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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n 24. 2019

딱지가 앉을 때까지 기다리기

상처를 다루는 방법

오랫동안 피부병을 앓았다. 많은 피부과를 전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가려움증만 더욱 심해질 뿐. 강력한 스테로이드성 처방약을 먹고 얼굴이 퉁퉁 붓는 부작용 겪었다. 피부과에서 하는 말은 대부분 비슷했다. 원인이 여러 가지일 수 있다고.


잠을 못 잘 정도로 가려워서 마구 긁다 보니 염증이 심해졌다. 어쩔 수 없이 소염제를 먹고 있는데 신기하게 낫고 있다. 부병은 어느새 최초의 원인으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즉 알레르기로 인한 것이었지만 긁어서 2차 감염이 생긴 것이다. 어느 순간 그 감염증이 심해져서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반드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어느 순간 긁는 쾌감 자체에 중독이 되어간 것이다. 가려울  때 손톱으로 벅벅 긁고 나면 일시적으로 시원해졌는데 이는 더 큰 가려움을 데려왔다. 그 가려움들이 커져가면서 긁으면 피가 나왔다. 그 피는 색깔이 아주 검은색이었는데 나쁜 균들이라서 그런가 보다 했다.  나쁜 피들을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은 긁는 행위에 정당성까지 부여했다.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 피는 짜내지 말아야 했다는 것을. 그 검은 피는 곧 딱지가 될 것들이었다. 딱지가 앉으면 상처가 아물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새를 못 참은 결과 4년씩이나 피부병을 달고 산 것이다.


오랜만에 후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후배는 오랜 결혼 생활을 끝내고 이혼을 했다고 한다. 이혼을 결심하고 시어머님에게 그 사실을 말할 때였다. 시어머님이 그 후배를 딸처럼 아꼈기에 충격을 받으실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덤덤하게 축복의 말씀까지 해 주셨다. 그런데 최근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단다. 아들이혼으로 충격을 받으셔서 다. 시어머님은 평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셨다.


영화 '밀양'에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은 유괴범에게 아들을 잃은  우연히 들어간 교회에서 위로를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신앙을 증명(?) 하기 위해 아들 살해범을 용서하기로 한다.


감옥에 간 그녀는 살해범에게 죄를 모두 용서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살해범 자신 하나님에게 이미 용서받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 종교적인 용서의 모순을 깨닫고 더 큰 방황을 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죄를 다루는 관점에 대해 말한다. 사람에게 지은 죄를 신에게 용서받고 끝내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 죄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은 상처가 아직 그대로인데...


여주인공은 아들을 잃은 슬픔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 슬픔을 메우기 위해 무리를 한다.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을 무기로.


우린 때로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그 상처를 마주하기 겁난다. 상처가 낫기 위해서는 딱지가 앉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피가 굳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못 견디고 긁으면 부스럼을 만들고 2차 감염을 불러와 또 다른 상처를 남긴다.


미울 땐 죽도록 미워하고 슬플 땐 미칠 듯이 슬퍼해야 하는데...


20년 전 동생을 잃고 큰 슬픔에 빠져있었다. 그때 가족을 잃은 적이 있는 사람을 만났다. 그분에게 얼마나 지나서 슬픔을 극복했냐고 하니 정신이 멍한 상태가 1년 지속되었다고 했다. 나는 아이가 어리고 하니 그보다 빨리 극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나서 보니 나도 꼭 1년간 우울한 상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론 죽을듯한 슬픔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 슬픔을 이기는 방법은 그 슬픔이 실컷 흐르도록 놓아두는 것이 아닐까? 거기에 더해 일정한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지도.


그 시간들을 견뎌야 한다.  그러면 마침내 딱지가 앉혀지고 상처는 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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