정이란 녀석도 불길에 영향을 받는지, 점점 메말라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난 웃음을 잃었다. 웃는 얼굴이 참 잘 어울렸던 아이는 삶에 지치다 못해 삶이 싫어진 중년으로 변해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피워낸 불은 죽음의 신 데스 대신 친한 동생을 불러왔다. 녀석은 나를 보며 여행을 가자 한다. 희망과 행복을 태우고 있기에 내가 여행을 갈 이유는 없다. 하지만 녀석의 눈빛에 섞여 있는 간절함이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자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과거에 행복이라 불렸던, 장작이 소리친다. '널 사랑하는 부모님을 생각해!' 맞다. 동생의 눈빛에 섞여 있는 간절함은 요즘에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눈빛과 닮아있다. 살아가야 할 이유가 적어도 하나는 떠올랐다. 부모님.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장사를 하겠다는 아들을 묵묵히 믿어주셨다. 내 인생에 많은 걸 투자하신, 내 인생의 최대 채권자가 아직 원금 회수를 시작도 안 했는데, 무기력하게 파산을 말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동생의 말처럼 여행을 다녀오자. 그럼 새로 살아갈 힘이 생기든, 아니면 끝없는 좌절에 나를 빠트리던 둘 중 하나의 결로론이 나오겠지.
"그래 가자. 그런데 어디로 가게?"
"방콕."
"방콕?"
방콕이란 두 글자를 들으니, 문득 과거에 충격적이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3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기 전.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떠났다. 부산에서 치앙마이로 가는 직항이 없어 방콕에 잠시 들려 버스로 갈아타고 갔어야 했다. 아마 자정쯤 도착해서 다음날 저녁 버스를 타고 치앙마이로 떠났던 걸로 기억한다.
방콕에서 머문 숙소는 아속역 근처에 있는 한인타운 뒤편의 3만 원짜리 저렴한 호텔이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새벽 1시. 비행기에서 눈을 좀 붙였기에 잠은 오지 않았다.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있으려니 심심했다. 그때 눈치 빠른 배가 꼬르륵 소리를 내며 밥이나 먹으러 나가자 한다.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한인타운 속 수많은 식당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 환하다 못해 빛나는 간판불을 켜뒀다. 만약 오늘이 여행 첫날이 아닌 한식이 그리운 날이었다면, 곧장 저리로 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행첫날 첫 식사를 한식으로 하는 건 아니란 생각에 편의점으로 향한다. 그런데 편의점 길 건너편에 노상 국숫집이 보인다. 사람들도 꽤나 북적이는 게 맛집처럼 보인다. 아무렴 편의점 음식보다야 따뜻한 국물이 좋겠지. 다행히 주머니에는 택시비로 쓰고 남은 바트가 들어있다.
육교를 하나 건넜을 뿐인데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어두워야 할 밤거리가 호텔과 식당의 조명들과 가로등으로 인해 너무나 밝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낮보다 밤이 더 밝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었다. 쭈뼛거리며 국숫집 빈테이블에 앉는다. 주변을 계속 둘러보며 서빙하는 아저씨가 다가온다. 아마도 주문받으러 온 것 같은데, 메뉴판도 없이 멀뚱히 서있다. 아마도 여기는 메뉴가 한 가지 인 듯 싶었다. 대박 맛집의 기운이 느껴진다. 옆테이블을 가리키며 That(저것)을 외친다. 아저씨는 이해했다는 듯 오케이 외친 후, 주방에 있는 아주머니께 소리를 질러 주문을 전달한다. 대체 내가 뭘 주문한 건가 싶어 옆 테이블을 살피는데, 다행히도 베트남 쌀국수와 비슷하게 생겼다. 그런데 국물색이 좀 검은 것 같다. 왜지? 하는 의문을 갖고 유심히 바라보려 할 때 국수가 나왔다. 주문한 지 2분이 안 되는 시간에 국수가 나온 것이다. 이것이 태국의 패스트푸드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웃음이 나왔다.
