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사랑한 남자

요즘 들어 더 확신이 든다

by 허윤숙

머릿속 생각을 글로 꺼내는 과정은 세포를 하나하나 꺼내어 조직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머릿속에 있을 때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막연히 슬프거나 즐거운 정도. 단편적인 기억들이 드문드문 얽히고설킨다.

그 세포들을 꺼내어 글로 쓰다 보면 형체를 갖추게 되는데 그 내용이 머릿속에 있던 것과는 다를 때가 많다.



세포로 존재할 때는 몰랐던 것들이 글로 표현하면 형체로 드러난다. 그 형체가 주는 위안이 있다.

"네가 이제 드디어 생명을 얻었구나." 하는.


그렇게 생명을 얻은 글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위로한다.

"그동안 이걸 가슴에 담고 살았구나. 쯧쯧. 그래,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어.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마음만 아팠겠네. 이제 풀어보렴. 그걸 동생도 원할 테니."하고.


19년 걸렸다. 내 안에서 동생을 덜어내는데. 동생 이야기를 글로 조금씩 풀어내면 서다. 이제 동생의 이야기를 남들에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해야 한다고 느낀다. 동생의 33년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지 않으려면. 그 삶이 남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아마 동생도 좋아할 것이다.






동생이 세상을 떠나던 마지막 며칠은 급속도로 병세가 악화되어갔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동생은 황달이 심하게 오고 복수가 차올라 배가 남산만 해졌다. 결국 병원에 실려갔는데 직감할 수 있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겠구나. 병원에 도착하자 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해졌다. 가족들에게 준비를 하라는 말도 했다. '뭘 준비? 이사 갈 준비?' 나는 그 와중에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동생은 이제 이삿짐을 챙겨야겠구나. 우린 이삿짐센터에 연락을 해야겠구나. 동생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가니까.


지금도 아쉬운 건 동생이 통증에 너무 괴로워하자 내가 의사에게 울며 이야기한 거다.

"마지막 가는 길에는 고통을 좀 덜 느끼게 해 주면 안 되나요?"

그러자 모르핀 성 진통제를 세게 해도 안 들으니 마지막 방법으로 수면제를 놓아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잠든 그대로 세상을 떠날까 봐 우려했던 그대로 되어버렸다. 더 이상 동생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었지만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수면제 처방 후 의식이 점점 흐릿해져 가는 동생이 유일하게 반응한 사람이 있었다. 남자 친구였다. 아무리 가족들이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던 동생은 남자 친구가 밤에 급하게 오자 눈썹을 움직이는 듯했다. 그리고 남자 친구가 동생 귀에 뭐라고 속삭이자 갑자기 누워있는 뺨 양쪽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마 남자 친구는 '사랑해, 편안히 잘 가'라고 했을 것이다. 가족들은 조금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동생이 그토록 사랑하는 남자였으니.


그는 당시 서울지검 검사였다. 그는 동생이 투병생활을 하는 두 달 기간 동안 수시로 서울에서 용인까지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와주었다. 주로 주말에 와서 꼬박 밤을 새우며 간호하다가 월요일 아침 새벽 서울로 출근하곤 했다. 당시 사법연수원에서 발령난지 얼마 안 되어 긴장되고 바빴을 텐데 아랑곳하지 않았다.


동생 곁에서 밤을 새우며 팔다리를 주물러주었다. 지금도 미안한 건 그 남자 친구 밥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는 것. 다들 정신이 없어 대충 밥을 차려주곤 했다. 동생은 그게 마음에 걸렸나 보다. 장례를 치르고 며칠 뒤 동생이 내 꿈에 나타나 말했다. 남자 친구에게 맛있는 밥 좀 지어주라고.

동생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그 남자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세정인 언니 얘길 참 많이 했어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언니는 말을 참 재미있게 한다고요. 언니가 말만 꺼내면 자긴 웃느라고 정신이 없다고."


반전이었다. 나는 동생이 나를 무시하고 싫어한다고 느꼈었다. 단 한 번도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런데 뭐라고? 나를 제일 좋아했다고? 걔가? 언제부터?

일단 나에게 언니라고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웃는 건지 비웃는 건지 모르게 피식 웃었는데... 그게 정말 웃겨서 그런 거였구나. 그리고 왜 지금 와서 그걸 내가 알게 되는 거지? 진작 좀 말해주지. 그럼 좀 더 잘해주는 건데.


남자 친구가 동생의 영정사진을 앞에 들고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그 뒤로 너무 힘들어했다. 나에게 자주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동생이 너무 보고 싶어서 하늘을 많이 쳐다본다고 했다. 하늘에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내 목소리가 동생이랑 비슷해서 더 생각이 난다고 했다. 그렇게 한 번 수화기를 잡으면 몇 시간을 대화한 것 같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지만 동생을 추억하는 것만으로 공감하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도 자기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여자도 만나고 말이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쌀쌀맞게 응대하기 시작했다. 전화도 잘 안 받고 받아도 용건만 간단히 했다. 그러자 눈치를 챈 듯했다. 하루는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 듯 집에 한번 찾아뵈어도 되냐고 했다. 그래서 정성껏 저녁식사를 차려주었다. 그때 그는 요즘 청년답지 않게 배와 사과를 한 박스씩 사 가지고 왔다.

내가 차려준 저녁을 맛있게 먹고는 좀 있다가 인사를 하고 돌아갔는데 그 뒤로는 전화가 없었다. 몇 년뒤 내가 전화할 일이 있어 통화하게 되었다. 그는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갓 정도 되었다고 했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가 나중에 실검에 오르내리길래 무슨 일인가 하고 보았다. 다들 칭찬했다가 욕했다가 했다. 도무지 헷갈리는 행보였기 때문. 하지만 나는 그를 믿는다. 적어도 내가 본 그는 대단히 인간적이고 의리가 있었다.


세 살이나 어린 총각이, 그것도 이혼한 경력이 있는 여자에게 순정을 다 바치고 죽어가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남자. 그리고 계속 못 잊어 힘들어하던 그 남자에게 비리가 있을 리 없다. 오히려 못 믿을 쪽은 검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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