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 그리고 승진.
대학생 시절, 일주일에 두 번 오전에는 제7 부두 냉장창고에서 과일을 나르고, 저녁에는 백화점 건강코너에서 물건 나르고 포장하는 일을 했다. 지하 1층에 있는 매장 옆 휴게실에서 대기하다 손님이 물건을 찾으면, 지하 4층에 있는 창고에 뛰어갔다 왔어야 했다. 운이 좋아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보통은 뛰어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두꺼운 양말이 없어 얇은 양말을 신고 출근했어야 했다. 오전에 냉장창고에서 일하는 중에 발바닥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신발을 벗으니 양말에 큰 구멍이 보인다. 이걸 양말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아니면 발목 보호대라 불러야 할지 모를 정도로 큰 구멍이었다.
창고 일이 끝나고 양말을 사야 하는 데 편의점 양말을 너무 비싸고, 주변에 양말을 파는 곳이 없다. 백화점인데 양말을 팔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곧장 백화점으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백화점에서 양말 파는 곳을 찾았다. 하지만 편의점보다 더 비싼 가격에 선뜻 구매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시장에 가면 3켤레에 천원인데, 여기는 제일 싼 게 한 켤레에 8천 원씩 하네.‘
당시 시급이 4천 얼마 하던 시절이니, 백화점 양말의 가치는 내 2시간과 같았다. 까짓것 좀 참자 하는 생각으로 그냥 일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이상하리만큼 손님이 많았다. 지하 4층까지 수십 번을 뛰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여분으로 가져온 티셔츠까지 땀에 절어 악취를 뿜을 때, 일이 끝났다. 발바닥이 쓰라리지만, 신발을 벗고 확인할 기운도 없다. 마지막 기운을 짜내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자 역겨운 비린내가 확 올라왔다. 혹여나 집 안에 있는 다른 사람이 알까 봐 신발 밑창을 챙겨서 곧장 화장실로 들어갔다. 발바닥에는 몇 개의 물집이 더 잡혀있었고, 살갗이 벗겨져 피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고작 몇천 원 때문에 너무나 힘들었던 날이었다. 그런데 현장을 걸을 때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출근할 때 양말을 두 겹으로 껴 신고 출근한다. 전날 밖에 신을 걸 안에 신고, 빨아놓은 양말을 밖에 신는다. 그 날 이후 생긴 습관이다. 하루에 6~7시간 정도를 현장에서 걸으며 보낸다. 작업 지시도 하고 도면을 보며 현장을 확인한다. 그런 나를 본 발주처 부장은 술자리에서 지하철 2호선이냐며 농담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제가 2호선이면 소장님은 설국 열차입니다.'
내가 많이 걷는 이유는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소장님을 닮고 싶어 소장님의 행동을 따라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수많은 오답으로 시작된 내 인도네시아 생활에 하늘이 내려준 정답지 같은 분이시다. 책임감, 자신감, 집중력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으신 분이시다. 소장님은 마치 아버지처럼 존재만으로도 굉장히 의지가 되고 닮고 싶은 분이다. 그래서 나는 그분을 복사했다.
그분처럼 생각하고, 그분처럼 행동했다. 일하는 법도 배웠지만, 업무 외적으로도 많이 배워다. 성격이 급하지만, 일단 참는 법을 배우고. 숙이지 않고 거래하는 법을 배웠다. 한 석 달 정도 같이 지내다 보니, 담배 피우는 것 빼고는 소장님을 그대로 따라 했다. 그러자 본사에서 연락이 왔다.
"강 대리, 다음 달부터 과장 진급하고 현장 하나 맡을 거야."
진급은 좋지만, 현장을 맡는다니, 당혹스럽다. 아직 나는 현장을 책임질 만큼 능력이 없다. 하지만, 막상 내막을 알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가 진급하게 된 이유는 간단한 현장 정도는 맡겨봐도 되겠다는 본사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현장을 맡으려면 최소 과장은 달아야 한다는 말 때문에 진급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맡을 현장은 신축 현장이 아닌 리모델링 현장이다. 현장 총괄은 본사에 계신 부사장님이 하시고, 나는 현장에서 인부들을 지휘할 예정이다. 건설 경험이 부족한 내게 최고의 현장이었다. 그렇게 내 진급과 새로운 현장이 결정되는 듯싶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과거부터 우리 회사 사장님과 인연이 깊었던 동종업계 사장이 경영악화로 회사를 접게 됐다. 20년 가까이 인도네시아에서 살았기에 회사건 생활이건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회사가 문을 닫으면 그와 동시에 비자가 종료되면서 바로 떠나야 했다. 그래서 우리 사장님께 딱 1년만 일할 수 있게 해주겠냐는 부탁을 했다. 그동안의 인연 때문에 사장님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동종업계 사장은 현장소장으로 입사했다. 그런데 현장이 없다. 아니 딱 한자리가 있었다. 바로 내가 갈 현장이 비어있었다. 그렇게 난 눈뜨고 코 베이듯 현장을 뺐겠다. 하지만 이미 진급도 했고, 회사에서 차와 운전기사를 준비해놨다.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자카르타에서 2시간 넘게 떨어진 도시보다 오지가 가까운 창고에 창고장으로 발령이 났다.
창고가 생긴 지 10년 가까이 됐지만, 한국인이 창고에서 일했던 적은 없었다. 창고 설립 후 단 한 번의 회식도 없었다. 창고는 본사의 그늘에서만 존재해왔다. 그런 창고로 발령받았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비몽사몽 간에 창고로 첫 출근을 했다. 첫날 창고를 살피고 또 살펴본다. 그리고 퇴근 할 때쯤 두 개의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창고를 정리할 수 있을까? 하는 업무적 책임감.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는 본사에서 날 이곳으로 발령낸 이유는 나를 자르기 위해서인가? 하는 지극히 합당한 의심이 싹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