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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n 25. 2019

나를 싫어하는 사람 대하는 방법

선생님은 '최우수상'으로 멋지게 복수하셨다.   

학교에 있다 보면 나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주로 사춘기가 오거나 나랑 성향이 다른 아이들이다.


특히 고학년 여학생들 중에 있는데 그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주 소심하게 복수를 계획하기도 한다.


어릴 적 내가 대놓고 선생님이 싫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멋지게 대응하신 선생님이 떠 오른다.


지금까지 나를 가장 예뻐해 주신 선생님은 초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시다. 당시 부임하신 지 얼마 안 되는 앳된 나이의 선생님이셨다. 게다가 아름답게 생기신 걸로 기억된다. 그 선생님은 늘 상냥하셨다. 그 당시 대부분 선생님이 엄격하셨는데 말이다.


3학년이 끝나 그 선생님과 헤어지자 밤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그런데 4학년 올라가서는 하필 그 학교에서 가장 호랑이라고 소문난 선생님이 담임이 되다. 나이 많남자 선생님이었다.


그러자 학교 다니는 것이 괴로웠다. 3학년 선생님과 사사건건 비교했다.


스승의 날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에 관한 주제로 글짓기를 시키셨다. 나는 원고지를 펼치자마자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다.


다른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이 너무 좋다.' '공부를 잘 가르쳐주신다.' 등 마음에도 없는 말을 곧잘 썼다. 하지만 나는 그때부터 반골기질이 강했나 보다. 내 솔직한 성격 그대로 써버린 것이다.


'나는 3학년 선생님이 보고 싶다. 그 선생님은 공부도 재미있게 가르쳐주시고 상냥하시다. 하지만 지금 선생님은 무섭기만 하고 공부도 재미없게 가르치신다. 아이들도 차별하신다. 반장이나 엄마가 학교에 잘 오는 애들만 이뻐하신다. 게다가 나이도 많고 옷도 맨날 똑같은 것만 입으신다. 작년 선생님은 예쁜 원피스도 입고 말도 상냥하게 하시고 나를 예뻐해 주셨다. 나는 될 수만 있다면 작년으로 돌아가고 싶다.  등등'


당돌하기 그지없다. 감히 교수법을 평가하고 의상까지 지적하는가 하면 근거 없이 차별 문제까지 들먹이다니.


원고를 빨리 쓰고 앉아 있자 선생님이 내 원고를 걷어가셨다. 그리고 읽어보시는 게 아닌가?


담임선생님이 읽으실 줄은 몰랐다. 그대로 학교에 제출하면 담당 선생님이 선정하시는 줄 알았던 것. 그래서 솔직하게 다. 사실 고발성 글이었다. '이 선생님 나빠요.' 하는.


그때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내 원고를 다 읽으신 선생님은 그 원고지를 북북 찢으신다. 그리고 불같이 화를 내시며 너 같은 학생 따윈 필요 없어. 하시는 것이다. 다른 장면도 상상해 보았다. 그 선생님은 체벌을 하신 분이었다. 그래서 막대기로 내 손을 열대쯤 때리시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 욕했다고 때릴 수는 없으니 글짓기를 엉터리로 하고 친구랑 떠들었다고 누명을 씌우는 거다.  아니면 원고지 작성법에 안 맞게 썼다고 말이다.


그런데 내 상상이 결론을 맺기도 전에 선생님이 내 원고를 다 읽으신 모양이다. 갑자기 반장을 불러서는 이 원고지를 교감선생님께 갖다 드리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덧붙이셨다.

"정말 잘 썼다. 이 글짓기는 무조건 우리 학교 최우 수감이야."

그리고 정말로 애국조회 때 내가 글짓기 대회 1등으로 상을 받게 되었다. 그 원고를 보고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적나라하게 자길 욕한 학생의 글을 보고 말이다. 그리고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1등 상을 주는 사람의 그릇은 얼마나 큰 것인가?


세상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 있진 않다. 모르고 지나치면 좋은데 누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가 있다. 그때마다 그 선생님이 떠 오른다. 그리고 그 선생님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본다.

 

'내가 아이들을 차별했나?'하고 반성했던가, 아니면 작년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여학생이 너무 가여운 생각이 들었던가, 아니면 모든 걸 떠나서 글 자체를 객관적으로 평가한 것일까?


어떤 쪽으로 생각해 보아도 그 선생님은 대인배셨다. 나는 왜 그렇지 못할까? 나도 좀 그릇을 키워봐야겠다.


나를 싫어하는 여학생에 대해 소심한 복수는 없던 걸로 해야겠다. 그러고 보면 그 선생님이 나에게 상을 주신 건 진짜 멋진 복수였다.


나는 그 상을 받고 미안한 나머지 선생님께 충성을 맹세하게 되었으니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히려 잘해줘서 미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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