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때문에 죽을 뻔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동생은 나를 힘들게 한다.

by 허윤숙

동생 때문에 죽을 뻔한 적이 있다. 나는 네 살, 동생은 두 살 무렵이었다. 뭐든 빤히 쳐다보다가 그대로 따라 하길 좋아하는 동생은 그날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했다.


당시엔 팔각 성냥갑을 많이 썼다. 가정마다 상비해 놓고 담배에 불을 붙이거나 갑자기 전기가 나가면 초를 켤 때. 또 석유곤로 불을 켤 때, 여름엔 모기향 피울 때 등 쓰임새가 다양했다.


성냥갑 팔각 옆면에는 밤색이 칠해져 있었다. 성냥개비 끝에 달린 빨간 머리 부분을 그곳에 대면 치지 직하고 불이 붙었다. 그 장면은 마치 마술사가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신기해 보였다. 그건 어른들이나 하는 영역이었고 어린아이들 눈에 아빠나 엄마 같은 어른은 다 요술쟁이처럼 보였다. 뭐든 말하면 들어주고 힘도 세고 돈도 있으니까.


그 다른 영역을 감히 넘보지 못했다. 우리가 나중에 저 영역으로 넘어간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저 어린아이들은 늘 어린아이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생은 달랐다. 동생은 어른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가 그 영역을 침범하곤 했다.


그 당돌함은 두 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하루는 내가 안방에서 자고 있었고 엄마는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고 있었다. 그 무렵 기억이 서너 개 정도 되는데 그날의 장면은 지금도 유독 선명하게 남아있다.


안방에는 우리 둘만 있었고 동생은 이때다 싶어 평소 하고 싶던 일을 실행하기로 결심한다. 바로 팔각 성냥갑에 있는 성냥을 꺼내어 불을 켜보는 것. 그 일은 손과 눈의 협응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시기에나 가능하다. 나는 열 살 무렵에 겨우 성공했다.


즉 성냥개비를 오른손가락으로 잡고는 성냥개비의 빨간 머리 부분을 성냥갑의 빨간 인 부분에 힘 있게 그어야 된다. 그때 불이 붙기 시작하는 시점도 잘 맞추어야 한다. 너무 빨리 손을 떼도 안 되고 너무 늦게까지 있어도 불이 붙지 않는다.


그런데 두 살밖에 안 된 아기가 그 일을 해낸 것이다. 그런데 불이 붙자 자기도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성냥불을 성냥갑 안으로 던져버린 것이다. 마치 쓰레기통에 쓰레기 버리듯이. 그러자 갑자기 폭발하듯이 불이 크게 붙어버린 것이다.


그때 엄마는 부엌에 있었다. 한옥 구조는 부엌과 안방까지 거리가 있다. 게다가 부엌은 안방보다 한단 아래 높이에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당시 방바닥은 종이 장판이었고 그 위에는 투명한 니스까지 칠해져 있었다. 불이 붙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던 셈.


게다가 나는 인화물질인 솜이불까지 덮고 자고 있었다. 당연히 종이 장판을 타고 불이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그 불은 내가 자고 있는 아랫목으로 금세 번져 나를 덮칠 상황이었다. 그러면 솜이불 속 나는 유독가스와 화마에 그대로 질식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최근에 알게 되었지만 불이 나면 화상으로 인한 사망보다는 유독가스 질식으로 인한 사망이 더 많고, 사망에 이르게 되는 시간이 예상보다 무척 짧다. 게다가 자고 있던 네 살배기 아기는 호흡력이 더 나쁠 수 있다.)


어린 방화범은 범행을 저지르고 이미 도망간 후였다. 나만 꼼짝없이 죽게 내버려 두고. 그런데 아주 특이한 식성의 초식녀 아기가 스스로 목숨을 살렸다.


나는 어릴 적부터 식성이 특이했는데 생무를 간식으로 먹는 걸 좋아했다는 것이다. 또 오이나 당근, 김치 등을 맨입에 먹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마침 자다가 어떤 소리에 눈을 떴다. 자다가도 무 써는 소리를 알아낼 정도로 무를 좋아했다보다. 무는 단단한 재질 때문에 도마 위에서 썰 때 특유의 묵직한 울림이 있다. 그 소릴 감지하고는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초저녁부터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서는 눈을 감다시피 하고 마루로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그리고

"엄마 무 줘."라고 외쳤다. 엄마는 부엌에서 저녁 식사로 무를 썰고 계셨다. 그런데 내 얼굴이 까맸다고 한다. 화재에서 나온 화재 먼지로 인해 얼굴에 검댕이 묻은 것이다.

"아니,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나는 태연하게 눈만 끔뻑거린 것 같다. 그냥 무를 달라니까 뭐가 왜 그래. 지?


그때 안방에 들어간 엄마는 깜짝 놀랐다. 안방이 거짓말처럼 훨훨 타고 있었던 것이다. 부엌과 단차가 나고 거리가 있어서 냄새나 소리가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었나 보다. 무 써는 소리가 아니었으면 아마 지금 나는 이 세상에 있지 못했을 거다. 생명의 은인이 하필 무라니.


그때 동생은 옆방에서 태연히 혼자 놀고 있었다고 한다. 깜찍한 방화범 같으니라고. 그 당시에는 화재가 흔했다. 연탄으로 인한 화재나 석유곤로로 인한 화재 등 생활환경 자체가 불과 가까이 있던 시대였다. 국민소득이 낮은 그때는 소방서도 별로 없었다.


당시엔 119에 전화하는 대신,

목청 큰 사람이 동네 골목길에서 "불이야"하고 한 번만 외치면 되었다. 그러면 딱히 오락거리도 없던 그 시절 불구경하느라 마을 사람들이 몰려온다. 한 손에 양동이 하나씩 들고서.


그리고는 인해전술로 불을 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두 일렬로 서서는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이 양동이에 물을 담아서 옆사람에게 전달한다. 그런 식으로 우리 집 불을 한참만에 다 끄게 되었다.


안방에는 귀중품도 있었고 내 돌사진과 내가 아끼던 가짜 밍크코트, 밍크 모자들이 몽땅 불에 타버렸다. 하지만 내가 살아 나온 걸 다들 다행으로 여겼다. 하늘이 도왔다고 하면서 말이다. 까딱하면 죽을 수 있었다고.


그렇게 불을 다 끄고 나니 안방 하나 가득 한강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내가 얼마나 둔했었는지 짐작이 간다. 동생이 불을 내고 옆방으로 도망을 갔는데 유유히 불길 한가운데를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걸어 나오다니. 얼굴에 검댕만 좀 묻힐 뿐. 아기 터미네이터도 아니고.


그리고 화재를 낸 동생이 새삼 주목받았다. 어떻게 돌이 갓 지난 아기가 성냥불을 켰는지 말이다. 사실 나랑 동생이 안방에 있는 동안 불이 나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어른들의 추리일 뿐이다. 나도 어른들에게 들은 말과 내 기억을 조합해서 알아낸 사실이다.


나는 어쨌거나 죽을 고비를 한 번 넘긴 것이다. 그것도 동생 때문에. 동생은 그 때나 지금이나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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