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반지를 갖고 있던 동생

때론 나쁜 마법도 있다.

by 허윤숙

동생은 광고모델일도 했다. 메인 모델은 아니지만 유명 음료나 식품 광고에 여러 번 등장했다. 이벤트 일을 하면서 우연히 하게 된 거라 연예인이 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연예인이 될 만한 끼가 없기 때문이다. 애교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고 민망한 말투나 표정에는 젬병이었다.


한 음료 광고에서는 신혼부부 역할을 했는데 표정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감독님에게 혼나면서 여러 번 찍고 끝낼 수 있었다고 했다. 노래방용 뮤직비디오에도 여러 번 나왔다. 하루는 직장 동료들과 노래방에서 유명 가수 히트곡을 부르고 있는데 뮤직 비디오에 동생 얼굴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저 여자가 내 동생이라고 하니 직장동료들이 안 믿었다. 그래서 내가 입고 있는 코트를 보여주었다. 그 당시 내가 입고 있던 코트는 동생이 안 입는다며 준 것이었는데 마침 그 화면에 동생이 그 코트를 입고 있었다.


나중에 어떻게 된 거냐고 동생에게 물어보니 지인이 뮤직비디오 감독인데 부탁해서 어쩔 수 없이 들어주었다고 했다.


동생은 전형적인 서구미인 형이었다. 남자들이 한 번만 보면 열에 아홉은 사귀자고 했다. 몸매도 항상 날씬했다. 동생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나랑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남학생들이 따라다녔다. 하루는 누가 초인종을 눌러서 나가보니 동생이 헉헉거리면서 빨리 문을 열라는 것이다.


그래서 문을 열고 보니 동생이 들어오면서 문을 얼른 닫았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 학교 남학생들이 여러 명 쫓아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왜? 하니 원래 그렇게 쫓아오는 애들이 많았는데 항상 다른 길로 돌아오면서 집을 모르게 했다고 했다. 오늘도 잘 따돌렸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알고 집까지 다시 따라오더라는 것.


이제 집에까지 올까 봐 귀찮아 죽겠단다. 나는 내심 부러웠다. 단 한 번도 남학생이 나를 쫒아 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적 못생긴 편에 속했던 모양이다.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예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반면 동생은 날 때부터 까무잡잡하고 입체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서미경이라는 연예인이 유명했는데 꼭 닮았다는 소릴 들었다.


그런 동생이 성인이 되고부터는 더 예뻐지기 시작했다. 매일 길거리에서부터 남자들이 쫓아오는 통에 쫓아 보내느라 힘들었다. 하루는 동생이 집에 늦게 들어왔다. 그런데 동생 손에는 집 앞 빵집의 소보루빵이 한 개 달랑 들려있었다. 그래서 왜 하필 딱 하나야? 입이 몇 개인데 하니 동생이 사연을 들려주었다.


자기가 집에 오는데 남자 둘이서 자기를 뒤쫓고 있더란다. 속으로 '짜식들 밤에는 잠을 자야지 잠을. 늦게까지 참 열심히 산다.' 하면서 마침 빵을 사려고 빵집에 들어갔단다. 그러면 갈 줄 알고. 그런데 바깥에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그래서 동생이 그 남자애들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그랬단다.

"이렇게 밤늦게 싸돌아 다니지 말고 집에 가서 빨리 자, 알았지? 엄마들이 걱정하시잖냐?"

그러자 남자애들이 기세에 눌려 꾸벅 인사를 하고 가려고 했다. 동생은 그 모습이 안돼 보였는지 다시 불러 세워서는 자기가 산 빵에서 두 개를 꺼내 한 개씩 나누어 주었단다. 집에 가는 길에 배고프면 먹으라고.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빵까지 주며 훈계하는 예쁜 여자. 아니면 황당했을까? 밤에 무섭지도 않은지 말이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남자애 둘에게 빵까지 주며 훈계하는 그 대담함이. 이러나저러나 연애하고픈 대상은 아닌 걸로 보인 게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코뼈가 남아나지 않을 테니.


우리 자매들은 그 남자애들한테 뭐하러 빵을 줬냐면서 난리를 쳤다. 없는 살림에 빵값이 하나에 얼만데 하면서. 그런데 동생이 하는 말이 웃겼다. "걔네들이 불쌍하잖아. 하필 따라간 여자가 깡패라니."


