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걸 잘 참던 아이
아픈걸 잘 참는 게 슬펐다.
"아휴 냄새야. 이 크림에선 썩은 달걀 냄새가 나."
내가 얼굴에 로션을 바르면서 투덜거렸다. 그러자 동생이 좋은 방법을 알려주었다.
"바보야. 로션을 코 밑에는 바르지 말아야지. 거기만 안 발라도 냄새 안 나."
바보란 소리에 기분이 상했지만 동생이 말하는 대로 한번 해보았다. 그러자 진짜 냄새가 안 난다. 코밑에 로션을 바르면 당연히 코가 위에 있으니 냄새가 날 수밖에.
엄마가 얼굴에 바르라고 주신 로션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내가 매번 찡그렸다. 그런데 동생은 계속 코밑에 안 발라서 괜찮았던 것.
동생은 원숭이 띠였다. 진짜 띠랑 닮았다. 뭐든 한번 보면 그대로 따라 하던 동생. 동생은 잔재주가 많았다. 아주 어릴 적부터 잔머리도 발달해서 뭐든 곤란할 때마다 잘도 피해나갔다. 손도 일찍부터 야물었다. 어른들이 하는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그대로 따라 하곤 했다.
그러다가 위험한 일도 많이 있었다. 동생이 네 살 무렵이었다. 그때 아빠가 아침에 출근하실 때마다 우리들에게 10원짜리 동전을 하나씩 주시곤 했다. 그 동전으로 과자도 사 먹고 종이인형도 샀다. 그런데 하루는 아빠가 주신 동전을 갖고 놀던 동생은 텔레비전에서 보던 장면이 기억났나 보다.
서커스 단에서 피에로가 공으로 저글링 하는 장면이었다. 그걸 흉내 내려는 듯 동전을 위로 던지고 받는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동생의 기술에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동전이 그만 동생 입으로 들어갔다. 고갤 젖히고 있던 터라 목구멍 속으로 곧바로 들어가 버렸다.
갑자기 기침을 컥컥하던 동생을 보다 엄마가 놀라서 얼른 등을 두드렸다. 하지만 이미 목구멍 속으로 들어간 동전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엄마는 출근하던 아빠를 다시 불러서는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한다고 했다. 동생은 점점 숨을 못 쉬겠다는 듯이 식식 소리를 내며 호흡이 가쁜 듯이 보였다. 위기의 순간이었다.
나는 혼자 집에 남겨졌다. 그때 나는 죽음이라는 걸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텔레비전에서 본 장면을 조각조각 맞추고 있었던 것 같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다가 꽥하고 죽는 장면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동생이 숨을 못 쉬고 컥컥거리는 게 계속 생각이 났다. 그리고 신앙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 내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간절해지면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게 되나 보다. 예닐곱 살 정도였는데 어떻게 그런 기도 자세가 나오고 기도를 했는지 모르겠다. 무조건 하나님. 하고 시작했다. 그리고 절절한 참회의 기도가 이어졌다.
"하나님. 제발 우리 동생을 살려주세요. 우리 동생이 동전을 삼켰어요. 혹시 동생이 평소 개구쟁이 짓을 많이 해서 벌주신 건 아니죠? 만약 그렇더라도 이번만 봐주세요. 저도 동생한테 잘못한 게 많은 걸요. 만약 동생이 살아 돌아온다면 정말 잘해 줄 거예요. 제가 언니잖아요."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만은 조숙한 아이로 행동한 것 같다. 평소 동생이랑 매일 싸웠다. 아빠를 사이에 두고 둘이 치열한 경쟁을 했는데 예를 들어 아빠를 사이에 두고 우리 자매가 양옆에 잤다. 그때 아빠 얼굴을 자기 쪽으로 돌리게 하려고 밤새 싸우던 기억이 난다. 그때마다 아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곤란해하셨다. 그러다가 자기는 그냥 천장 보고 자야겠다고 하시는 거다. 그럼 우리 자매는 망했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그런데 이 장면도 기억이 나면서 동생이 살아온다면 오늘 밤부터 아빠 얼굴을 동생 쪽으로 양보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동생이 정말 죽은 것 같아서.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흘러서 어둑어둑해진 저녁이었다. 부모님과 동생이 집에 돌아왔다. 동생은 당분간 말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목이 심하게 상해서. 부모님이 대신 설명해주셨는데 동네 병원에 가니 자기들은 못한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단다. 그래서 시내에 있는 큰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는 그 아이를 거꾸로 들고는 기계를 깊숙이 넣어 피 묻은 동전을 빼냈다고 한다. 그런데 동생은 그 과정에서 울지도 않았단다. 병원에서 이런 아인 처음 보았다고.
나는 놀랍지 않았다. 원래 아픈걸 잘 참는 아이였으니까. 이를 뺄 때 나는 겁이 많아 몇 날 며칠 달래야 겨우 뺐다. 반면 동생은 이가 흔들리면 몇 번 흔들다가 자기 손을 넣어 쓱 뺐다. 도무지 겁이 없는 아이였다.
동생의 목이 나아서 회복이 되자 동생 목에선 가르랑 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릴 점점 발전시키더니 나중엔 꾸르 꾸르 소리 나게 하는 복화술을 개발했다. 그게 뱀 울음소리라고 하면서. 하도 신기해서 나도 그 소릴 따라 하다가 옆길로 새서 돼지 울음소릴 개발하기도 했다. 지금도 남아있는 나의 유일한 개인기다.
동생이 커서는 매일 밥 안 먹고 밤새다가 치질 수술을 크게 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치질 수술한다는 말이 하기 쑥스러워서 동생 회사에는 위장병이라고 말하고 입원을 했었다. 그때도 병원에선 혀를 내둘렀다. 그동안 많은 치질을 보았지만 이렇게 심한 상태는 처음 보았다고. 이 정도면 통증이 심했을 텐데 어떻게 참고 살았느냐고. 그 정도로 동생의 독함은 다들 혀를 내두르게 했다.
하지만 동생이 아픈걸 잘 참은 건 나에게 아픔으로 남아있다. 동생이 하필 암중에 제일 아프다는 췌장암으로 고통받는 걸 보면서다. 동생은 그 와중에도 가족들 앞에선 아픈 티를 내지 않았다. 우리가 걱정할까 봐 라기보다는 용맹한 장수 같은 심정 때문일 것이다.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하루는 멜론을 냉동했다가 주니 그걸 먹으면 통증이 사라진다고 나중엔 멜론 얼린 것만 먹었다. 내가 그럼 평소에는 계속 아프냐고 하니 그제야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응. 24시간"
짧게 내뱉었다. 그렇게 아프다니... 나 같으면 울고불고 땅바닥을 뒹굴었을 텐데...
그리고 동생이 어릴 적 병원에서 울지 않던 것이 생각났다. 동생이 너무 잘 참으니 하나님이 동생에게 한계치를 갱신시키는구나 하고.
하나님은 어린아이 기도를 더 잘 들어주시는 분임이 분명하다. 여섯 살 어린 내가 했던 기도는 잘 들어주신 분이 어른이 되어서 한 기도는 안 들어주신 거다. 동생이 그 뒤로 개구쟁이 짓을 너무 많이 해선가?
살아 돌아온다면 이번엔 진짜 잘해줄 텐데. 맛있는 밥도 해줄 수 있는데, 놀이동산에도 가고 찜질방도 가고.(그땐 찜질방이 없었다.) 동생이 떠난 뒤 세상은 정말 많이 변했는데.
만약 동생이 며칠만 휴가를 내서 세상에 내려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데리고 갈 곳이 너무 많아 며칠 휴가로는 부족할 듯하다.