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렁대는 것에 대한 변명

단점은 장점과 샴쌍둥이다.

by 허윤숙

운전면허를 딴 지 오래되었지만 운전대를 잡아 본 적은 없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우선 남편이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대중교통 이용이 체력적으로 힘들다. 하루는 남편에게 선언을 했다. 이제 차를 가지고 다녀야겠다고.


그러자 남편은 구구절절 내가 운전을 하면 안 되는 이유를 말한다. 그래도 내가 막강하게 나오니 일침을 가한다. 다 괜찮은데 죽을까 봐 안된다고.


순간 물밀듯이 감동이 밀려왔다.

"뭐라고? 내가 죽을까 봐 걱정이 된다고?"

그러면서 혹시 내 존재 자체를 아쉬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 밥 해줄 사람이 없어서 그러는 거지? 하면서 확인사살하려고 했다. 내심 아니라는 말이 나오길 기대하면서.


그러자 남편이 무덤덤하고 제법 단호한 말로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당신이 아니라, 당신이 운전하면 당신 차에 사고당한 사람이 죽을까 봐 걱정이 된다는 말인데..."

"..........."


또 하루는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다들 권태기, 권태기 하는데 자기는 나한테 권태기 없어?"

하니 평소 느려 터진 남편이 웬일로 빨리 대답을 한다.

" 아니, 절대로 그런 걱정은 마."


내가 또 감동을 했다.

"그럼 나는 늘 신선하단 말이지?"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그게 아니라 권태기는 뭔가 안정적이고 차분한 부인에게서 느끼는 거 아냐? 나는 당신 때문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는데 무슨 소리야. 부엌에서 요리만 해도 또 칼 떨어뜨릴까 봐, 컵 깨질까 봐. 늘 불안하다고."

"......."


남편은 연애할 때 내 덜렁 거림이 귀여웠는데 지금은 너무 괴롭단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나는 심지어 공항에서 여권을 잃어버린 적도 두 어번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내 덜렁 거림을 조금쯤 미화하게 된 일이 생겼다. 얼마 전부터 방탄소년단을 좋아하게 되었다. 좋아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이유 중에서도 단연 1위는 RM 때문이다. RM이 나보다 한술 더 떠 비행기 안에서 여권을 잃어버린 소동이 일어난 것을 보고 나서다.


나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다른 멤버들은 아주 침착하게 "또야?" 하거나 침착하게 찾아보자고 말하거나 했다. 내가 사고 쳤을 때 우리 가족이 하는 행동들이다.


그런 RM을 보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을 때가 있는데 (물론 지능지수 빼고 말이다.) 우선 잘 부딪히거나 다친다. 또 물건을 잘 잃어버리거나 물건을 쌓아둔다거나 한다. 운전면허도 안 딴다. 사고 칠까 봐.


하지만 작사, 작곡을 잘하고 리더십도 좋다. 또 다른 멤버인 민윤기(슈가)에게서도 위로를 느꼈다. 즉 시간만 나면 눕는 것. 나도 집에 오면 무조건 눕는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갖고 있는 단점은 우리가 갖고 있는 장점의 소산 같은 것이다. 즉 알엠이 덜렁댄다는 건 그만큼 평소 생각이 많은 것이다. 가사를 쓰려면 시간 내서 자리에 앉아 쓰는 것이 아니다. 늘 머릿속에서 구상을 하고 곱씹고 하다가 앉아서 쓰게 되는 것. 즉 머릿속이 늘 바쁘다.(나도 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책을 쓰고 하는 과정은 머릿속이 늘 부산스럽기 때문이라고 핑계 대본다. )


장점과 단점을 원심 분리기에 넣고 깔끔하게 분리할 수가 있을까? 둘은 마치 샴쌍둥이처럼 붙어있다. 비교적 보수적인 학교 사회에서도 나의 단점을 수용해주시는 분을 만날 때가 있다.


한 학교에서 멋진 교장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은 나의 덜렁 거림을 오히려 축복까지 해 주신다. 작가는 그래야 한다고. 기도 일부러 꼼꼼하지 않으려 하신다고.


뇌는 습관에 길들여지면 개발이 되지 않는다면서 일부러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놓지 않는 습관을 들이고 계신다. 그러면 어디 두었지? 하면서 머리를 쓰게 된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익숙한 행동만 하니 발전이 없다고 느껴서다.


이런 교장선생님이나 RM 같은 사람 덕분에 요즘 살맛이 난다. 글로벌한 가수가, 그것도 멋진 곡을 쓰는 천재 뮤지션이 덜렁댄다는데 누가 욕하랴? 나도 이참에 슬쩍 묻어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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