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hn 강 Nov 01. 2024

운이 좋았던 해외생활

뜨겁지만 차가운 현장으로.

 뜨거운 공기와 눈부신 햇살에 인상이 찌푸려지던 날, 인부들의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현장에 첫발을 들이밀었다.     


 모두 할 일을 찾아 바삐 움직이는 가운데, 나 홀로 현장 사무실에 덩그러니 남아 갈 곳을 잃었다. 사무실에서 내가 할 일이 없다. 본사 사무실에서 할 일 없이 에어컨 바람만 축내다 왔는데, 현장 사무실에서 또다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회사를 들어올 때 내 발로 들어왔으면 나갈 때도 내 발로 걸어 나가야지, 쓸모없음에 쫓겨나긴 싫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현장에 나가 소장님을 따라다닌다.   

  

 20살 무렵 공장에서 CNC 가공을 했었다. 늙은 사수는 볼트 하나를 쪼이면서도 말이 많았다.     

"나 때는 이래 세팅할 때, 볼트 하나 쪼이는 것도 술 사주면서 배웠어."     

 

수시로 '나 때는'을 외치는 사수가 싫었다. 사수가 아닌 공장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 어깨너머로 기술을 훔치는 도둑이 됐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나는 다시 도둑이 된다. 현장을 바삐 돌아다니는 소장님 뒤를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소장님의 일을 훔쳐 배운다. 하지만, 소장님은 지하철 2호선처럼 쉴 새 없이 현장을 돈다. 작업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소장님의 뒤를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도 다리 힘이 풀린다. 주저앉고 싶다. 하지만, 힘들다고 발걸음을 멈추면, 인도네시아에서 흐르고 있는 내 시간도 멈추겠지. 이를 악물고 따라 걷는다.     


 안전모 뒤로 흘러내린 땀이 조끼 가득 맺힌다. 가득 참은 넘침을 만들어내고, 땀은 엉덩이를 타고 내려가 안전화까지 흘러내려간다. 전신이 땀으로 다 젖고 정신은 혼미해질 때쯤 드디어 퇴근이다.     


 일주일 동안 껌딱지처럼 소장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이런 내가 귀찮은지, 소장님은 옹벽 작업의 이유와 원리 그리고 방식을 설명해 주셨다.     


"명심해, 벽이 무너지는 건 흙 때문이 아니야. 다 물 때문이다. 배수가 우선이다."     


그때부터 나는 해가 떠 있으면 옹벽작업을 확인했다. 그리고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길고 긴 옹벽을 따라 걸었다. 혹여 배수로가 막혔을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길 2주일 소장님이 한 가지 임무를 더 주셨다.     


"경리가 없어서 죽겠다. 앞으로 네가 경리 업무 좀 해라."     


 한 달 전, 그러니까 내가 현장에 오기 직전 현장 경리가 사표를 썼다. 거친 현장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소장님과 3년을 동고동락한 경리는 출산휴가가 없음에 회사를 그만뒀다. 1년 동안 일한 본사 직원은 3개월의 출산휴가를 받았는데, 3년 동안 현장을 돌며 고생했고 심지어 만삭이 될 때까지 일한 자신은 고작 2달간의 출산휴가도 받지 못해서였다. 본사는 정직원, 현장은 계약직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소장님은 사비로 월급을 챙겨준다는 말까지 했으나, 본사에서는 2개월의 업무 공백 메울 수 있는 신입직원을 뽑아야 한다며, 계약종료를 선언했다. 결국, 경리는 떠났다. 문제는 경리가 떠난 후 대체자를 아직 뽑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중소기업에서 구매를 담당하며 장부를 만들고 세금계산서까지 발행했다. 몇 십만 원짜리 제품으로 연간 약 160억 원 치를 팔았기에 장부 정리와 세금계산서 발행의 달인이 됐다. 현장 총 수주금액이 20억 원이 안 된다. 그리고 장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으로 회계관리를 한다. 한 달간 밀린 경리업무를 정상화하는데 딱 3일 걸렸다. 현장을 계속 살피면서, 땀 식힐 때 틈틈이 일했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현장에 온 지 한 달 만에, 옹벽작업도 관리하고, 경리 일도 담당한다. 처음 받은 안전화가 걸레짝이 돼 한 켤레 더 샀다. 그럭저럭 한 사람의 몫을 하기 시작했다.

이전 07화 운이 좋았던 해외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