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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l 03. 2019

오늘,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요.

쑥스러워서 혹은 바빠서 아직 못했다면...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마지막으로 할 일은 무엇일까?


돈을 몽땅 인출해서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을 실컷 먹을까? 아니면 가보고 싶었던 곳에 가볼까?

하지만 재난영화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가족부터 찾는다. 그리고 한마디 한다. "사랑한다고."


자음 'ㅅ'으로 시작하는 이 글자는 우리에게 문화적으로나 발음상으로 낯설기만 하다.

'섹스', '성'이라는 말에도 'ㅅ' 이 들어가서일까? 물론 '사랑'이 훨씬 연한 발음이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발음하기가 부드럽지 않다. 혀나 입술에 힘이 들어가야 이루어지는 발성이다.


영어권의 "I LOVE YOU."는 좀 다르다. 둥글둥글하다. 입술이 많이 움직이지 않고 입 전체가 크게 벌어지지도 않는다.


중국의 "워 아이니."도 둥글둥글한 발음이다. 입속으로 애교 있게 살짝 울리는 느낌이 든다.


프랑스어 "쥬뗌므"도 부드러운 발음에 울림이 있다.


하지만 "사랑해."를 발음할 때는 입이 전체적으로 벌어진다.


'ㅅ'을 발음할 땐 작은 바람소리가 난다. 마음이 크게 담길 때는 더 큰 바람소리가 난다. 'ㅅ'을 발음하기 위해 마음속에서 많이 발음하고 난 후라서 일까?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내뱉는 'ㅅ' 발음은 주변의 공기를 모두 끌어당겨 집중한다. 게다가 '랑'을 발음할 때 받침으로 쓰이는 'ㅇ'은 심장 위에 돌을 살짝 엊는 느낌이 든다. 그 말이 어디 달아나지 못하도록 꼭꼭 눌러두듯이.


유교 영향 때문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체면을 중시하고 표현하는데 인색한 면이 많다.

그래서 그런가? 서양에서는 쉽게 표현하는 '사랑한다'는 말이 우리나라에선 인색하게 쓰인다.

가족끼리는 쑥스러워서 못하고, 남에겐 오해받을까 봐 못 하고.

오히려 마음이 없을 때 더 많이 표현하곤 한다. 교회에서나 인터넷 동호회 카페 같은 곳 등.


오래전 아주 친한 후배가 결혼해서 미국에 갔다.

그 후배가 결혼한 스토리가 특이했는데 구한말 결혼 방식으로 맺어졌기 때문이다.

후배는 남편과 중매로 만났는데 서로 증명사진 한 장 주고받은 것으로 3개월간 전화통화를 했다. 그러다 결혼을 약속하고 3개월 후에 남자가 한국에 와서 약혼식을 했다. 그리고 3개월 후 남자가 다시 한국에 와서 결혼식을 한 것이다.


그 뒤로 미국에 따라간 후배는 간간이 소식을 전해왔다. 후배가 하는 말은 미국 교포들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었다. 서로를 잘 모르고 결혼했다지만 일단 남편은 모습만 한국인이었다. 한국말이 무척 서툰 데다 한국적인 문화방식과 너무 달랐다. 직업이 컴퓨터 프로그래머이기도 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면이 강했다.


무엇보다 한국인 특유의 정스러움이 부족했다. 연애경험 한번 없이 중매를 통해 결혼하게 된 후배는 알콩달콩 신혼생활을 꿈꾸었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사회에 가서 새벽부터 밤까지 일 해서 어렵게 자수성가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남편이다. 아기자기한 감정이 어떤 건지 가족끼리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는지 몰랐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단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이었다.


일상생활도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캠핑을 가고 싶다고 하니 검색을 통해 캠핑장비를 완전히 다 갖추고 철저히 계획하고 캠핑을 갔다.

캠핑을 가서는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로봇같이 행동했다. 후배는 자연을 느끼고 단조로운 생활을 탈피하려고 간 캠핑인데 더 큰 스트레스를 받고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쓰러졌다. 폐암 말기였다. 그리고 두 달 뒤에 세상을 떠났다. 그 소식을 전하는 후배는 허탈한 듯이 말했다.

"언니. 서글픈 게 뭔지 알아. 그건 남편 얼굴을 잘 모르겠다는 거야. 사진을 봐야 겨우 생각나. 왜인 줄 알아?  남편 얼굴을 컴퓨터 하는 옆모습, 러닝머신 뛰는 뒷모습밖에 본 게 없거든. 어차피 이렇게 일찍 갈 거면서 뭐 그리 열심히 살았는지.


갑자기 후배가 평소 하던 말이 떠올랐다. 남편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못 들었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그럼 너 사랑한다는 말은 결국 못 들은 거니? 그렇게 세상을 떠난 거야?"


그러자 후배가 말했다.

"아니, 들었어."

"다행이다." 하니,


"조금 삐뚤삐뚤해서 그렇지."


그래서 내가 "아니, 말이 삐뚤삐뚤한 게 어딨어?" 하니,

후배가 말했다.


"그 게 말이야. 말로 들은 게 아니거든. 마지막은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하고 있었어. 며칠간 의식이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손가락이 움찔거리는 거야.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무언가 잡고 쓰는 흉내를 냈어. 그래서 내가 종이랑 연필 갖다 줄까? 하니 고갤 끄덕이더라고. 그래서 갖다 주니 삐뚤빼뚤하게 써 내려가는 거야. 사. 랑. 해.라고."


지금 당장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내 마지막 말이 무엇일까? 가족들에게 전하지 못 한 진심이 있다면 그걸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슨 말일까?

 

그건 아마도 좀 쑥스럽고 난 데 없는 듯한 말.

언제든 할 수 있지만 그 언제가 잘 오지 않는 말.

혀나 입술에 어색한 힘이 들어가는 말.

특히 첫 글자에 바람소리가 섞여서 결국 내뱉을 때까지 많은 망설임이 따르는 말.

그 망설임이 때론 후회로 연결되기도 하는 말.

시간이 지나면 다신 할 수 없는 말이 될 수도 있는 말.


그건 "사랑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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