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용서해 줄게. 됐지?
장례식장에서 가장 크게 우는 사람은 누굴까? 가족? 아니다. 대체로 가족은 그전에 너무 많이 울어서 목이 다 쉬어 있다. 게다가 상주 노릇 하느라 정신이 없다. 슬픈 와중에 장례 절차 의논하랴, 장례비 계산하랴 세속적인 부분까지 챙기다가 은근히 부아도 난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쳐있다. 친구들도 이미 슬픔을 겪을 대로 겪은 후라 눈물이 많이 나지 않는다. 또한 암 같은 병으로 죽은 경우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대성통곡하는 일은 별로 없다.
여기서 가장 애통해하는 사람은 죽음을 갑자기 알았거나 고인에게 잘못을 많이 저지른 사람이다. 갑자기 비보를 듣고 달려와서는 장례식장이 떠나가라고 울고 밤을 새운다.
동생의 장례식에도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동생의 전 남편이었다. 그는 동생의 죽음을 갑작스레 안 모양이다. 처음 그를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그가 오다니 그가. 다른 곳에서라면 따귀라도 한대 갈겨주고 싶었지만 그땐 와준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한 마음이었다. 차마 왜 왔냐고는 말하지 못하고 어떻게 알았냐고 하고는 우리 남편의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비록 그렇게 헤어졌지만 부부의 연을 맺었던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말을 안 하냐고. 우리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그는 장례식장에서 가장 크게 울었다. 다들 그를 원망하는 마음과 그래도 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또 남자 친구 눈치까지 보느라 곤란해했다. 그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잘 사는 줄 알았어요. 곧 좋은 사람이랑 결혼한다고 하고."
결혼을 계획하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남자 친구가 사법연수원에 있었고 검사 발령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여건이 안되었었다. 이제 자리를 잡고 미래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만 이렇게 된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너무 원망하고 있었다. 나는 느꼈다. 그가 아직도 동생을 사랑하고 있다고. 안타까웠다. 생전에 동생이 그걸 알았어야 했는데. 자길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고통스럽게 살다 갔는데.
우린 때로 시간차 공격에 당한다.
항상 ,
'그땐 너무 미숙했고 너무 빨랐고 조금 덜 알았고 조금 덜 철이 들었고 조금 더 성급했고 조금 더 이기적'이었다.
시간이 흐른 후에 보면 그게 다가 아니었는데 하는 것 말이다. 그게 전체가 아니었단 걸, 그 사람의 본질이 무조건 그런 건 아니었다는 걸 말이다. 그러니 이럴 땐 조금 느리고 미련한 사람이 유리할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어깨를 다독이고 위로해 준건 다른 사람이 아닌 동생의 남자 친구였다. 한 사람의 그릇의 깊이와 넓이가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그 사람이 딱 그랬다. 분명 동생에게서 전남편에 관해서는 나쁜 말만 들었을 텐데. 그는 어느 사람에게나 연민 내지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었다. 그는 전남편의 슬픔을 개인의 슬픔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안고 있는 인간의 모순 내지는 원죄처럼 다루고 있었다.
그는 전남편과 같이 밥도 먹고 대화를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도록 했다. 결국 대성통곡하던 전남편은 그 장례식장에서 남은 시간 동안 궂은일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동생 영정사진은 남자 친구가 들었다. 그건 아무도 토 달지 못할 일이었다. 유골을 뿌릴 장소도 남자 친구가 정하게 했다. 둘이 자주 가던 곳으로.
장례식 내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천덕꾸러기 같이 일만 하던 전남편은 그 장소까지 따라갔다. 모든 게 끝나고 헤어질 때 그 둘은 아주 오랫동안 악수를 했다. 그때 아무 말도 없었지만 둘에게서는 깊은 연대감이 느껴졌다.
나는 속으로 '너는 진짜 능력자 맞는구나. 마지막 가는 길까지도 두 남자라니.'
그래도 참 다행이었다. 동생은 하늘에서나마 전남편의 애끓는 참회를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크한 성격답게 한마디 했을 것이다.
"그래. 그래. 다 용서해줄게. 이젠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