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달고 산 아이
애정결핍이 부른 잘못된 판단
"아기가 숨을 쉬지 않는대. 그냥 지금 수술할래."
"다른 병원도 가보고 결정하자. 오진일 수도 있잖아."
그러자 동생이 말했다.
"아냐. 지금 할래. 아기에게 조금이라도 더 정이 들까 봐."
동생은 임신하고나서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평소 쿨한 동생이 아기에게 집착을 보인 것이다. 남편을 워낙 사랑하기도 했고 일에 지친 나머지 따뜻한 가정을 일구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임신 직후부터 태담은 물론 아이에게 동화책도 읽어주고 좋은 음식을 챙겨 먹는 등 태교에 지극 정성을 보였다. 그런데 그 아기가 숨을 쉬지 않는다니.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데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남에 있는 유명 산부인과에서다. 동생이 임신 8개월의 몸으로 정기검진을 간 날이었다. 그런데 의사가 하는 말이 아기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생에겐 임신중독증이 있었다. 어쩐지 잠깐 밖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얼굴이나 손이 퉁퉁 부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임신경험이 없는 나는 임산부는 원래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손이 부으면 누가 봐도 비정상이다. 아픈걸 잘 참는 동생은 별일 없으려니 했다. 그러다가 정기검진에서 아기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되었다. 결국 동생은 유도분만을 하게 되었다.
유도분만은 촉진제를 놓아서 출산을 앞당기는 것이다. 아기를 낳는 것과 똑같은 과정을 겪는다. 동생의 진통 과정이 유난히 힘들었다고 한다. 나는 그날도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 당시 다니던 회사는 밤새는 걸 당연히 여겼다. 밤 10시에 퇴근하면 조퇴로 볼 정도다.
하루는 10시에 퇴근하고 다음날 몸이 아파 지각을 했더니 상사가 하는 말이 어제는 일찍 들어갔으면서 왜 지각을 했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영업사원들은 어찌나 일을 열심히 하는지 되지도 않을 오더를 잘도 따왔다. 클라이언트들은 서너 군데, 심하면 일곱여덟 군데 디자인 회사에 경쟁을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디자인부는 매일 밤을 새웠다. 그러다가 좀 삐끗해서 디자인을 잘 못 하거나 몇 번 일찍 가거나 하면 여지없이 회사에서 잘렸다. 나는 그런 일을 당한 적이 없었는데 그 만큼 일에 미쳐 살았다는 이야기다.
디자인 채택률도 제일 높아서 영업부 회의에서는 항상 내 스케줄부터 체크한다고 했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악바리처럼 살았겠는가? 개인생활이라곤 하나도 없이 오로지 일에만 매진했다. 물론 설계가 중요하긴 했다. 아무리 영업을 잘 해와도 설계안이 채택되지 않으면 공사를 따낼 수 없으니 말이다.
거의 일중독 수준으로 일하는 내게 동생은 하나의 부담이었다. 동생에게는 수시로 일이 터져서 최선을 다해 돕고 있었지만 내 업무에 방해가 되었다. 특히 당시 싱글이었던 나는 아기를 잃은 엄마의 심정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당시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고 그 일로 나 하나만 바라보는 회사 사람들의 눈이 있었다.
유도 분만으로 동생에게서 나온 아기는 아들이었다고 한다. 딸만 다섯 있는 집에서 자란 동생은 더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동생이 퇴원하고 집에 데려다주었을 때 방안에 아기용품이 눈에 띄었다. 뱃속 아기에게 읽어주던 동화책이랑 예쁜 아기 양말과 예쁜 아기 낳는다고 매일 바라보던 아기 사진. 동생은 힘없이 고개를 돌리더니 그 물건들을 나보고 치워달라고 했다.
어쩌면 동생은 그렇게도 불행한 일이 끊이지 않았는지.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시어머님과 사이가 더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동생은 시어머님에게 서운한 마음이 컸다.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퉁퉁 붓고 몸이 무거운데도 엄살떤다고 시어머님이 구박을 했었다고 한다.
당시 동생은 홀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다. 또 친척들이 그 주위에 몰려 살았다. 동생은 결혼하고 나서 일을 쉬고 있었다. 결혼 당시 이미 배가 불러서였다. 그런데 수시로 친척들이 몰려와서 밥상을 차려내곤 했다. 무거운 몸으로 좌식 밥상을 번쩍 들어서 대접을 했다고 한다.
그 집은 재개발을 코앞에 두고 있는 다 허물어져 가는 한옥이었다. 비스듬한 언덕배기에 있었는데 한번 집에 가려면 숨을 헉헉거렸다. 동생이 그 많은 남자들을 마다하고 택한 결혼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았다. 일단 남편 되는 사람이 여러모로 의심스러었다. 허우대는 멀쩡한데 일본 유학 갔다 온 사람이 일본어도 제대로 못한다는 게. 일본유학파가 취직이 안 되어 박봉의 작은 회사에 출근하고 있었다. 그것도 동생이 취직시켜준 회사에.
차도 동생이 사주었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동생은 가난한 홀시어머님 밑에서 자란 장남. 학벌도 의심스럽고 직장도 변변치 못한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결혼문제는 동생에게 늘, 최소 5지선다 시험문제였다.
하루는 전화가 걸려 왔다.
"있잖아. 너 찍기 잘하지? 한번 정답을 찍어봐. 1번 남자: 의사인데 나보다 두 살 많고 얼굴 별로임. 개업한 지 얼마 안돼서 돈은 없음. 2번 남자: 카이스트 나오고 현재 기업 연구원, 얼굴은 잘 생김.
3번 남자: 일본 유학 갔다 온 박봉의 가난한 장남. 얼굴이 제일 잘 생김. 4번 남자 등등...
이렇게 대여섯 명 정도로 줄줄이 읊어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게 다 뭐냐니까 자기에게 프러포즈한 남자들 리스트라고. 이건 뭐 의자왕(아니 의자 여왕인가?)도 아니고.
그것도 하나같이 사짜 들어가는 남자들이다. 그중에 딱 한 명 조건이 좀 처지는 남자가 있기는 했다. 모든 게 석연치 않았다. 그런데 동생은 그 남자에게 제일 끌리는 듯했다. 그 남자는 굉장히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었다고 한다. 나머지 남자들은 다 재미가 없다고. 다 떠나서 나는 그저 동생의 능력이 부러울 뿐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석연치 않은 남자 아일 덜컥 임신한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왜 그 남자랑 결혼했냐니까 자기에게 가장 따뜻해서라고 한다. 자긴 평생 애정결핍이 있었다고. 집에서도 가운데 끼여서 부모로부터 사랑을 못 받았단다. 나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또 동생은 혼날 일을 많이 하기도 했다. 늘 사고를 치는데 어느 부모가 예뻐하겠는가?
그런데 그 남자는 자신의 모든 걸 예뻐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니 전형적인 바람둥이 스타일이었다. 여자에겐 무조건 잘해주는. 결국 그 '여자'라는 게 너무 '모든'이라는 게 문제가 되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