맞다. 쓰다 보니 기억이 났는데 동생 별명이 어릴 때부터 깡패였다. 우리 가족은 자연스레 동생에게 "깡패야"라고 불렀다. 건들건들하는 행동이나, 성질이 나면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행동이 딱 깡패 같아서다. 그 당시 사나운 성질을 갖고 있는 남자애들에게 쓰던 말을 여자애한테 쓴 것이다. 그 정도로 동생은 깡패 기질이 있었다.


그 깡패 기질은 의협심에서 특히 빛났다. 동생 밑으로 또 두 살 터울의 동생이 있었는데 그 동생이 학교에 입학하자 가방을 항상 들어주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게다가 자기가 밑의 동생보다 훨씬 깡마른 체형이었다. 동생은 통통한 편이었고. 그런데도 언니로서 잘 챙겨주었다.


의협심은 있었는데 의리는 없었다. 특히 나에게. 동생은 욕심이 유난히 많았다. 자기가 싫어하는 친구가 자기보다 성적이 잘 나오면 밤을 새워서라도 그 친구를 앞질렀다. 그리고 나랑 같이 교회를 다녔는데 그 교회에 인기 많은 교회 오빠가 있었다. 그 오빠가 대학 갔을 때 내가 다니던 대학 근처에 살았다. 그 인연으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의 로망이었던 오빠와 이렇게 엮이다니 하면서 다들 부러워했다. 그래서 둘이 영화도 보고 친하게 지냈는데 하루는 그 오빠가 집에 전화를 했는데 마침 동생이 받았다.


내가 외출한 터라 오빠는 동생에게 약속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었다. 그리로 나오라고.

그 당시만 해도 핸드폰도 없어서 한번 약속 잡고 만나기가 힘들었다. 그때 나는 인천에 있어서 어차피 알아도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글쎄 그 자리에 나 대신 동생이 나간 것이다. 그 오빠에게 동생이 나타나서 그랬단다. 언니가 시간이 안 되어 자길 대신 내보냈다고. 데이트에 자기 대신 동생을 보내는 언니가 어디 있는가?


동생이 나오자 당황한 오빠는 영화도 보여주고 밥도 사주었다고 한다. 오빠에게는 동생이 그저 어린 여동생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동생이 오빠에게 진심을 고백해 버린 것이다.

"오빠는 나 어떻게 생각해요?" 하고. 그러면서 언니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하면서 아주 불공정한 게임을 벌일 생각을 한 것. 하지만 심지가 굳었던 오빠가 안 넘어간 모양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동생을 진짜로 미워하게 되었다. 내가 그 오빠를 얼마나 오랫동안 좋아했는지 알면서 그런 더티 게임을 하다니. 또 내 앞에선 그 오빠 별로라고 하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이야. 아마 일종의 질투심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한동안 동생이랑 말도 안 했다. 아무리 형제자매라 해도 연애에서만은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동생은 그 뒤로도 여러 번 나 몰래 내 남자후배나 친구들을 만났다. 남자 쪽에서 먼저 접근을 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언니인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사귀다가 헤어진 후에나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면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대부분 차인 쪽이 욕을 하게 마련인데 남자들이 동생을 매도하곤 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부분은 화가 난다.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교통정리는 좀 하고 살 일이지. 하지만 그때마다 내 안에서 꿈틀대는 부러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동생에게는 분명 마법의 반지가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다.


어렸을 때 본 동화중에 '마법의 반지'라는 게 있다. 한 못생긴 여자가 매일 남자들에게 차이니까 마법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러자 마법의 반지를 주면서 그걸 끼고 다니면 남자들이 다 반하게 될 거라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너무 많은 남자들이 쫓아다녀서 살기 힘들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어린이 동화치고는 참.


동생이 그 반지를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동생을 본 남자들 중에 넘어가지 않은 사람은 교회 오빠 한 명뿐이었다. 그런 초능력을 가진 동생이 결혼까지 잘했다면 좋으련만. 한 번에 항상 최소 네 명의 남자가 프러포즈를 한 상태였던 동생이, 고르고 골라 택한 남자가 하필 그런 사람일 줄이야.


동생은 결국 그 반지 때문에 불행해져 갔다. 동화 속 주인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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