국수가 맛있을지, 혹시나 먹고 탈 나진 않을까 하는 걱정과 우려 속에 조심스레 첫 숟가락을 뜬다. 소심하게도 면이 아닌 국물만 살짝 맛을 본다. 혀끝에 살짝 닿은 국물에서 돼지고기 육수 특유의 깊고 진한 맛, 향긋한 간장, 마지막으로 감칠맛을 폭발시켜 주는 액젓의 맛이 느껴진다. 너무 맛있다. 지난 6시간의 비행의 고난을 잊게 해주는 맛이다. 기분 좋게 국물을 크게 한술 더 뜨는데, 그 속에 잘게 썰린 풀떼기가 들어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입에 넣었는데 풀떼기가 혀에 닿자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친다. 입에서 어디선가 맡아본 세제 냄새가 올라온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고수의 향기인가 싶었다. 펀치를 맞은 권투선수처럼 고개를 좌우로 털며 국수에서 작은 풀떼기를 골라냈다. 한참을 집중해서 골라내고 있는데 주변의 시선이 느껴진다. 고개를 살짝 드니 서빙하는 아저씨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편식하는 걸 걸린 것 같아 살짝 민망해졌다.
머쓱하게 고개를 들어 아무렇지 않은 듯 목을 돌리며 스트레칭하는 척을 한다. 그런데 국숫집 바로 옆에 엄청나게 아름다운 여자를 발견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도 또 다른 여자들이 보였다.
수많은 여자들이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지나가는 남자들을 향해 손짓하고 인사를 건넨다. 남자들은 정육점에서 소고기의 마블링을 확인하는 것처럼 여자들을 뚫어지게 살펴본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남자들은 손짓 발짓을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개중에 중 몇몇 여자와 남자는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났다.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다.
눈은 사람들을 구경하고 손과 입을 쉴 새 없이 국수를 먹는다. 중간중간 미처 골라내지 못한 고수가 씹히기도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고수 따위가 아니다. 호기심으로 홀린 듯 사람들을 바라보며 식사를 하고 있던 내게 처음 봤던 아름다운 여자가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여기 처음 왔어요?"
"예."
"여기 사람들 뭐 하는 여자들인 줄 알아요?"
"모르겠는데요?"
"손님을 찾고 있는 여자들이에요."
"이 시간에 손님을요?"
"이 시간에 필요한 일을 하는 여자들이니까요. 그리고 저도 손님이 필요하고요."
은유적인 표현이었지만, 여자의 말은 상황을 굉장히 적나라하게 알려줬다. 길거리에 서 있는 여자는 손님을 찾고, 남자는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돈을 주고 여자를 품는다. 이제야 저 상황이 이해가 된다. 내가 너무 순수하게 세상을 살아와서 저런 관계를 몰랐던 게 아니다. 밝은 빛 아래 너무나 당당한 여자와 남자의 모습에 저들과 불법적인 거래를 연결 짓지 못했을 뿐이다. 저들의 관계를 알게 되자 이상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쪽 얼마예요?"
가격이 궁금해졌다.
"음, 오빠는 젊고 잘생겼으니깐 특별히 싸게 3,000밧(약 12만 원)에 해줄게."
"음 그렇군요, 죄송해요. 제가 지금 방금 태국에 도착해서 환전을 못 해 그리 큰돈이 없네요."
"괜찮아요, 생각 있으면 내일 찾아와요. "
돈이 없다는 변명을 하자 여자는 쿨하게 자리를 떠났다. 여자는 자신의 자리에 돌아가 무리에게 내가 돈이 없다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듯했다. 방금까지 웃으며 나를 쳐다보던 여자들은 차갑게 고개를 돌리곤 길거리를 지나가는 남자를 부르기 시작한다.
배도 부르겠다 대충 저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겠다. 국수값 50밧을 계산하고 육교 위에 올라 인도에 줄 서 있는 여자들, 그런 여자들을 품평하고 흥정하는 남자들을 재미있게 관찰했다.
일본, 한국, 중국, 인도, 유럽, 미국 등 전 세계 남자들이 서 있는 여자들에게 말을 건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태국까지 온 그들이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불쌍해 보였다. "저 사람들은 왜 자기네 나라 여자들 내버려 두고 비싼 비행기 표를 끊어서 이곳까지 온 걸까?" 볼품없는 외형이 대답을 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말재주도 없겠지. 육교 위에 서서 저들을 인생의 패배자처럼 내려다보았다. 그 당시의 나는 젊고 당당했었다.
잠깐의 회상에서 벗어나 3년이 지난 현실의 나와 마주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패기도, 자신감도 없다. 그저 남은 반죽이 아까워 매일 밤 야식으로 반죽을 구워 먹으며 뒤룩뒤룩 살쪄버린 아저씨가 남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