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라도 한번 잡아 볼걸
추억은 촉각과 함께 떠오르기도 한다
'아들'이라는 한국 영화가 있다. 차승원이 살인범으로 나오는 영화다. 간단히 내용을 간추리자면 주인공은 살인을 저지르고 무기징역을 받아 감옥에서 살게 된다. 부인은 집을 나가고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할머니가 키우게 된다. 할머니마저 치매에 걸리게 되는데 할머니 돌보는 일을 그 아들이 떠맡게 된다. 아들은 아빠랑 다르게 착하고 공부도 잘해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다. 아빠가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가까운 친구들은 안다.
아빠는 아들을 무척 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아들이 병에 걸리고 살인범이 특별휴가를 받는데 나오기 직전에 아들이 죽고 만다. 아빠가 아들을 잠깐 보고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 평생을 보내야 하는 안타까운 사실을 아는 친구들. 그들은 치밀하게 준비한다.
친한 친구가 그 아들 역할을 하기로 한 것. 아버지에게 아들의 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다. 그 친구는 평소 아들의 취향이나 말투를 알고 있다. 게다가 어릴 때 아빠랑 있었던 추억을 알고 있다. 친구가 수없이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살인범이 어머니를 찾아뵙지만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친구는 끝까지 아들인척 연기를 한다.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척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주 어릴 적 부자가 두 손을 꼭 잡고 철길 위를 걷던 추억이 생각난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철길로 간다. 하지만 둘이 손을 잡는 순간 아버지가 오열한다.
"내 아들은 어딨니?"
손을 잡는 순간 아들이 아님을 직감한 것이다. 성장하면서 얼굴이 변할 수 있으니 외모로는 의심하지 않은 아버지. 그러나 손을 잡고는 알아차린다. 촉감으로.
그 장면에서 펑펑 울었다. 우리 몸은 기억하는 것이다. 그때의 촉감을.
몸은 어쩌면 뇌의 해마보다 더 정교하고 영적인 능력이 있는지 모른다. 손에 있는 감각세포들이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승원이라는 배우는 그 뒤로 영화 못지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아빠 닮아 잘생겼다던 아들이 친아들이 아니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또 아들이 불미스러운 일로 매스컴에 오르내릴 때 그 배우는 고갤 숙여 대신 사죄를 했다.
영화에서 받은 감동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는 실제로 아들을 친자식처럼 사랑한다고 알려져 있다.
낮에 귀가 가려워 면봉으로 후비다가 갑자기 동생이 내 귀를 파주던 어린 시절이 떠 올랐다.
요즘은 귀지를 파면 안 좋다는 말 때문에 귀이개를 이용해 귀를 파는 사람이 별로 없다. 하지만 내가 어릴 적엔 귀이개를 이용해 정기적으로 귀를 청소하는 게 유행이었다.
손재주가 좋은 동생은 귀를 잘 파주었다. 나는 항상 언니가 아니라 동생처럼 굴었는데 귀를 파달라고 부탁을 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연필을 깎아준다거나 기타 노동력으로 얻어낸 찬스를 쓰곤 했다.
내가 동생 무릎을 베고 귀를 들이대면 구석구석 잘도 팠다. 그 과정에서 내가 궁금증을 못 참고 항상 물어보았다. 얼마나 큰 귀지가 들어있냐? 그러면 귀찮은지 대답을 안 하거나 퉁명스럽게 이따 보면 되잖아. 한다. 그러다가 못 참고 갑자기 내가 몸을 일으키거나 하면 귀지가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러면 귓속에서는 바윗돌이 굴러 들어오는 소리가 쿵하고 난다.
그때 동생은 노인네 같은 말투로 반대 편으로 몸을 기울이고 한 발로 뛰라고 처방해 주었다. 야매 이비인후과 치고는 친절한 셈이다. AS까지 해주고.
그렇게 귀 청소를 정기적으로 해주었는데 동생이 초등 저학년 때부터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 애어른 같은 아이였다.
그때 이후로는 귀 청소를 남이 해 준 적이 없다. 귀가 가려워도 면봉으로 후빌 뿐인데 어릴 적 동생의 기술만큼 시원하지가 않다.
누군가를 추억할 때 얼굴이 떠오르는 사람이 많을까? 내 경우는 그렇지 않다. 얼굴보다는 그 사람과 잡았던 손의 느낌이나 같이 갔던 장소에서 맡았던 냄새와 분위기들이 기억난다.
또 특유의 재밌는 말투 등이다. 동생의 말투가 내게 여전히 남아있다. 그 말투가 재밌어서 따라한 적이 많다. 개그 욕심이 많은 나는 그 말투를 따라 하다가 그대로 굳어져버렸다.
그런데 아들이라는 영화에서 나는 부러웠다. 아버지가 아들 손의 촉감을 간직하고 있다는 게. 그런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는 게.
나는 동생의 손을 잡아 본 기억이 없다. 마지막까지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동생 손을 한 번 잡아보는 건데... 그러면 그 촉감이 남아 있을 텐데. 영화에서처럼 누가 동생 코스프레를 한다 해도 금방 알아챌 텐데...
대신 지금도 내 귓속에는 동생의 손길을 기억하는 세포들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