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예의

사람,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by 허윤숙

나이가 들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용서가 쉬워진다는 것이다. 상처와 나쁜 일들이 차곡차곡 쌓인 뇌에는

"또 난동 승객이야? 과감히 패스!"하고 외치는 기차 승무원이 존재한다. 그러면 뇌에다 일러바치던 심장이 슬금슬금 자릴 피해버린다.


최근 용서가 된 장면이 있다. 오랫동안 분노 게이지 상승 요인이었고, 그 여파로 심술 맞게 생긴 할머니들을 경계하고 미워했다.


동생이 생을 다해갈 때쯤이었다. 당시 병원마다 병실이 모자라서 아무 데나 자리가 나면 감사해야 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해서 최소 2인실에 들이고 싶었지만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연령대만이라도 비슷하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나중엔 암환자가 아닌 일반 환자들과도 같은 병실을 쓰게 되었다. 그때 한 할머니가 상처를 주었다. 그 할머니는 위중해 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 딸이 간호를 하고 있었는데 할머니의 얼굴 표정이나 행동이 호감가지 않았다.


그 할머니가 우리보다 먼저 병실에 입원해 있었는데 우리가 동생을 침대에 눕히는 순간부터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그 당시 동생은 신장이 다 망가져서 소변 줄과 소변 받는 팩을 차고 있었는데 그 게 보기 싫었던 게다. 게다가 동생의 몰골이 이제 곧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선지 시체를 대하는 듯했다.


동생에게 말도 안 걸고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소변 팩을 눈에 띄지 않는 쪽으로 돌리라고 직접 말을 했다. 동생이 듣는 데서. 게다가 자꾸 커튼을 닫으라고 하는 것이다. 동생 얼굴을 보기 싫은 게다. 자꾸 그러자 보다 못한 딸이 "엄마. 좀 그만해."하고 핀잔을 주었다. 딸이 보기에도 얼마나 미안하고 무례하게 느껴지면.


죽어가는 사람에게 할 예의가 아니었다. 그 할머니는 죽음을 남의 이야기처럼 바라보았다. 죽어가는 사람의 얼굴은 보기 좋지 않다. 그 부분을 받아들이기 괴로웠을 것이다.


이제는 용서가 된다. 그래. 우린 다 상처 받은 사람들이니까. 당시 동생이 보여준 모든 시그니처가 그랬다. 굳이 '미리 보기'하고 싶지 않은, '죽음'이라는 그림자.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동생은 모든 상황에도 평소대로 표정이 없었다. 화를 내거나 미워할 기운도 없어 보였고 모든 걸 달관한 듯했다. 이제 자기가 할 일이 없었으니.


사람이 사람에게 행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 죽음이라는 존재 앞에선 더 예의를 차려야 하는 것 아닌가?


딸이 얼마 전 간호대 간 친구 만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간호과 학생들도 시체 해부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원칙이 하나 있다고 했다. 해부실에 들어올 때 운동복 같은 걸 입으면 절대로 안 되고 정장을 갖추어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죽은 육신을 학생들에게 내어 준 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한다. 하물며 죽은 시체 앞에서도 예의를 갖추는 데 말이다. 손녀 뻘 되는 여자가 안쓰럽지도 않은가?


아니다. 용서했다. 다시는 생각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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