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이 앞섰던 아이

나는 힘센 동생이 무서웠다

by 허윤숙

내 신체 조건 중 다른 사람에 비해 특별히 자신 있는 곳이 하나 있다. 그 튼튼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데 일부러 약하려고 노력해도 안 되는 부위다. 코 점막이다. 남들은 조금만 과로해도 코피를 흘려서 극적 효과를 내곤 한다. 하지만 나는 심지어 임신 7개월에 시어머님과 김장 300포기를 담갔는데도 끄떡없었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로 밤을 새우고 책 위를 코피로 붉게 물들이는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마치 아름다운 멜로 영화 여주인공 같은 야리야리함이 돋보였으니. 그런 아이들은 조회 시간에 조금만 서 있어도 픽픽 쓰러졌다.


코를 일부러 자극해 보았다. 코 내부를 휘저어 보기도 하고 콧등을 눌러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 콧 속 점막은 분명 나일론처럼 질기거나 남들보다 세배쯤 두꺼운 듯했다. 그런 코가 내 일생 단 한번 코피가 난 적이 있으니 바로 동생한테 맞고 서다.


동생은 힘이 장사였는데 뼈다귀 밖에 없는 깡마른 아이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살점이 없으니 그 애 손에 한 대 맞기라도 하면 어찌나 아픈지 눈물이 날 정도였다. 하루는 동생이랑 싸우다가 내가 동생의 인내심을 폭발시켰나 보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다. 동생은 내가 약 올린 것에 대꾸 한마디 없이 스트레이트로 주먹을 날렸다. 쿠션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맨 주먹을, 말하자면 뼈다귀 주먹을 내 코를 향해 날린 것이다.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진 나는 떼굴떼굴 굴렀다. 처음엔 아픈 줄 몰랐는데 얼굴이 갑자기 축축해지는가 싶더니 조금 있다가 시뻘건 피가 흐르는 것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피가 나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던 터라 심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후로 동생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 주먹 한방에 우리 자매는 힘에 있어서 더욱더 불균형한 상태가 되어갔다. 언니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동생과 나는 걸핏하면 싸웠는데 동생은 말보다 주먹을 먼저 휘둘렀다. 그러다가 나중엔 무기까지 사용하곤 했다. 당시엔 집집마다 싸움의 양상이 달랐을 뿐 잔인성은 요즘보다 심했다. 연년생 동생을 둔 내 친구는 동생한테 맞고 잠시 기절을 한 적도 있을 정도.


동생은 주로 의자를 들어서 내리찍었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부모님한테 혼이 나자 나중엔 서로 싸움 규칙을 정하기도 했다. 미용상 머리끄덩이는 잡지 말자.(한 번은 서로 머리채를 잡아서 끝까지 안 놓는 바람에 둘 다 영구머리가 된 적이 있었기 때문) 아무리 화가 나도 가위 등 뾰족한 무기는 잡지 말자. 물건으로 때리더라도 던지지는 말자. 이빨로 물어뜯지는 말자. 등등 지금 봐도 살벌한 조항들이다.


동생은 한 번 욱하면 그 조항들을 지키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동생이 무서워서 소심하게 물러서곤 했다. 동생이 세대 때리면 나도 세대 때려야 하는데 슬쩍,

"너 나한테 두대 때렸지? 너도 두대 맞아봐." 하면서 자발적으로 깎아주는 것이다. 단지 살기 위해서."


자존심 때문에 죽도록 대들었지만 늘 동생이 무서웠다. 나중에 동생에게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날 때렸냐고. 그랬더니 동생이 하는 말이,

"네가 너무 말을 잘하잖아. 그러니 대꾸는 못하겠고 자존심 때문에 주먹으로 돌려준 거지."


이에는 이로 대응해야지 말에 주먹은 뭐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내가 어렸을 때 말을 잘했구나. 동생은 은연중 나를 칭찬한 것인가? 하고.


동생은 말수가 적었다. 그래서 그 속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슬며시 먹을 것을 내밀거나 걱정하는 말 한마디 하면 그렇게 감동이 될 수가 없었다. 입에 발린 백 마디 말보다 행동으로 하는 게 진심이다.


커서는 말로 나를 때렸다. 요즘 말로 뼈 때린다는 말이 있는데 동생이 그랬다. 주먹 세계에선 손을 씻었지만 여전히 말로는 험악했다. 단 한 번도 나에게 좋은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러니 동생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맞는 일에선 해방되었지만 말로 때려대니 기분이 안 좋았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그 돌직구가 그리워진다. 사회생활에선 다들 둥글둥글하게 말한다. 남에게 굳이 나쁜 말을 할 필요가 없으니. 하지만 돌아서서 뒷담 화한 내용이 돌고 돌아 들려오기도 하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배신한다.

동생은 그와 반대였다. 말은 밉게 했지만 행동으로 자신을 남기는 사람이었다. 워낙 말이 없던 아이라서 일까? 동생 특유의 표정이나 말투는 기억에 남는데 동생이 했던 말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말보다 주먹이 앞섰던 어린 시절처럼 어른이 되어서도 행동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다시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것 같다. 그 진심을.

keyword
이전 01화내 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