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

저에게는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요..

by 허윤숙

바로 밑의 동생은 암에 걸려 일찍 세상을 떠났다. 동생이 떠난 해, 특히 그 계절은 의사들이 가장 불친절한 시기였다. 2000년 당시 우리나라는 의약분쟁으로 나라가 떠들썩했다. 의사들이 파업을 일삼았는데 특히 암으로 투병 중인 사람들이 제때 수술받지 못해 죽어나갔다. 의사들이 진료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촌각을 다투는 환자와 가족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기억나는 것으로 종합검진을 들 수 있다. 그 당시 동생은 강남의 꽤 유명한 병원에서 종합 건강검진을 했다. 몸이 무겁고 늘 피곤해서다. 한약을 지어먹었는데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화 나는 게 있다. 종합검진 내용을 설명해줄 때 동생에게 정확하게 설명해주지 않은 점이다.


동생이 죽고 나서 유품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모병원 종합검진 파일을 발견하게 되었다. 클리어 파일인데 투명 속지에 끼워진 검진표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암지표에 관한 것이었다. 췌장과 관련된 암지표 지수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한 소견이 따로 적혀 있지 않았다. 동생이 검진 결과를 놓고 상담받을 때도 그 지표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고 한다. 그저 위염증세가 심하다는 말만 하고 위염약만 잔뜩 처방받아 왔다고.


그땐 이미 췌장암 말기였을 때인데 어떻게 위염으로 오인해서 위염약을 줄 수 있었는지. 상담의사가 새파란 인턴이었단다. 아마 의사들이 파업을 해서 인턴이나 레지던트 몇 명만 병원에서 간단한 업무만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다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으니.


환자를 다 돈으로만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동생이 처음 암 검진을 받고 입원해 있던 곳은 암수술로 유명한 모병원이었다. 그런데 동생의 증세가 심각해서겠지만 별다른 처방이 없었다. 그저 통증만 조절해 줄 뿐. 좀 더 병원에 있으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주면 안 되겠냐니까 담당 의사가 버럭 화를 냈다. 지금 병실이 부족해서 그런다고. 마치 내게는 수술도 할 수 없는 장기 입원환자는 돈도 안 되니 빨리 빠져달라는 걸로 들렸다.


당시 의료분쟁 내용을 세세히 말하지는 않겠다. 결론은 다 돈돈돈 돈 싸움이었다.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국민의 권리 운운했지만.


결국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그 전의 병원은 전체 분위기가 차가움 자체였다. 환자한테도 화를 냈다. 별거 아닌 일로. 나중에 다른 병원으로 옮기고 나자 동생은 이제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이 병원에선 감동적인 장면이 많다. 그 병원은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다들 친절하고 진심을 다해 환자를 대했다. 동생이 죽던 날은 간호사나 의사가 다 같이 슬퍼해주었다. 주사를 놓거나 간단한 처치를 할 때도 환자의 컨디션을 충분히 배려하고 기다려주었다.

동생은 참 운이 나빴다. 하필 의약분업 사태로 파업을 할 때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 전엔 종합검진 결과표를 새파란 인턴이 상담해 주고 하필 암중에서도 제일 고약한 췌장암에 걸리고 수술도 안 되는 말기에 알고. 게다가 그 와중에 한약을 지어먹어서 악화시켰다.


이렇게 끝이나 버린 동생의 인생이지만 나는 내 동생 이야길 하고 싶다. 그 이름을 알리고 싶다. 그 마음이 강했던 걸까? 지난 19년 동안 걸핏하면 딸에게 "세정아"라고 부르고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세정아"라고 부를 때가 있다. 또 지난 19년 동안 셀 수 없이 동생 꿈을 꾸어왔다. 꿈의 내용은 다양한데 주제는 한결같다. 아직 동생이 버젓이 살아있는 것. 그런데 내가 아직 그걸 모르고 있는 거다.


마치 엘비스 프레슬리나 마이클 잭슨이 살아있다는 식의 음모론 같다. 그건 팬들이 지어냈을 것이다. 나처럼 억울하고 아쉬운 마음에 살려놓는 것이다. 마음속에서나마. 사람들 발음 속에서나마. 그러면 다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안도감이 든다.


최근 동생을 하나하나 내 기억에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딸의 이름을 잘못 부르는 일도, 꿈에서 동생을 보는 일도 없어진 것이다. 이제 동생을 조금씩 꺼내면서 살려내고 내 머릿속은 비우려나보다. 이제 조금은 가벼워진 머리로 살 것이다.


동생을 이야기하고 동생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 이렇게나 홀가분하고 의미가 있는 일인 줄 몰랐다. 그저 33년 어떤 여자가 살다 갔다가 아니라 이렇게 계속 말을 늘어놓을 수 있다는 게.


"나에게는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요. 몸은 깡말랐는데 힘은 엄청 셌어요. 그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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