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을 맺은 사랑

동생은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떠났다

by 허윤숙

동생은 남편과 이혼하고 나서도 한동안 남편을 못 잊어했다. 이혼을 결심하기까지도 오래 걸렸다. 하루는 전화가 걸려 왔다.

"내가 진짜로 괴로운 게 뭔지 알아?"

그래서 뭐냐고 하니

"아직도 내가 남편을 사랑한다는 거야. 나는 갑자기 당한 거잖아. 어느 날 갑자기 말이야. 바람피운 전날만 해도 나에게 얼마나 잘해줬는데. 머리카락이 땀에 붙어 있는 걸 떼어주면서 사랑한다고 했다고. 그런데 다음날 바람 폈다고 갑자기 내 마음이 식어버리겠어?"


듣고 보니 그렇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매일 잘해주던 남편이 알고 보니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잘해주던 장면은 고스란히 내 기억에 남아있다. 갑자기 그 많은 기억을 포맷하고 내 마음을 새로 시작할 수는 없지 않은가? 컴퓨터도 아닌데.


그 이야길 듣자 너무 화가 났다.

"아니 아직도 못 잊으면 어떻게 하니? 그 따위 인간쓰레기는 잊어버려. 넌 남자들에게 인기도 많잖아. 금방 또 생길 수 있어."

그러자 그래도 남편이라고 감싸는 모양새란.

"내가 너무 바가지 긁어서 그럴 수도 있어. 매일 무시했거든. 아일 잃고는 시어머님 하고 사이가 안 좋아졌잖아. 그래서 집을 얻어 나올 때도 내 돈으로 나왔어. 차도 내 거야. 회사도 내가 소개해줘. 그야말로 아무 능력이 없잖아. 그래서 바가지를 많이 긁었거든. 그러니 얼마나 피곤했겠어?"


역시 팔은 안으로 굽었다. 출가외인이라더니 자기 남편이라고 감싼다. 그렇게 미련을 못 버리던 동생이 사랑을 거둔 건 한 장면 때문이었다고 한다.


동생이 그 일 이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 하루는 수면제를 모아 입에 다 털어 넣었다. 그런데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순간 갑자기 남편이 보고 싶어 졌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잘 살아. 난 죽어가고 있어."

그 말에 남편이 동생이 있는 곳으로 급하게 달려왔다. 그래서 목숨을 살리긴 했다. 동생을 병원에 데리고 가서 응급처치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동생이 정신을 차리게 된 순간이 있었다. 남편이 동생을 차에 싣고 병원에 도착한 후 주차할 때였다. 병원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데 한 번에 직선이 안 되었나 보다. 그러자 깔끔한 성격 그대로 다시 차를 빼더니 몇 번에 걸쳐서 아주 반듯하게 대더란다. 자기 부인이 죽어가고 있는데 말이다. 조금 삐뚤게 대면 어때서.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상황에서도 그 장면이 선명히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속으로 이를 갈았다.

'이 사람 나를 진짜로 사랑하지 않는구나. 적어도 이젠.'

그러면서 삶에 대한 의지가 샘솟더란다. 보란 듯이 잘 살 거다 하고. 모든 미련을 접었다. 그리고 다시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번엔 더 잘 되었다. 시련으로 강해져서일까? 그리고 주변의 남자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또 줄을 섰다.


전보다 더 화려한 스펙의 남자들이, 그것도 대부분 연하의 총각들이 말이다. 그중엔 의사나 변호사, 검사도 있었다. 특히 사법연수원에 있는 한 남자와 사귀게 되었다. 자기보다 나이도 세 살이나 어린 남자와.


기생 오라버니 같은 남자만 좋아하더니 이젠 그런 남자들이 안 좋다는 걸 몸소 체험한 후라서 일까? 이번 남자는 사진으로 보여주었는데 각진 얼굴에 미남형과는 거리가 먼 얼굴이었다. 동생이 이런 사람과 사랑에 빠지다니 의외였다.


동생은 자기보다 어린 그 남자를 사랑을 넘어 존경하고 있었다. 동생이 그랬다.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이제 알겠어. 이 사람하고 대화하면 이 세상 미움이 다 사라져. 모두 다 용서하게 되고. 전남편도 이제 용서할 수 있어. 나도 잘못한 게 많거든. 이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

그렇게 다시 사랑을 시작한 동생을 나는 마음속으로 크게 응원했다. 이번 사랑은 제발 아무 탈 없기를 바라면서.


어쨌든 그 사랑은 해피 엔딩이다. 적어도 동생이 살아있는 동안 배신을 당하지는 않았으니. 덕분에 동생이 아름다운 사랑을 가지고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그런 추억을 만들어준 그 남자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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