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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 강 Oct 26. 2024

운이좋았던 해외생활

본사에서 쫒겨나다.

 래퍼 이센스의 노래 중 Next Level의 가사를 보면 "래퍼 할라면 노래방 애들하고 몇 차원 달라야지"란 가사가 있다.     


 뼈저리게 공감하는 말이다. 겉핥기식으로 하는 것과 프로가 되기 위해서 하는 건 달라도 한참 달라야 한다. 직장인은 월급을 받기에 프로다. 그러니 프로그램 참가자일 때와는 차원이 다른 적응을 해야 한다.     


 나는 직장인이다. 직장인이라면 현지인과 구분 안 되는 장기 여행자와도 달라야 한다. 자신의 기준으로 외국의 문화를 즐기는 여행자란 옷을 벗고, 그들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외국인 노동자란 옷을 입자. 얼죽아를 외치며 살아왔어도, 인도네시아에선 현지인들 사이에 섞여 땡볕에 뜨거운 커피를 마실 줄 알아야 한다.     


 출근 첫날 첫 임무는 앞으로 내가 머물 숙소를 찾는 일이었다. 회사에선 나중에 제대로 된 숙소를 구해준다며 임시로 한 두 달 거주할 수 있는 숙소를 구하란 이야기를 했다. 찾아보니 월간 계약을 해주는 곳은 KOS 라 불리는 원룸 또는 고시원 방 같은 곳뿐이었다. 부산 남포동에서 한 달에 15만 원짜리 벌레가 드글드글한 고시원에도 살아봤는데, 어디서든 못살까. 회사는 자카르타에서 땅값 비싸기로 소문난 Senopati 근처에 위치해있어 물가가 비쌌다. 한국으로 치면 명동 같은 번화가 바로 옆이다. 그냥 살만한 곳을 찾으면 되는데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인니어도 못하고, 건설업 경력도 없는 내가 뭘 보여 줄 수 있을까?’     


 당장에 업무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건 없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뭘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깐깐하게 따져서 가성비 좋은 숙소를 구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되는 게 아닐까? 약 스무 군데의 KOS 을 돌아다닌 끝에 전기세 수도세 그리고 빨래까지 포함된 한국 돈 40만 원짜리 가성비 좋은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이유 없이 불안한 마음으로 회사에 경비를 청구했다. 회사에선 별말없이 경비를 내주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쓸데없는 짓이었다. 회사에서 숙소를 구하라고 했으면 구하면 그뿐인걸 괜히 복잡하게 생각했다. 가성비 좋은 숙소를 구한다며 쓸데없이 시간 낭비나 했다. 가성비 있는 숙소를 구하는 건 여행자의 옷을 입고나 해야하는 짓이다. 직장인의 옷을 입었다면, 직원들 중 KOS사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본 후, 집이 괜찮은지 물어보고, 괜찮다면 옆방이 비었는지만 확인했으면 충분했다. 땡볕에 직접 발품을 팔면서 방을 구하는 건 멍청한짓이었다. 그 시간에 일하는 척이라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도 정신을 못 차렸다. 아니 첫단추가 어긋난지 모르니 아래 단추들까지 잘못 끼워지는 건 당연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회사마다, 그리고 업종마다 업무 분위기나 방식이 다르다. 내가 처음 일을 배운 곳은 전기기기 유통회사였다. 영업팀이나 생산에서 물품을 요청하면 재고를 파악하고 제품을 구매하는 일을 주로 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영업팀이 직접 관리하기 힘든 중소형 소매업체를 직접 관리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항상 일이 많았다. 일은 마치 영화 월드워Z 속 좀비처럼 끊임없이 나타났다. 좀비를 막다 막다 차라리 좀비한테 물리면 편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팔목을 좀비의 입에 들이 밀때쯤 되면 일이 끝났다.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 의지로 일을 끌고나갈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회사에서도 업무량이 많음을 알기에 나에게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일하길 바라지 않았다. 수동적으로 주는 일만 하되 실수 없이 빠르게 일을 처리하기 바랬을 뿐이었다.     


 반면에 인도네시아 건설회사에서는 주도적으로 일을 찾아서 해야했다. 현지인들끼리 모아놔도 건물은 지어진다. 다만, 건물 입구가 막혀있거나 문대신 창문이 달려있는 경우가 있어서 문제가 있을 뿐이다. 한국인은 현장이 문제점을 발견해서 해결해야한다.     


 물론 인도네시아 사람 중 웬만한 한국인 보다 뛰어난 이들도 있다. 문제는 그런 능력자들은 한국인 회사보다 월급 더 많이 주는 외국계 대기업에서 일한다는 안타까운 현실이 있다. 그러니 한국 사람들은 관리자로서, 능력이 부족한 현지직원들과 함께 발주처의 눈높이에 맞는 건물을 지어야 한다. 그리고 건물은 현장에서만 지어지는 것도 아니다. 건축의 시작은 도면이지만, 건설의 시작은 발주부터다. 옳은 제품을 사용해야 옳은 품질로 건물이 지어진다.     


 본사 구매팀 직원들이 발주를 한다. 규격에 맞는지, 그리고 납기가 언제인지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현지어를 못한다는 핑계와 건설자재를 모른다는 핑계 그리고 내일이 아니란 생각 때문이었다. 농담하나 안 보태고 약 2주간 출근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돌이켜 생각해보면 분명히 의심가는 구매서를 봤었지만, 내가 할 일인가 싶어 모른 척 눈감았던 적도 있던 것 같다. 능동적이어도 부족할 판에, 나는 너무나 수동적이었다.     


 2주째 되는 토요일 아침, 사장님이 같이 현장을 가보자는 뜬금없는 제안을 하신다. 사무실에서 눈치만 보고 있던 와중에 반가운 제안이었다. 오지에 있는 창고도 들리고 허허벌판인 현장도 들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장 소장들이 살고있는 숙소를 들려 라면까지 한 그릇 하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에 머리속에 물음표가 생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거 혹시 사장님의 배려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사장님은 내게 현장이 그리 나쁜곳이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본사에서 보낸 무의미한 시간들을 떠올랐다. 이건 설마?     


"사장님 저 현장에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라면을 드신 후 커피를 마시고 계신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잘 생각했어. 박 이사하고 이야기해서 일정 맞춰봐.“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사장님의 자연스러운 태도에 이 모든게 사장님이 짜놓은 판이란 확신이 들었다. 만약 사장님 의도를 눈치채지 못했다면, 아마도 이유도 모르고 어느날 사소한 이유로 잘렸을 것 같다. 눈치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운 좋게 살아남아 현장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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